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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맛집(229)] 부민옥 김승철 대표

가게 운영, 음식 ‘물 흐르는 듯 … “손님이 편하고, 생각나는 식당으로”

60년 된 노포… 서강대 출신, 제약사 연구원으로 있다 식당 맡아

메뉴, 운영 방식 전통 유지하며 ‘손님’ 위주로 일부 보완

오랜 단골 주손님…인테리어 내부구조 개선해 젊은층도 많아져

“늘 변하지 않는 음식, 손님들이 편하게 선택하는 음식 선보이고 싶어”

자연스럽다. 물 흐르는 듯하다. 걸리지 않는다. 멈추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 낮은 곳을 만나면 낮은 곳으로 흐르고 높은 곳을 만나면 마침내 기다린다. 높은 곳까지 다다르면 또 물은 흐른다. 굳이 내세우지도 않는다.

‘부민옥’의 김승철 대표를 만나면 마치 ‘물 흐르는 듯하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1964년 생. 오십대 초, 중반의 나이다. 서울의 중심지 다동 ‘부민옥’ 대표다.

어머니의 가게를 물려받다

‘다동’은 흔히 무교동이라 부르는 곳이다. 테이블이 40개 남짓. 점심, 저녁으로 꽉 차니, ‘잘 나가는’ 외식업체의 대표다. “어렵다”고 죽는 소리를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 음식이 좋다” “우리 집 손님 많다”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질문을 하면 얼굴에 ‘씨익’ 웃음부터 핀다. 대답은 늘, 그저 맞장구치는 정도다. 인터뷰 내내 50대의 이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부민옥’은 1956년에 세운 가게다. 처음 시작한 이는 현재 김승철 대표의 어머니 송영준씨. 1929년 생. 내년이면 아흔 살이다. 다행히 건강하다. 매일 가게에 나오진 않지만 한 달에 한두 번 꼭 가게에 나온다. 어머니는 친구들과의 모임을 대부분 ‘부민옥’에서 가진다.

“제가 가게를 맡아서 운영하면서도 마음 편한 것은 어머님 덕분입니다. 연세가 많으시지만 아직은 정정하십니다. 버팀목이 되지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늘 이런 경우, 어머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답이 보이질 않으면 어머님께 직접 여쭤보지요.”

김승철 대표는 2남2녀의 막내. 막내 치고도 늦둥이였다. 바로 위의 형과는 7살 차이다. 맏누이와는 ‘띠 동갑’. 12살 아래다.

“아버님은 한국전쟁 때 평안북도에서 피난 내려온 분입니다. 친가 쪽으로는 친척도 드뭅니다. 어머님은 부산에서 사셨고, 피난지 부산에서 두 분이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어머님은 고향이 대전이고요. 어머님 형제분은 6남매입니다. 지금도 외갓집 쪽 친척들은 많고 친가는 적습니다. 음식점을 하신 건 아마 어머님의 친정 쪽, 외갓집의 음식 만지는 솜씨가 좋아서 가능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외할머니가 음식을 잘 만졌다고 들었습니다.”

김 대표가 태어날 무렵 가족들은 이미 무교동에 살고 있었다. 김승철 대표는 서울의 중심지 무교동이 고향인 보기 드문 경우다.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무교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 김상희씨는 막내 김승철 대표가 어린 시절 은행에서 퇴직했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니 경제적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버지의 퇴직, 곧 이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 1969년 논밭이었던 화곡동으로 이사 갔던 일은 상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다. 김승철 대표로서는 어린 시절 일이니 세세히 기억할 수도 없다.

“지금 ‘부민옥’ 자리가 원래 가정집이었습니다. ‘부민옥’은 부근에서 개업을 했고요. 가게 이전은 제가 대표가 되고 나서 했습니다. 이제 8년 정도 되었나요?”

어머니는 말리고, 아버지는 “퇴직하고 가게 해라”고

200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를 맡았다. 어머니는 일흔을 넘겼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운영이 잘 되고 있는 가게다. 당연히 아들, 딸 중 누군가가 맡아서 운영해야 한다. ‘막내’가 가게를 물려받은 것은 희한하다. 가게 운영권을 ‘재산’으로 생각하면 큰형에게 물려주었거나 큰 누이가 맡아야 할 터이다.

“형이나 누나들이 대부분 가게 운영을 않겠다고 하니 제가 맡았지요.”

쉽게 이야기하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퇴직, 음식점 주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02년. 지금처럼 방송채널마다 음식점과 음식을 보여주는 시대가 아니었다. 음식점 운영을 ‘경영’으로 보던 시대도 아니었다. 음식점 주인은 한낱 ‘장사꾼’이었다.

‘김 대표는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한양행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시쳇말로 ‘멀쩡한 직장’이다. 선뜻 그만두고 국밥, 추어탕, 양찜, 전을 파는 식당 주인이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왜 직장을 그만두고 ‘부민옥’ 운영에 뛰어들었는지?” 여러 차례 되짚어 물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공부하기가 싫어서 직장 그만두고 ‘부민옥’에 뛰어들었다고 믿습니다. 연구실이라는 곳이 하루 종일 책, 컴퓨터 등과 씨름하는 곳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안심을 못하지요. 과학 분야는 늘 ‘저널지’ 챙겨서 봐야 하고, 그게 답답해서 그만두었다고 스스로에게 묻고 답합니다. 지금도 당시 연구실에서 같이 일했던 분들과 만납니다. 연구실 OB 모임이지요. 저는 그분들에게 묻고, 그분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연구실 그만두고 음식점 하는 게 어땠냐?’고. 저도 그렇고 그분들도 이제는 ‘참 잘했다’고 말합니다. 아무래도 자영업자는 시간이 편하지요. 출근 시간을 1, 2분 다툴 일도 없고, 퇴근도 마찬가지죠. 얼마쯤 자유롭다는 게 자영업의 매력이고요.”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펄쩍 뛰며 말렸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동료, 선후배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수군댔다. 직장에서 무난히,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갑자가 “식당을 운영하려고 퇴직한다”고 하니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어머니도 ‘막내아들의 식당 운영’을 반대했다.

“어머님은 반대하시고, 아버님은 ‘그만두고 나와서 식당 하라’고 찬성하셨죠. 아버님은 직장생활을 겪어보셨으니까, ‘좀 더 있다 나이가 들면 결국 직장에서 쫓겨난다’고 생각하셨죠. IMF를 겪었을 때니까 실제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지고 있었고요.”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부민옥’ 운영자가 되었다. 이사 전 예전 건물의 ‘부민옥’이다.

“재개발 대상지역이니까 함부로 손댈 수도 없고, 또 언제 이사 가야 할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음식은 주방 이모님들이 잘 하고 있으니까 제가 뭐라고 말을 보탤 이유도 없었고요.”

주방이든 홀이든 25∼30년을 넘긴 직원들이 있을 정도니 ‘신출내기’ 주인이 말을 보탤 필요는 없었다. 지금도 주방, 홀의 직원들은 김승철 대표를 ‘삼촌’이라고 부른다. 가족 같은 분위기다.

“가게를 현재 자리로 이전하면서 처음으로 제 생각을 가게에 반영했습니다.”

첫 아이디어는 엉뚱하게도 ‘여자 화장실을 두 개로, 크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부민옥’의 주력 메뉴는 양무침, 육개장, 추어탕 등 해장국류, 생선찜인 부산찜 등이다. 나이가 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무거운’ 음식들이다. 가게 분위기도 손님들의 나이만큼이나 무거웠다.

“어머님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죠. 서울 한복판 좁은 땅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화장실을 그렇게 만드는 경우는 드물죠.”

김 대표는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였다. 인테리어나 내부구조가 바뀌면 젊은 층들도 찾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여전히 나이든 분들이 주력 손님이지만 심심찮게 젊은 손님들이 찾아든다.

“새 메뉴를 개발할 생각은 지금도 없습니다. 어머님이 정해서 잘 지켜온 메뉴들이 있습니다. 그걸 잘 지키면서 조금씩 보완하면 되겠지요. 저 나름대로의 욕심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게는 손님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공간입니다.”

“그 집은 이런 음식이 유명하니, 꼭 가본다”고 말하는 음식점은 아니다. 가끔 생각나는 음식점, 직장동료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어디 갈까? 그래? 그냥 거기 갈까?”라고 할 때 ‘거기’에 해당하는 음식점을 만들고 싶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국산으로 쓰면서 쇠고기는 한우 대신 수입산을 사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우는 너무 비싸다. 한 접시에 6만∼7만 원대 음식 대신 3만∼4만 원대 음식이 손님들에게는 편하다고 생각한다. 굳이 유행을 따라서 한약재를 넣거나 특정 식재료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주방에서도 오랫동안 사용한 식재료, 양념들을 굳이 바꾸지 않는다. 오랫동안 이어온 그 음식이 사람들이 원하고 선택하는 음식임을 알기 때문이다.

가게를 맡았던 이유, 음식에 대한 나름의 고집, 운영하는 방식 등등이 모두 ‘물 흐르는 듯’하다. “가게를 아들, 딸에게 물려줄 것이냐?”는 우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물려받지 않겠습니까? 회사 다니면서 버는 것보다 수입도 낫고 편하다고 생각하면 물려받겠지요. 뭔가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또 그걸 하겠지만.”

‘부민옥’은 판교 현대백화점에 분점 아닌 분점을 냈다. 김 대표의 형과 형수가 운영 중이다.

“수십 년 단골인 분들이 계십니다. 은퇴하고 그 지역에서 사시는 분들도 많고요. 이분들이 판교 ‘부민옥’을 가보고 우리 가게에 와서 ‘판교 부민옥 음식이 이렇더라’고 말을 전해 줍니다. 아마도 판교에 가서는 다동 부민옥이 어떻더라고 이야기하겠지요. 무척 고마운 분들입니다. 늘 변하지 않는 음식, 그러면서도 손님들이 편하게 선택하는 음식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사진 켑션

-‘부민옥’ 김승철 대표는 사람들이 꼭 찾는 집이 아니라 편하게 찾는 음식점을 만들고 싶어 한다

-부민옥 양무침. 나이 든 손님들이 좋아하는 메뉴인데 요즘은 젊은층도 많이 찾는다.

-부민옥 쇠고기 수육. 고기 양이나 음식 수준에 비해 가격이 착한편이다.

-부민옥 해물찜. 이름이 부산찜이다.

다동(무교동)맛집들

용금옥

서울식 추탕을 처음 선보인 1세대 추어탕 집이다. 1932년 개업. 80년의 업력이다. 맵고 칼칼한 맛의 서울식 추탕이다. 추어튀김 등 저녁 술안주 메뉴도 가능하다.

충무집

경남 통영 출신의 주인이 통영 음식을 제대로 선보이고 있다. 도다리쑥국이나 멍게비빔밥, 갈치조림 등이 수준급이다. 저녁에는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줄 서는 집이다.

내강

좁은 공간이다. 벽면을 바라보고 식탁이 있고 등받이 없는 의자가 8개쯤 있다. 비빔밥이 주력 메뉴인데 몇몇 국물 음식도 가능하다. 가격 대비 음식은 수준급이다.

무교동북엇국집

늘 줄을 서는 식당이지만 줄은 빨리 줄어든다. 조미료 사용이 절제된 북엇국이 단일 메뉴로 나온다. 부분적으로 반찬 등은 셀프다.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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