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상 연골판이라는 단어는 일반인들에겐 아주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흔히 쓰이는 단어로 바꿔 말하면 상당히 친숙하게 다가온다. 민간요법에서 ‘먹어두면 관절연골에 도움이 된다’라고 알려진 이것. 식당 간판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도가니’가 바로 이 반월상 연골판이다.

우리 무릎 속 뼈 사이에 끼어있으면서, 뼈를 덮고 있는 연골이 서로 마찰하면서 긁히고 닳아 없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도가니가 해낸다. 일종의 방석, 쿠션인 셈이다. 이런 중요한 일을 평생 무릎 속에서 하다 보니, 무리한 운동으로 가끔씩 탈이 나곤한다. 무릎이 살짝 비틀어지거나 등산처럼 무릎을 많이 쓰는 운동을 꾸준히 하다보면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이내 점차 커지면서 완전히 찢어지는 일도 생기게 된다.

증상(통증)은 바로 느낄 수도 있고 못 느낄 수도 있다. 급하게 크게 찢어지면 무릎 속에 피도 나고 물이 차면서 붓는다. 그래서 바로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에 반해 천천히 찢어지면 무릎 주변 근육과 인대가 무릎 속이 약해진 것을 일정 기간 동안은 보호한다. 때문에 불편하지만 쉬어주면 곧 좋아지는 상황을 반복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병을 발견할 시기를 놓치게 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도 망설이는 경우도 많아진다.

진료실에 50대 남자 환자가 씩씩하게 들어왔다. 골프도 자주 치고 등산도 가끔 다닌다고 했다. 이제까지 무릎 아픈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너무 아파서 왔다기 보다는 좀 불편한 느낌이 1달 정도 오락가락 해서, 약을 조금 먹으면 편해질까 싶어 병원에 왔다고 했다. X-ray 상에서 퇴행성 관절염 소견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찰 소견상 연골판 파열이 의심되었다. MRI 검사를 권했지만 영 마뜩찮은 표정이었다.

자격지심인지 모르지만 환자분의 표정에서 ‘여기도 역시 마찬가지로 과잉진료하는군’ 이란 느낌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상세하게 설명했다. 환자는 결국 MRI 검사를 했고, 그 결과는 역시 생각대로 연골판 파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이렇게 연골판이 찢어지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파열이 진행된다. 많이 커지기 전에 찢어진 부분을 잘라내고 정리하는 시술을 해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환자분은 자신의 증상이 그렇게 심하지 않기 때문에 시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일단 조심해서 지내면서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다음 진료를 기약했다.

옷을 입다가 어딘가에 걸려서 찢어지면 그대로 입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찢어진 정도에 따라 해결책이 달라진다. 꿰매서 입을 수 있으면 꿰매고 실올이 많이 풀어진 곳은 잘라버리고 다시 적절히 매만져준다. 흔히 말하는 리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으면 찢어진 부분에서 문제가 계속 생겨서 결국 그 옷을 완전히 못 입게 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연골판 파열도 이와 같아서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연골판 파열을 방치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기능이 없어질 정도로 완전히 찢어져 없어진다. 그때가 되면 심한 통증이 생기게 되는데, 그보다 더 문제는 통증보다 퇴행성 관절염이 너무 빨리 심해진다는 것이다. 이때는 다시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별로 없다. 더 큰 수술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무릎 수술에 대해 말할 때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게 바로 ‘쓸 때까지 쓰다가 도저히 안될 때 수술하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절반만 맞다. 일단 무릎뼈를 감싸고 있는 연골이 닳아서 없어지기 시작하면 이때는 최대한 아끼고 관리하다가 연골이 완전히 없어질 때 수술해주는 것이 분명히 맞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현대의학은 연골이 닳는 중간에 멈춰줄 수 있는 방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골판은 다르다. 찢어진 것을 발견한 그 순간에 간단한 관절경 시술로 정리해주면 이미 찢어진 만큼은 약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더 악화되는 것은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연골판 파열에서 관절경 시술이 답은 아니다. 이미 파열이 너무 많이 진행되거나 퇴행성관절염이 중간 정도 이상 진행된 상태라면 단순하게 관절경 시술로 얻을 것이 별로 없다. 찢어지지 않고 보존해야 할 부분이 전체의 40%가 안 된다면, 정리하던 하지 않던 관절염을 막아주는 기능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는 최대한 염증을 가라앉히기 위한 주사나 약, 그리고 재활운동을 통해 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그렇게 쓸 때까지 쓰다가 더 큰 치료(수술)를 한 번 하기는 해야 한다.

과잉진료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 때문에 적절한 검사나 시술 또한 갈수록 설명하고 이해시키기가 힘들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설명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 반월상연골판 파열에 아주 적절한 말이다.

달려라병원 손보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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