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전설 속 비경에 감동하다

관매도는 150여 개의 섬들이 새떼처럼 모여 있는 조도군도(鳥島群島)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섬에는 서기 1600년 무렵 나주에서 강릉 함씨가 처음으로 들어온 이후 제주 고씨, 전주 이씨, 김해 김씨가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4㎢ 남짓한 넓이에 400여 주민이 살아간다.

배에서 내리면 왼쪽으로 관매해수욕장이 펼쳐진다. 관매8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길이 2㎞ 남짓한 모래밭과 울창한 송림이 멋들어진 조화를 이루고 해넘이도 장관이다. 백사장 뒤로는 3만여 평 넓이에 수령 300~400년 곰솔(해송)이 빽빽하게 들어차 수천 명이 들어가도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고 울창한 해변 송림으로 꼽히는 천혜의 야영장이다. 해수욕장 끝 지점에는 채석강 비슷한 갯바위 지대와 해안 동굴도 숨어 있다.

해수욕장 옆의 관매초등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분교(조도중학교 관매분교), 유치원이 한 울타리에 있어 이채롭다. 관매해수욕장 송림 뒤에 자리해 있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에워싸인 운치도 아늑하다.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모두 바다를 닮을 것만 같다.

학교 정문 옆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후박나무가 우뚝 서 있다. 천연기념물 212호인 관매도 후박나무는 수령 800년에 이르고 높이 18미터에 굵기가 두 아름이나 된다. 이 후박나무는 세 그루의 곰솔 및 두 그루의 참느릅나무와 어우러져서 작은 성황림을 이룬다.

거문고 소리에 옥황상제 명을 잊고

제2경 남근바위는 선녀가 방아를 찧었다는 방아섬(방에섬) 정상에 올라앉은 절굿공이 같은 바위로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정성껏 기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조도 신전마을을 바라보고 있어 그곳 과부들의 애를 태웠다던가. 신전마을 처녀들이 방아섬을 바라보다가 큰 파도에 남근바위가 움직이는 것 같아 얼굴을 붉히며 숨었다는 얘기도 있다.

돌담이 인상적인 관호마을 골목길을 돌아 작은 고개를 넘으면 제3경 장사바위(돌묘와 꽁돌)와 만난다. 꽁돌은 지름 4~5미터 정도 되는 둥그런 바위로 손바닥처럼 움푹 파인 자국이 나 있고 그 앞에는 돌묘가 있다. 이에 얽힌 전설.

옥황상제가 애지중지 아끼던 꽁돌이 두 왕자의 실수로 지상으로 떨어지자 옥황상제는 하늘장사에게 꽁돌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하늘장사가 왼손으로 꽁돌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거문고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하늘장사는 그 소리에 넋을 잃어 옥황상제의 명을 잊고 말았다. 이에 옥황상제는 두 명의 사자를 더 내려 보냈으나 그들마저 거문고 운율에 취해 꽁돌 옆에서 일어설 줄 몰랐다. 그러자 진노한 옥황상제가 돌무덤을 만들어 그들을 묻어버렸다는 전설이다.

장사바위에서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굽어보며 30분가량 가면 제5경 하늘다리에 이르는데, 그 도중에 제4경 할미중드랭이굴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하지만 워낙 험한 길이어서 대부분 포기하고 만다. 비 오는 밤마다 할미 도깨비가 나온다는 전설처럼 깊고 험상궂은 굴이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신비의 하늘다리

관매도 최고의 절경은 줄구렁이봉과 다리치섬이 닿을 듯 말 듯 끊어져 있는 하늘다리로 먼 옛날 방아섬에서 방아 찧던 선녀들이 날개를 벗고 쉬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50미터 높이의 바위 봉우리가 3~4미터 너비로 칼로 자른 듯 갈라진 모습이 신비롭다. 이 사이에 나무다리를 놓아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한 뒤부터 하늘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1993년 무렵 나무가 썩어 없어졌다. 그러다가 2010년 무렵 탐방로와 튼튼한 철제 다리를 새로 놓아 손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까마득한 암벽과 거센 파도가 절경이지만 이곳의 진면목은 바다 쪽에서 보아야 드러난다,

제6경~8경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볼 수 있다. 제6경 서들바굴(바위)폭포는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곳으로 안쪽에 깊이 10미터 가량 되는 동굴이 있다. 제8경 벼락바위(하늘담)에는 마을제의 제주로 뽑힌 총각이 여자를 멀리해야 한다는 금기를 어기고 몰래 처녀를 만나다가 함께 벼락을 맞았다는 전설이 어려 있다. 두 남녀는 제7경 다리여의 쌍구렁이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관매도는 아름다운 풍경마다 전설과 얘깃거리를 알알이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숱한 전설들을 모두 믿고 싶도록 만든다. 그것이 관매도가 지닌 진정한 매력이리라. 그 매력은 초가을인 9월 중순부터 하순 사이에 한결 도드라진다. 섬 안쪽의 들판이 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이는 까닭이다. 저 유명한 봉평과 달리 호젓하고 한적하게 만나는 은빛 꽃밭이 감동으로 물결친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찾아가는 길=진도 팽목항에서 하조도를 거쳐 하루 1~2회 여객선이 운항하며 1시간 20분쯤 걸린다. 문의 061-544-5353.

▲맛있는 집=관매도에는 별다른 식당이 없고 민박집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제철 해산물을 위주로 한 밥상이 소박하면서 깔끔하니 입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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