구수천 천년옛길

백두대간 봉황산(741미터) 자락에서 발원하여 경북 상주시 화서면과 화동면, 모동면을 거쳐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에 이르러 초강천(송천)과 합류하는 하천을 석천(石川)이라고 한다. 석천을 받아들인 초강천은 영동군 심천면에서 금강 본류로 흘러들어간다.

석천의 물줄기 가운데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은 옥동서원 앞에서 백화산(933미터) 기슭을 가로질러 굽이치다가 반야사에 이르는 6㎞ 남짓한 물길이다. 구수천(龜水川)이라는 별칭으로도 일컬어지는 이 구간에는 기암괴석과 암벽이 즐비하며 울창한 숲과 옥류가 어우러져 청량감을 선사한다. 산간 사이로 숨어드는 은근하면서 얌전한 물길은 청순한 소녀를 연상시키는 묘한 매력을 품고 있다.

옥동서원과 반야사를 잇는 구수천 물줄기 옆으로는 천 년 넘은 유래를 간직한 옛길이 이어져왔다. 경상도라는 이름을 경주와 상주에서 따왔듯이, 그 옛날 상주는 영남지방에서 손꼽히는 큰 고을이었다. 1천여 년 전부터 상주 사람들은 구수천 옛길을 따라 충청도 영동으로 넘어왔다. 그러나 유구한 세월이 흐르면서 옛길은 군데군데 훼손되고 끊어졌다.

이에 따라 상주시는 2012년 구수천 천년옛길 정비에 나섰다. 원형 그대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통행하기 어려운 일부 암벽 구간 등에는 목책과 데크, 층계를 새로 깔았다. 그래서 인공적인 부분을 최소화하고 흙길, 모랫길, 낙엽길, 돌길 등을 살림으로써 옛길 본연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을 여덟 여울, 즉 팔탄(八灘)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구분이 좀 모호한 느낌이다.

황희정승 모신 옥동서원에서 고찰 반야사로

‘백화산 호국의 길’이라고도 불리는 구수천 천년옛길은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의 옥동서원에서 시작된다. 1518년(중종 13) 황희정승과 황맹헌, 황효헌을 추모하기 위해 세우고 위패를 모신 옥동서원은 1714년(숙종 40)에는 전식, 1783년(정조 7)에는 황유를 추가 배향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서원 가운데 하나인 옥동서원은 1984년 12월 경상북도기념물 52호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11월 10일 사적 532호로 승격되었다. 고색창연한 여러 건물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으나 갈 때마다 문루인 회보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옥동서원 왼쪽에 백화산 호국의 길과 백옥정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 그러나 그리로 가면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고행을 각오해야 한다. 옥동서원 오른쪽 시멘트 길로 잠시 걸으면 야트막한 봉우리 위에 올라앉은 백옥정이 보인다. 나무데크 층계를 따라 삼사 분 오르면 백옥정에 다다른다.

백옥정에서 주변의 산과 들을 굽어본 다음 10분가량 내려가면 우람한 바윗돌인 세심석과 만난다. 1716년 9월 밀암 이재(1657~1730)가 이곳에 머물던 백화재 황익재(1682~1747)를 방문했을 때 세속의 마음을 씻고 학문을 탐구하라는 뜻으로 세심석(洗心石)이라고 명명했다.

기분 좋은 옛길은 이어진다. 절벽 아래 데크 길과 목책 층계도 나타나지만 대부분은 경사가 완만한 부드러운 오솔길이다. 전망대에서 시냇물을 굽어보기도 하고, 암굴 속에 파묻힌 앙증맞은 불상도 만나고, 길 양쪽으로 수문장인 양 서있는 돌탑도 지나고, 인적 드문 독재골산장도 스쳐 간다. 그러다가 밤나무 영농단지를 뚫고 가면 구수천 옛길의 새로운 명물인 출렁다리를 건넌다. 백옥정으로부터 45분 남짓한 거리다.

불사이군의 충절 상징하는 임천석대

출렁다리를 건너 5분가량 내려가면 저승골 입구에 닿는다. 몽골의 6차 침입 때인 1254년 10월, 황령사의 승려 홍지가 이끈 승병들이 자랄타이(車羅大)의 대군을 유인하여 참패를 안긴 골짜기다. 곧 이어 병풍을 두른 듯한 절벽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한 난가벽(欄柯壁)을 지나면 갈대 무성한 개울 건너편에 임천석대가 솟구쳐 있다.

북과 거문고를 잘 다루던 고려 악사인 임천석은 고려가 망하자 이곳으로 들어와 높은 절벽 위에 대를 만들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태종이 음률에 능통한 그를 거듭하여 부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명사를 남기고 투신했다. 그의 충절을 흠모한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임천석대(林千石臺)라고 불렀다. 그가 마지막 풍류를 즐기며 거문고를 탈 만큼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참 아름답다.

임천석대 앞에서 30분쯤 걸으면 두 개의 돌다리(둘 다 이름이 세월교여서 가슴이 아리다)를 건너 망경대 절벽 아래로 영천이 건너다보인다. 세조가 나무사자를 타고 홀연히 나타난 문수보살의 권유로 목욕한 후 피부병이 나았다는 곳이다.

영천 앞에서 5분 남짓 가면 너덜겅을 지난다. 백화산 기슭에서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쌓인 곳이다. 반야사에서 이쪽을 바라보면 수풀과 경계를 이룬 너덜겅이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 같다고 해서 반야사 호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너덜겅에서 10분쯤 더 가면 천년고찰 반야사에 이르러,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구수천 천년옛길이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 찾아가는 길

황간 나들목에서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황간면-국가지원지방도(국지도) 49호선-수봉리를 거쳐 옥동서원으로 온다.

대중교통은 상주에서 수봉리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 맛있는 집

황간은 올뱅이국밥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된장을 풀어 구수하고 시원하면서 얼큰하기까지 한 국물에 올뱅이(다슬기의 사투리)와 시래기, 수제비가 듬뿍 들어 있어 입맛을 돋운다. 속풀이에도 그만이며 식성에 따라 잘게 썬 고추를 넣어도 되지만 땀깨나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여러 집 가운데 안성식당(043-742-4203)과 동해식당(043-742-4024)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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