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 판매하는 특정 브랜드의 청바지를 사 오게 하는 실험을 하면, 남자는 곧장 그 매장에 가서 특정한 물건만 사가지고 돌아오는 반면, 여자들은 청바지와 관련 없는 백화점의 오만 군데 매장을 돌다가 청바지를 사온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백화점에 ‘마님’을 따라 나섰다가 같이 쇼핑하는 것은 내팽개치고 휴게실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거나 심지어는 코골면서 자는 ‘돌쇠’를 쉬 발견할 수 있다. 요즘은 이런 생태환경을 파악한 백화점에서 돌쇠를 위한 쾌적한 공간을 제공하면서 마님들이 편안하게 여러 군데를 돌아보게 해서 매상증대를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에 의하면 이런 현상은 고대 수렵사회로부터 내려온 전통이라는 것이다. 농경사회 이전에는 수렵이나 채집에 의해서 생활을 영위해야 했는데 수렵은 주로 남자들의 몫이고 채집은 여성들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남자들이라도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었을 테고 결국 가족의 생계는 여자들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개복숭아는 언제쯤 다 익을 것 같고, 딸기는 다음 주 쯤 따먹으면 되겠다는 것을 가늠하기 위해서 여기저기로 돌아다닌 것에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농경사회에 접어들면 농업생산성과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자보다는 농사일에 적합한 근육질로 가득한 남자아이들이 생산되기를 바라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잉여생산물을 유산으로 상속하는 개념이 생기면서 ‘아들’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양반 댁에서는 아들을 출산하는 것이 결혼한 여성의 제일 덕목이라 오죽하면 17세기 초 동아시아 각국이 그토록 갖고자 했던 동의보감에도 전여위남법(轉女爲男法)이 실릴 정도일까? 허준도 이런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들을 간절하게 원했던 사람들에게 그 이전에 수록된 문헌을 참고자료로 실은 듯하다. 한의학 최초의 임상서인 상한론을 지은 장중경의 또 다른 책인 금궤요략(金匱要略)에는 2가지 임산부 보약 처방이 수록되어 있는 데 그 당시 임신과 출산이 한 가정 뿐 아니라 국가에서도 노동력과 군사력 때문에 중요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당귀산(當歸散)과 백출산(白朮散)이 그것이다. 당귀산은 금궤당귀산(金櫃當歸散)으로 방약합편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어 오늘날까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임신 중에 허약한 산모나 태아에게 도움을 주는 한약 처방이 궁귀보혈탕(芎歸補血湯)이 있는데 이것 역시 방약합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들 처방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한약재가 백출(白朮)이다. 태아가 엄마 배속에서 무럭무럭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게 하는 것을 안태(安胎)라 하는데 안태의 성약(聖藥)이 백출(白朮)과 황금(黃芩)이다. 백출은 건조해서 물을 말리는 역할인 조습(燥濕)작용이 있는데 아마도 양수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이 아닌지 생각되고, 황금은 찬 약으로 임산부가 열이 쉽게 올라가서 유산되는 것을 막아준다. 임신오조(姙娠惡阻)란 것이 있다. 오조(惡阻)란 처음 읽는 사람은 악저, 악조라고 읽기 쉽다. 소씨병원론(巢氏病源論)에서 처음 나온 말로 별칭이 오식조식(惡食阻食)이다. 밥 먹는 것이 싫다는 뜻이다. 참 쉬운 우리말이 있다. ‘입덧’이다. 입덧이 심해지면 한 숟갈이라도 먹을라치면 모두 게워내어 불편한 것 외에도 혹여 아이의 발육에 영향을 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렇다고 민간요법에서 이르는 데로 아무 약이나 복용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해 질 수 있다.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은 국왕 이하 왕족과 궁중에서 쓰이는 약을 조제하던 관청인데 이것이 구한말 대한제국 때는 태의원(太醫院)으로 바뀌고 그 일을 담당했던 사람을 전의(典醫)라 불렀다. 김영훈은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전의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황실에서 사용했던 처방을 청강의감으로 엮었는데 그 속에 입덧에 대한 명방이 있다. 귤영보생탕(橘苓補生湯)이 그것이다. 입덧이 나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 과거 황실의 여인들이 복용했던 처방을 써봄직하다. 책이 없으면 방약합편에 수록되어 있는 보생탕(保生湯, 상105)도 써봄직하다. 여기도 역시 백출(白朮)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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