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가까운 역사, 원형 유지 …숱한 손길 거쳐 양념 닭갈비 숯불로 맛 내

식재료 열악한 강원도, 값싼 닭고기 활용, ‘춘천닭갈비’ 자리잡아

‘원조숯불닭불고기’ , 철판 사용하고 야채 섞는 일반 춘천닭갈비와 달라

‘원조숯불닭불고기’. 닭갈비로 유명한 춘천에서 ‘원조’로 유명해진 집이다. 방송에도 출연했고 손님들은 줄을 잇는다. 춘천의 닭고기 관련 음식은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원조’로 인정받는 ‘원조숯불닭불고기’의 이야기와 춘천 닭고기의 역사를 김명자 대표에게 듣는다.

계륵인가, 닭갈비인가?

흔히 춘천 닭갈비라고 표현한다. 누구나 춘천? 닭갈비라고 생각한다. 춘천 닭갈비는 춘천막국수, 감자전등과 더불어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의문점은 닭갈비다. 과연 ‘닭갈비’인가?

닭갈비는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계륵(鷄肋)’이다. 그야말로 ‘닭의 갈비 부분에 붙어 있는 하잘 것 없는 살’이다.

계륵은 먹기엔 별로, 버리기엔 아까운 것이다. 난세 간웅 조조 덕분에 유명해졌다. 후한 헌제 23년, 중국의 천하대세가 삼국 분할로 향하고 있었다. 유비가 조조의 한중을 공격, 조조의 장수 하후연이 전사했다. 조조가 대군을 일으켜 한중에 다시 왔으나 보급로가 끊기는 바람에 오지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궁벽한 조조가 닭국을 먹다가 닭갈비를 보고, 닭갈비(鷄肋)라고 했고 이 표현이 잘못 전달되어 그날의 암호가 되었다. 조조는 암호, 계륵을 듣고 미리 짐작, 철수를 지시한 책사 양수의 목을 쳤다. 물론 평소 “언젠가는 손을 봐주겠다”고 생각했던 조조의 냉정한 처단이었다. 이런 이야기가 소설 <삼국지연의>에 실리면서 계륵은 일약 유명해졌다.

버리기도 아깝고, 먹기엔 별로인 상황이 곧 계륵, 닭갈비다.

문제는, 춘천의 닭갈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살이 많고 고기 양이나 맛에 비해서는 퍽 가격이 싸다는 점이 조조의 계륵과는 다르다.

춘천의 닭갈비는 계륵이 아니다. 춘천의 닭갈비는 시작부터 닭의 갈비 살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마치 돼지갈비 같이 푸짐한, 그러나 닭으로 만든 고깃살’이 닭갈비다. 즉, ‘닭고기로 만든, 돼지갈비를 대체할 만한 음식’이 바로 닭갈비다.

닭고기, 돼지고기를 대체하다

“1960년대 춘천에 돼지갈비를 내놓던 식당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갑자기 돼지갈비를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주인이 양념한 돼지갈비 대신 내놓을 음식을 찾았다. 문득 닭고기가 떠올랐다. 주인은 양념한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비슷한 방법으로 양념해서 내놓았다. 그게 바로 춘천 닭갈비의 시작이다.”

인터넷 등에 떠도는 내용이다. 지금으로서는 다수설이다. 이 내용을 보면 양념 돼지갈비 대신 양념 닭고기를 사용했고 그게 바로 춘천 닭갈비의 시작임을 알 수 있다.

‘원조춘천닭불고기’의 대표 김명자씨가 전하는 말도 비슷하다.

“지금은 제가 운영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이모님이 이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이모님도 창업을 한 건 아니고 늙으신 노부부에게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그 노부부가 바로 양념 돼지갈비 대신 고추장 양념을 한 닭고기를 팔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춘천에서 양념 돼지고기를 내놓던 가게의 노부부가 바로 오늘날 ‘춘천닭갈비’의 주인공이다. 이 부부가 내놓은 것이 바로 고추장에 양념한 닭고기, 닭 불고기 그리고 오늘날의 닭갈비였다. 닭갈비는 닭의 갈비가 아니었다.

“닭 불고기라고 표현한 것은 갈비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니까, 우리는 닭고기를 숯불에 굽는다고 해서 닭 불고기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사용하는 불은 숯불로 바뀌었습니다. 연탄불보다는 숯불이 낫지요. 예전에는 국산 참숯을 사용했는데, 이제는 수입산을 사용합니다. 물론 최고의 품질인 것을 골라서 사용하지요.”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노부부의 춘천 닭 불고기 창업’은 1961년이다. 가난한 시절이다. 국민소득 100불 정도였다. 고기는커녕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보릿고개가 남아 있었고 무엇을 먹느냐 보다는 오늘 당장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느냐, 를 고민했던 시절이다. 고기는 귀했다. 서민들이 비교적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고기는 싸고 양이 풍부해야 했다.

춘천의 닭 불고기는 인기 있는 메뉴가 되었다. 합승택시가 있던 시절이다. 합승택시는, 작은 버스에 20명쯤이 같이 타고 다니던 택시 아닌 택시였다. 자연스럽게 합승이 이루어진다. 택시 기사들이 아무런 보수 없이 홍보맨이 되었다. 시내 곳곳을 다니던 합승택시 기사들은 손님들의 “맛있는 집 없느냐?”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원조춘천닭불고기’를 추천했다. 돼지고기보다는 한결 싼 닭 불고기. 연탄불에서 지글지글 타오르는 닭 불고기는 히트메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직화(直火)로 구운 고기는 맛이 있다. 물에 삶거나 찐 수육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다.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운 고기는 한결 맛이 강했다.

왜 ‘춘천’인가?

많은 이들이 이 무렵 춘천에 닭을 도축하는 큰 시설이 들어섰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춘천 닭갈비가 유명해진 것은 춘천에 닭고기가 흔해졌고, 흔해진 닭고기를 이용한 상품이 바로 춘천닭갈비라는 주장이다. 이 부분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육축(六畜)’이 있었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주로 식용으로 삼는 6가지 동물이다. 소, 말, 돼지, 양, 개, 닭이다. 소는 농사를 짓는 주요한 도구다. 정부가 나서서 함부로 도축하는 것을 막았다. 말은 통신 수단이자 교통수단이었다. 조선 초기에 잠깐 식용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을 뿐, 중기 이후에는 말고기 식용이 드러나지 않는다. 돼지는 먹는 곡물에 비해서 생산하는 고기가 적다. 게다가 개처럼 집을 지키지도 않고 소처럼 농사를 짓지도 않는다. 양은 한반도에서 잘 자라지 않는 동물이다. 육축 중 하나지만 양을 식용으로 삼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개와 닭이 남는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개와 닭을 먹었다. 그중 가난한 이들은 닭을 택했다. 개는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먹는 이와 먹지 않는 이가 갈렸다. 개장국을 먹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 발달한 음식이 육개장이다. 결국 남는 것은 닭이다.

1960년대 가난한 시절, 해산물이나 쇠고기, 돼지고기를 구하기 힘든 내륙 지방에서 닭고기를 선택했다. 여전히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있었지만 ‘귀한 사위가 오면 씨암탉을 잡듯이’ 상당수의 가난한 이들은 닭고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먹고 싶어서 먹는 음식과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

강원도의 사정은 다른 곳보다 더 열악했다. 쌀 등 곡물의 생산은 지극히 적고 대신 메밀, 감자 등이 비교적 흔했다. 강원도의 감자전 등 감자 관련 음식이 지금도 유명하고 메밀국수는 춘천, 강원도라는 표현이 나오는 까닭이다.

닭고기도 마찬가지. 소나 돼지고기를 먹는 일이 힘들었던 강원도에서는 닭고기가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을 터이다. 냉장,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다. 해안가에서 해산물을 가져오기도 힘들었다. 다른 육류를 구하기 힘들고 바다에서 구하는 단백질도 마땅치 않았다. 닭고기는 원해서 먹는 고기가 아니라 다른 고기를 구하기 마땅치 않기 때문에 먹었던 음식이다.

1960년대에는 삼계탕이 시작되었다. 춘천에 닭이 흔했다면 삼계탕도 춘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닭보다는 인삼을 운반하는 것이 편하다. 인삼 생산지에서 인삼을 춘천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춘천의 삼계탕은 없다. 춘천 닭 불고기는 얼마쯤은 우연히 발생한 음식으로 봐야 한다.

가난한 내륙 지방 도시에서 고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쉽게, 싸게 구할 수 있는 고기가 바로 닭고기다. 결국 닭 불고기가 등장한다. 실제 춘천 닭갈비의 상업화는 1980년대를 넘기면서 시작된다.

숯불인가? 무쇠 철판인가?

오늘날의 춘천닭갈비는 원형 닭 불고기와는 다르다. 우선 쇠로 된 철판을 사용한다. 양념된 닭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를 넣는다. 고기와 채소를 볶아서 먹고 나머지에 밥을 더한 다음 볶아 먹는다. 닭갈비가 유명한 춘천 명동 거리의 가게들 중 몇몇은 서서히 직화, 숯불 닭 불고기를 내놓는다. 맛은 당연히 철판보다는 숯불 등으로 직화한 고기가 낫다.

“불을 다루는 이들이 드뭅니다. 직화를 고집하면 종업원도 구하기 힘들지요. 참 다행히도 저희 가게는 직원들,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들도 참 참하고 착한 사람들만 들어옵니다. 덕분에 숯불을 사용하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요. 식재료를 공급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좋은 닭고기를 구해주는 분들이 있으니까, 손님들 상에 좋은 닭고기를 내놓고 있지요.”

소박하게 표현하지만 제대로 된 닭 불고기를 위해서는 숱한 손길이 필요하다. 닭다리 살을 가른다. 기름기 부분은 일일이 뜯어낸다. 닭다리 살을 갈라서 넓게 펼친 다음, 살을 발라서 양념을 한다. ‘원조춘천닭불고기’의 양념 닭불고기다. 지금도 닭고기를 가르고 기름기를 뜯어내는 일은 김명자 대표나 어머니가 해내고 있다.

“일일이 손으로 해내야 하는 작업입니다. 이걸 소홀히 하면 기름이 너무 많고 닭고기가 느끼해집니다. 편하게 닭갈비라고 했지만 양념 닭다리 불고기입니다. 메뉴에 있는 내장도 내장이 아닙니다. 난소와 붙어 있는 깨끗한 부위입니다. 일단 석쇠에 올리면 바로 뒤집어야 합니다. 빠르게 뒤집지 않으면 타버립니다. 저희 가게에서 오랫동안 내놓고 있는 메뉴지요.”

‘원조숯불닭불고기’ 김명자 대표. 1961년 강원도 홍천 출신이다. 이모가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받았다. 가게에 대한 욕심은? “더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도 좋지만 이모님이 운영할 때처럼 좋은 식재료, 변하지 않는 손맛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런 정성을 다음에 운영할 사람에게 전하고 싶고요.”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6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원조숯불닭불고기'. 닭 내장구이 등을 먹을 수 있는 보기 드문 식당이다

-‘원조숯불닭불고기집’ 김명자 대표와 어머니. 지금도 닭갈비를 가르고 기름기를 떼어내는 일은 가족들이 해내고 있다

-뼈없는 닭갈비를 양념한 숯불닭붉고기

-‘원조숯불닭불고기’의 내장구이. 내장은 내장이 아니라 난소와 난소 여ㅍ의 깨끗한 부위다

전국 닭고기 맛집

충남식당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의 장닭 전문점이다. 5Kg 이상의 장닭을 푹 고아서 맑은 국물, 맛있는 고기와 더불어 내놓는다. 전화로 미리 주문하면 좋다. 031-834-0513.

약수닭집

여수의 닭고기 전문점이다. 남도의 손맛은 해산물만 아니라 닭고기도 맛있게 내놓는다. 닭 한 마리를 해체, 회, 구이, 찜 등으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게 내놓는다.

시골집

전남 함평의 닭고기 전문점이다. 회, 구이, 찜, 닭튀김까지 내놓는다. 닭 한 마리에 5∼6만 원 정도. 3∼4명이 먹을 수 있다. 남은 국물에 칼국수를 넣어도 좋다.

박달재

서울 마포의 닭고기 전문점이다. 메뉴도 단출하다. 백숙, 닭볶음탕이 전부. 미리 주문하면 어죽도 가능하다. 간장으로 맛을 낸 닭고기가 아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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