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동남단에 위치한 길안면은 높은 산으로 빙 둘러싸인 산지로 면의 중심부를 길안천이 관통한다. 청송 보현산 북쪽 기슭에서 발원한 길안천은 북서쪽으로 굽이굽이 돌면서 백자천, 현자천, 신천 등을 받아들인 뒤에 안동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길안천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들의 휴식처로 사랑받아왔다. 낙동강의 수계(水系) 중에서는 비교적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간직한데다가 산봉우리들로 에워싸여 풍광이 수려하다. 더욱이 길안천을 끼고 35번 국도가 이어지므로 한여름이면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다. 길안천은 야영하기에 알맞은 백사장이 곳곳에 펼쳐져 있을 뿐만 아니라 물살이 세찬 구간이 별로 없어서 아이들도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길안천 주변에서 첫손 꼽히는 비경은 용담폭포 일원이다. 그러나 여름철에도 이곳을 알고 찾아오는 이는 극히 드물다. 필자가 피서 절정기에 갔을 때도 용담폭포에는 두세 가족만이 고즈넉하게 더위를 씻으며 쉬고 있었다. 그만큼 깊이 숨은 오지인 것이다.

용담폭포 입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길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다 주차공간도 없는 까닭이다. 용담사라는 작은 절 못미처 250미터 지점의 밧줄 걸린 난간이 폭포로 내려가는 길목이므로 자동차는 용담사에 세우고 되돌아 걸어가는 게 좋다. 굴러 내리는 돌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가파르게 비탈진 너덜겅을 조심스레 헤쳐 내려가야 한다.

암굴 속으로 쏟아지는 신비스러운 물줄기

용담폭포는 멋지다. 공포심을 자아낼 만큼 위압적이기도 하다. 하트형으로 이루어진 컴컴한 암굴 속으로 물줄기가 쏟아진다. 정숙한 숙녀 분들께는 대단히 무례한 표현이지만 감히 용서를 빌고 말한다면, 흡사 여성의 가장 비밀스러운 신체부위를 연상시키는 절묘한 자태의 암굴이다.

굴속이 너무 어두워 폭포수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고 나서야 신비스러운 물줄기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의 용담(龍潭)은 용이 살았다는 전설에 걸맞게 깊고 검푸르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용의 새끼인 양, 물뱀이 유유자적 헤엄치는 게 아닌가. 그러니 누구도 감히 뛰어들 용기를 내지 못하는 공포의 못이다.

용담 아래로는 두 개의 웅덩이가 더 이어진다. 바로 아래의 못은 깊고 비좁지만 맨 아래의 웅덩이는 깊이와 크기가 물놀이하기에 딱 좋다. 물뱀도 여기까지는 내려오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인지 세 어린이가 물장구치며 마냥 즐거워한다.

용담폭포 인근의 용담사는 664년(신라 문무왕 4) 화엄화상이 창건한 고찰로 1574년(조선 선조 7) 송혜증법사가 중건했다.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지금은 무량전과 요사 2동, 근래 복원한 대웅전이 남았을 뿐이지만 산사의 운치는 여전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겹처마 익공집인 무량전은 단순하면서 소박한 정취가 그윽하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0호로 지정되었다.

정자와 계곡, 숲이 하나로 손잡은 만휴정 원림

용담폭포에서 5㎞ 남짓 떨어져 있는 길안면 묵계리는 보백당 김계행(1431~1521)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묵계종택과 묵계서원, 만휴정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삼사(三司)의 요직을 두루 맡았던 김계행은 바른말을 아끼지 않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때 투옥되기도 했다. 청백리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그는 1859년(철종 10)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안동김씨 묵계종택은 정침과 별당인 보백당 및 가묘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은 ㅁ자형의 전형적인 안동지역 가옥이며 보백당은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묘는 홑처마 맞배지붕의 소박한 건물이다.

묵계서원은 보백당 김계행과 응계 옥고(1382~1436)를 봉향하기 위해 1687년(숙종 13)에 창건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강당과 주사만 남아 있다가 근래 들어 없어진 건물들을 새로 지었다. 팔작지붕 건물인 강당은 중앙의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들인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창건 당시의 유일한 건물인 주사(廚舍)는 ㅁ자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묵계서원 서쪽 골짜기의 만휴정은 김계행이 1501년 사색과 독서를 즐기며 만년을 머물기 위해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정자로 툇마루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휴정과 그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은 만휴정 원림(晩休亭 苑林)이라는 이름으로 2011년 8월 명승 82호로 지정되었다.

만휴정 원림은 기암절벽과 괴석, 너럭바위, 맑은 물과 깊은 웅덩이, 폭포수, 아름드리 노송 숲의 그윽한 향기가 고색창연한 정자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가경을 연출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융화되어 동화하려는 선현들의 깊은 뜻을 헤아리려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찾아가는 길=서안동 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안동-35번 국도-길안을 거친다. 길안면 사거리에서 35번 국도로 5.2㎞쯤 남하하면 묵계종택 및 서원, 만휴정 입구인 묵계리에 이르고, 3.8㎞가량 더 내려간 다음 우회전하면 용담사로 이어진다.

대중교통은 안동시내버스로 길안으로 온 뒤에 묵계리와 금곡리 방면 마을버스로 갈아탄다.

▲맛있는 집=안동은 간고등어의 원조격인 고장이다. 간고등어 요리는 구이와 조림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담백하고 짭조름한 구이에 비해 갖은 양념과 무, 채소 등이 곁들인 조림은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다. 안동시내의 많은 집 가운데 태화동의 양반밥상(054-842-0090), 천리동의 안동구이마당(054-853-8292), 옥동의 성원(054-859-1200), 안동역 앞의 일직식당(054-859-6012)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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