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이 품은 계곡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뜻 깊은 곳은 곡운구곡이다. 지촌천을 따라 7㎞ 남짓 펼쳐지는 곡운구곡(谷雲九曲)은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김수증의 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하류에서 상류로 물길을 거슬러 1곡부터 9곡이 차례로 이어진다.

바위마다 꽃이 만발하는 제1곡 방화계, 맑은 물이 옥처럼 푸른 제2곡 청옥협, 하곡의 딸 신녀의 골짜기인 제3곡 신녀협, 흰 구름처럼 물안개가 드리우는 제4곡 백운담, 옥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제5곡 명옥뢰, 용이 누운 깊은 못인 제6곡 와룡담, 맑은 달이 비치는 제7곡 명월계, 김시습의 절의를 기리는 깊은 물인 제8곡 융의연, 바위가 층층이 쌓인 제9곡 첩석대 등이다.

서인 노론계의 문중에서 태어난 곡운 김수증(1624~1701)은 젊어서부터 산수를 좋아해 금강산 등 여러 곳을 유람하면서 기행문을 썼다. 1650년 사마시에 합격한 그는 1652년 세자익위사세마를 시작으로 형조정랑, 공조정랑 등을 역임했다. 1668년 부친 김광찬이 별세하자 삼년상을 치른 후 은둔지를 찾아 나섰다가 1670년 화천 영당동에 농수정사를 지으니 화천 땅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성천부사를 지내던 1675년, 아우 김수항이 송시열과 함께 유배되자 벼슬을 버리고 농수정사로 들어갔다. 이때 주자의 무이구곡에서 영감을 얻어 곡운구곡을 정하고 제1곡의 시를 지었다. 나머지 여덟 시는 그의 아들과 조카, 손자에게 맡겼다. 1682년에는 화가 조세걸에게 실경산수화인 ‘곡운구곡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가로 54㎝ 세로 37.5㎝의 10폭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비경의 계곡과 어우러진 화음동정사지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다시 집권하고 아우 김수항과 김수흥이 차례로 영의정을 이어받아 한동안 평안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송시열과 김수항이 사사되고 이듬해에는 김수흥이 유배지에서 병사하자 벼슬을 버리고 곡운구곡 인근 화음동으로 들어가 정사를 지었다. 1694년 갑술옥사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한성부 좌윤과 공조참판 등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고 화악산 골짜기로 은둔했다. 숙종대의 어지러운 당쟁과 붕당정치에 환멸을 느낀 탓이다.

화악산 일원에서 말년을 보내던 김수증은 1701년(숙종 27) 78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그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만 1700년, 포천 창옥병 수경대의 암각문을 썼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말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음을 엿볼 수 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화악터널을 벗어나면 강원도 화천 땅으로 들어선다. 구불구불한 산악도로를 5.7㎞가량 내려서면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강원도기념물 63호인 화음동정사지(華陰洞精舍址)가 보인다. 1689년부터 김수증이 조성한 화음동정사는 여러 채의 집과 정자, 축대, 채소밭, 우물, 다리 등으로 이루어져 제법 규모가 컸으나 지금은 송풍정과 삼일정만 복원되어 있다. 일찍이 매월당 김시습을 흠모한 김수증은 유지당 건물에 김시습 초상을 걸어놓기도 했다.

삼일계곡의 일부분인 화음동은 주변 경관이 남다르다. 기암괴석과 너럭바위 사이로 굽이치는 옥류를 짙은 숲이 휘감고 남쪽 멀리로는 화악산 능선이 힘차게 날개를 뻗는다. 과연 김수증이 정사를 짓고 은둔할 만한 비경이요 절승이다. 평상시에는 한적한 이 일대 골짜기는 한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들어와 정적을 깬다.

청은대에서 김시습을 우러르다

화음동정사지에서 사창리 방면으로 2.3㎞ 남짓 북상하면 왼쪽으로 삼일교가 놓여 있다. 삼일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영당교를 건너면 곡운구곡이 이어지는 지촌천 물길이다. 영당교 주변은 제7곡 명월계가 펼쳐지는 구간이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럴싸한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훗날 곡운구곡을 탐방한 다산 정약용은 제7~9곡에 대해 구곡으로서의 정취가 부족하다며 폄하했는데 그 말이 맞는 듯싶다. 7~9곡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발길을 옮긴다.

영당교로부터 300미터 지점에 6곡 와룡담이 누워 있다. 푸른 숲을 이고 있는 암반 아래로 푸른 못이 드리운다. 김수증이 농수정사를 지은 곳이 바로 이 일대다. 곧이어 5곡 명옥뢰와 4곡 백운담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풍치로 다가온다.

곡운구곡의 진수는 4곡 백운담과 3곡 신녀협 사이의 1㎞ 남짓한 구간으로 용담계곡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지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화강암이 땅위로 솟아오를 때, 바위를 누르던 압력이 힘을 잃고 화강암이 팽창하면서 수평방향의 결이 발달한 것을 판상절리라고 한다. 곡운구곡 곳곳에서 판상절리를 볼 수 있는데 특히 4곡과 3곡에 걸쳐 많이 발달해 있다.

곡운구곡은 아름답지만 쉴 곳도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 아쉬움을 3곡 신녀협이 풀어준다. 주차장과 매점이 있으며 문학작품을 형상화한 철제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맑은 물에 발 담그고 푹 쉬기에 그만인 너럭바위도 여기저기 드리운다.

신녀협 위에는 청은대가 세워져 있다. 신녀협은 매월당 김시습도 즐겨 찾은 곳으로 정자의 본디 이름은 수운대였다. 김시습을 흠모한 김수증이 그의 법명인 벽산청은(碧山淸隱)을 따서 청은대로 고쳐 부른 것이다. 지금의 청은대는 2006년 재건했다. 신녀협 하류로 2곡과 1곡이 이어지지만 차들이 쌩쌩 달리는 56번 국도변이어서 위험한데다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에도 역부족이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찾아가는 길=가평에서 75번 국도-목동삼거리-391번 지방도-화악터널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사창리행 버스 이용.

▲맛있는 집=사창리 버스터미널 인근의 삼대막국수(033-441-7608)는 봉평에서 자란 메밀을 이용한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로 유명하다. 소머리국밥과 소머리수육, 돼지수육, 모듬전, 녹두전 등도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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