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고찰 품은 폭포의 왕국에서 늦더위와 작별하다

포항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인 내연산의 정상은 해발 710미터의 삼지봉으로 알려져 왔고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해발 930미터의 향로봉이 내연산의 최고봉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본디 종남산(終南山)이라고 불려오던 이 산은 신라 진성여왕이 이곳에서 견훤의 난을 피한 뒤에 내연산(內延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암벽과 계곡, 폭포 등이 빼어난 절경을 연출하는 내연산은 영일군에 속해 있던 1983년 10월 1일, 군립(郡立)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내연산 남쪽 기슭에 신라 고찰 보경사가 안겨 있다. 신라 진평왕 24년(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명법사가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의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와 이웃 나라의 침입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아뢰었다. 이에 진평왕이 지명법사와 함께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운 다음 금당을 세우고 보경사(寶鏡寺)라고 불렀다.

보경사는 오랜 역사에 비해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지만 보경사원진국사비와 보경사부도 등의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52호로 지정된 보경사원진국사비는 고려 고종 11년(1224년)에 세운 비석으로 높이 1.83미터, 너비 1.04미터, 두께 0.17미터에 이른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 조각과 육각형의 무늬 안에 새겨진 ‘왕(王)’자가 눈길을 끈다.

12개의 폭포가 이어지는 선경 지대

1965년 9월 1일 보물 제430호로 지정된 보경사부도(승탑)는 높이 4.5미터의 팔각 원당형(八角圓堂形) 부도로 원진국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고려 고종 11년(1224년)에 세워진 이 부도는 탑신이 지나치게 길고 커서 고준(高峻)한 느낌을 주며 폭이 좁은 탓에 안정감이 없어 보인다.

그 밖에 조선 숙종이 보경사 일원을 유람하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 시를 지어 남겼다는 어필 각판과 고려 현종 14년(1023년) 세워진 높이 약 5미터의 오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 등의 문화재를 품고 있다. 수령 400여 년, 높이 6미터의 탱자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1호)와 수령 약 300년의 반송도 눈길을 끈다.

보경사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만 둘러보고 가지 않는다. 보경사 위쪽으로 경북3경의 하나로 꼽히는 멋진 경승지가 펼쳐지는 까닭이다. 무려 12개의 폭포를 비롯해 신선대와 학소대 등의 기암절벽, 깊은 못, 암굴 등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어 이를 놓치기 아깝다. 이 풍치절경의 골짜기는 보경사계곡, 청하골, 갑천계곡, 내연산 12폭포골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보경사를 지나 물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평탄한 산길을 1.5㎞쯤 오르면 제1폭포인 상생(쌍생)폭포와 만난다. 그다지 웅장하지는 않지만 두 물줄기가 나란히 떨어지는 모습이 사이좋은 형제처럼 다정하면서 단아하기 그지없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면 제2폭포인 보현폭포, 제3폭포인 삼보폭포, 제4폭포인 잠룡폭포, 제5폭포인 무풍폭포가 연달아 이어진다. 이 가운데 잠룡폭포 일원의 골짜기는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의 골짜기에 모인 남부군 대원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발가벗고 목욕하는 장면을 바로 이곳에서 찍었다.

관음폭포와 연산폭포 일원이 가장 환상적

이 계곡은 제6폭포인 관음폭포와 제7폭포인 연산폭포 일원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쌍폭인 관음폭포는 웅덩이 옆에 뚫려 있는 큼직한 쌍굴인 관음굴, 장성처럼 둘러친 선일대·신선대·관음대·월영대 등의 층암절벽, 폭포 위로 걸린 연산적교(구름다리) 등과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관음폭포 위로 드리운 연산적교를 건너면 높이 30미터에 이르는 연산폭포가 위용을 뽐낸다. 내연산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포로 깎아지른 암벽인 학소대를 타고 힘찬 물줄기가 쏟아지는 장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영화 ‘가을로’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보경사에서 연산폭포까지는 약 3㎞로 1시간 남짓한 오솔길이다.

연산폭포 위로는 길이 없고 관음폭포 옆으로 뚫린 산길을 따라 15분가량 오르면 제8폭포를 만난다. 숨어 있다고 해서 은폭(隱瀑)이라고 불리는 폭포로 가지런한 물줄기가 시퍼런 못으로 떨어지는 자태가 인상적이다.

은폭 위쪽으로도 제9폭포인 시명폭, 제10~제12폭포인 제1복호폭, 제2복호폭, 제3복호폭이 이어진다. 그러나 거기까지 찾아가는 이는 거의 없다. 제법 힘든 길인데다 지금까지 본 여덟 폭포만으로도 12폭포골의 진면목을 충분히 감상한 셈인 까닭이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찾아가는 길=포항-영덕간 7번 국도를 따르다가 송라에서 보경사 쪽으로 들어온다.

대중교통은 전국 각지에서 열차, 고속버스, 직행버스 등을 타고 포항으로 온 다음 보경사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맛있는 집=물회는 채치듯 잘게 썬 생선회 위에 배, 오이, 상추 등을 얹고 국수나 밥과 함께 고추장에 비벼먹는 음식으로 특히 포항이 유명하다. 물회는 싱싱한 생선을 써야 함은 물론이며 무엇보다 고추장 맛이 중요하다. 포항 물회는 매실, 엿기름, 찹쌀가루, 메주가루, 고추 등의 다양한 재료를 섞어 전통 발효 방식으로 숙성한 고추장을 사용해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낸다. 도다리와 넙치(광어) 외에 청어, 꽁치, 전어, 멸치 등 등푸른생선을 이용한 물회도 내는 것이 포항 물회의 특징이다. 포항의 물회 전문점 중에서도 북부시장 입구에 있는 새포항물회집(054-241-2087), 영일대해변의 충청도횟집(054-255-1484)과 환여횟집(054-251-8847)이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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