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은 우리 문화 함의…먹는 걸 통해 우주를 배우고 한국인의 정신 배워”

우리 음식은 ‘되다(becoming)’, 서양 음식은 ‘있다(being)’

우림 음식은 먹는 사람이 주체, 서양은 차리는 사람에 따라야

비빔밥 대표적… 음양 조화, 어울림, 오케스트라 같은 음식

서양 음식은 각각의 맛, 독주곡 형태… 종합적 맛 어려워

비빔밥처럼 어울려야 진정한 글로벌리즘…음식은 문화이자, 철학, 책

2017년 1월1일 방송 예정인 KBS World Radio ‘신년특별기획’ 방송 녹음 차, 한국의 대표 지성 을 만났다.

이어령 전 장관은 우리 음식과 서양 음식을 생성론과 존재론으로 비교하는 등 ‘음식’에 대해 신선하고 차원 높은 식견을 들려주었다. 현장의 이어령 전 장관의 말씀을 옮긴다.

우리나라 음식은 생성론 즉, ‘되다’이다.

서양은 모두 ‘있다’ 즉, being 동사이다. 존재론이다.

우리는, becoming이다. 이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생성론은 물체가 있는 게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춘하추동 같은 것. 춘하추동이라는 게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되고. 애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생성론으로 보면 이 세상에 사람은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되는 것이다. 태어나서 애기가 되고 어른이 되고 늙은이가 되고 그리고 죽는다.

우리가 흔히 사람이 못됐다, 어, 그 사람 잘 되었네. 이게 전부 ‘되다’이다.

우리 음식도 마찬가지다. 음식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다.


반대로 서양요리는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되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이다. 서양 음식은 음식의 맛을 보고 나면 그 다음 맛이 온다. 섞이지 않는다. 섞지 않으려면 입을 씻어야 한다. 그래서 빵으로 씻고, 샤베트 같은 걸로 씻고, 입을 백지화 해야된다. 백지화해야 그림을 그린다. 맛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입을 계속 백지로 만드는 것이다. 왜? 하나하나 따로 존재하니까. 그럴 때 포크와 나이프도 바꿔야 한다. 왜? 앞의 맛이 묻어 있을 테니까. 철저하게 음식마다 칸막이를 만든다.

우리나라 음식은 어떤 거냐? 결국 가르지 않고 섞는 것이다. 김치만 딸랑 먹어봐라. 김치가 맛있다? 그것은 음식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김치는 김치만 먹어서는 그 맛을 모른다. 밥 하고 같이 먹어야지. 김치가 밥 하고 입에 들어가서 씹었을 때 드디어 음식이 되는 것이다.

서양 음식은 음식이 다 되어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거다. 이미 세프가 다 만든 것이다. 차려 놓은 사람이 완전히 음식을 만든 거니까 존재하는 것이다. 완성품이다.

우리나라 음식은 먹는 사람이 음식을 되게 하는 것이다. 먹는 사람이 뭘로 섞어 먹느냐에 따라서 짜고, 싱겁고, 맵고, 이런 게 다 조정이 된다. 우리 김치가 짜다고 하는데 몰라서 하는 말이다. 김치만 먹으면 짜다. 누가 김치만 딸랑 먹나? 김치만 달랑 먹지 말고 밥 하고 섞고, 국 하고 같이 먹고, 술안주 할 때 그 맛이 다 다르다. 먹는 사람이 음식 맛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김치는 김치 맛이 있는 게 아니라 떡하고 먹었을 때, 술 하고 먹었을 때, 밥 하고 먹었을 때 전부 다른 것이다. 그 맛이 먹는 사람 입안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우리 음식을 먹는 우리는 전부 연주가가 되는 것이다. 음식을 제 아무리 잘 차려 놔도 먹는 사람이 와서 이거 먹고, 다음에 저거 먹고, 또 이거 먹고…. 선택하는 건 우리니까 전부 다 다른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잘 했을는지 몰라도 음식은 완전 독재다. 다 정해놓는다. 서양 음식이라는 게 꽉 짜여 있다. 나는 양식 먹을 때 목이 말라서 국물을 먹고 싶은데 국물도 함부로 못 먹게 되어 있고, 싱거운 걸 먹다가 짠 걸 먹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되고. 서양 음식은 확실히 독재다. 양도 딱딱 정해져 있고 남기지도 못하게 딱 정해놓고.

서양 음식은 아웃도어(OUT-DOOR) 음식이다. 짐승 잡아서 바비큐 하고….

우리 음식은 농경문화의 인도어(IN-DOOR) 음식이다. 간 하고 삭히고, 찌고 뜸 들이고 그런 음식이다. 우리 음식은 정착민, 농경민 음식이니까 전부 국물이 있고 고기도 삭히고, 곰탕처럼 고고…. 요리에 대한 동사들도 볶고, 지지고, 찌고, 곰국 끓이고….

비빔밥은 누가 요리하나? 차려주는 사람은 있지만 마지막에 먹는 사람, 비비는 사람이 요리하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 스키야키라는 게 있다. 먹는 사람이 요리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비빔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비빔밥에는 참기름이 있다. 외국에서 왔다. 아마 아랍에서 실크로드 타고 왔을 것이다. 호마(胡麻)라고 한다. ‘호’가 붙었으니 외국에서 온 것이다. 이 호마, 참기름 없이는 비빔밥을 섞고 비빌 수가 없다. 자동차에 윤활유, 기름이 꼭 필요하듯이 비빔밥에도 기름, 잘 비벼지게 하는 게 꼭 필요하다. 왜 기름이 있어야 하느냐? 비빔밥은 결국 밥과 나물을 섞어서 비비는 것이다. 나물을 넣고 기름을 넣고 비비면 이게 아주 기가 막히다. 나물이 들어가야 비빔밥이 된다, 나물이 중요하다.

중국 사람들이 흔히, 네다리 달린 거는 의자 빼고 다 먹는다, 물속에서는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 이렇게 이야기하지않나.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걸 듣고 웃는다. 우리는 뿌리 달린 풀은 다 먹는다. 뭐든 나물로 만들 수 있다. 어떤 식물이든 ‘나물’이라고 이름 붙여서 다 먹을 수 있다. 개가죽나물도 있고, 콩나물도 있다. 콩으로 콩나물 만들어 먹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한국사람 밖에 없다.

비빔밥에는 절대적으로 나물이 있어야 한다. 섞는다는 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부드럽게 또 매끄럽게 하고 하나는 거꾸로 헝클어져야 비벼진다. 국물과 밥이 섞여야 비벼진다. 두개가 조화를 이루는 거니까.

노벨상 수상자 보어(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 Niels Bohr, 1885∼1962)가 태극무늬를 보고 양자역학의 새로운 걸 발견할 때, 대립은 갈등이 아니다, 대립은 반대가 아니다, 라고 했다. 대립은 보완이다. 태극을 보고 거기에서 양자의 입자하고 파장이 하나다. 대립되는 게 아니다. 보어가 자기 집에 태극 문양을 만들어 달았다. 그 문양을 보고 양자역학을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아인슈타인도 대립이 갈등이 아니라 상보(相補)되는 것이란 건 생각을 못했다. 서양은 대립, 대칭은 갈등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비빔밥은 여러 가지 색깔, 오방색을 넣고 나물을 넣고 기름을 넣고 흰 밥을 넣고 비비면 우리 태극기가 되는 것이다. 음양이 서로 섞여서, 그게 곧 태극이다.

고추장 빨간색하고 밥 흰 색깔 하고 결국 오방색이 다 들어가니까, 태극이란 게 우주를, 음양을 나타내는 것이니까 음양조화, 어울림, 비비는 것. 모든 게 ‘비비다’는 동사 속에 어울린다, 섞는다, 혼합하다, 흩어진 것을 서로 섞고 또 비빈다, 모든 게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춘분에 임금님께서 반드시 ‘다섯 가지 나물’을 내놓는데 노란색은 자기 자신이고, 사색단장을 하니까, 동인, 서인 남인, 북인이 서로 혁신하고 비벼서 단합해라. 그래서 나물도 오방색이란 말이다. 그 나물은 결국 비벼 먹지않나.

가난한 집도 마찬가지다. 다섯 가지 색의 나물을 못하니까 고추장하고 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고추장은 빨갛고, 파는 밑에 하얗고 파랗고 끝에는 노랗지않나아. 그래서 파를 고추장에 찍으면 결국 다섯 가지 색깔이 되는 것이다. 그 나물로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사실, 비빔밥은 여러 재료를 넣고 비벼서, 혼합해서, 섞어서 먹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다. 비빔밥은 비빔밥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의 모델이다. 김치 담그는 것도 그렇고, 국수, 잔치국수도 마찬가지다. 잘 보면 비빔밥 모델이 다 들어가 있다. 맛도 마찬가지다. 맵고, 짜고, 시고, 달고…. 그래서 마이클 잭슨이 한국 왔을 때 다른 건 안 먹고 비빔밥을 계속 먹고, 항공기 기내식에도 비빔밥을 내지않았나. 좁은 비행기에서 잔치상을 벌일 수 없지않나. 그런데 한 그릇에도 여러 가지를 넣고 비빔밥을 만들면, 여러 가지 맛을 내면 결국 잔치 음식이다. 항공기에서 비빔밥이 일등을 먹은 것도 당연한 것이다.

외국인들이 평소 하나하나 따로따로 먹다가 모든 걸 섞어서, 종합적 맛을 한꺼번에 맛보니까 그게 오케스트라 같은 것이다. 비빔밥을 먹으면 독주곡만 듣던 사람이 교향곡을 듣는 것 같다. 이것이다. 바이올린 따로 듣고, 북소리 따로 듣고 그랬는데, 교향곡에서는 모든 소리가 합쳐서 울리잖아요. 맛의 교향곡이다. 저쪽은 솔로다. 하나하나 솔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문(文)이 우세하긴 했지만 왕이 절대군주가 아니었다. 다 견제장치가 있고, 밸런스를 잡고 정치도 비빔밥을 한 것이다. 사색당쟁? 꼭 나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사색당쟁은 외부견제와 내부견제를 함께 하는 것이다. 동서남북이 잘못되면, 서로 싸우기만 하면 판이 깨지고 죽을 판이다. 사색도 잘 어우러지면 누구도 독재를 하지 못하는 ‘살판’이 된다. 내가 ‘판문화’라고 하는데 우리 음식이야말로 판문화이다. 잘못하면 죽을 판이고 잘하면 살판이다. 그래서 비빔밥이야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우리 문화를 잘 보여주는 거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맵고, 짜고, 싱겁고, 한 것들이 다 어울려서 하나의 교향곡으로 만드는 이는 최종적으로 누구냐? 바로 음식을 씹는 나다. 음식타박하지도 말고 음식 맛이 있다, 없다 말하지 마라. 내 입에서 모든 음식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서 서로의 마음을 읽고, 정신을 읽고, 너와 나의 사이, 그 관계를 읽는다. 음식은 중요한 책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요리를, 요리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국요리가 한국인의 책이다. 한국인의 성경이다. 한국인의 천자문이다. 먹는 걸 통해서 원하는 우주를 배우고 한국인의 정신을 배운다고 본다.

한국 사람처럼 먹는 걸 철학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축구시합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는 골 하나 들어가면 로스트(LOST)했다. 실점했다, 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만 한골 먹었다고 한다. 세상에, 골을 먹었다, 그러고 슬퍼한다. 아니, 골을 먹었으면 배불러야지(웃음).

우리는 나이도 먹는다고 한다. 나이는 시간이다. 시간이 우리를 먹어야지, 우리가 시간을 먹는다? 우리는 시간까지 먹어버린다. 이 ‘먹는 것’을 철학적으로 나타내고 또 음식문화까지 이어지고, 그걸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무의식적으로, 사색당쟁까지도 분열이 아니라, 잘 하면 누구도 독주 못하게 하는 거, 그게 우리는 가능하다.

판중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가요? 독판이다. 독판치면 판이 다 깨진다. 독판이 안 되도록 하는 것, 어떤 맛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한식이다. 우리 음식에는 엄격하게 말해서, 메인디쉬가 없다. 서양 음식은 고깃덩어리 하나 갖다 놓고 메인디쉬라고 한다. 우리 비빔밥은 메인이 없다. 오방색 다 들어가서 섞여. 이게 비빔밥이다.

흔히 지구인이라고 하는데 지구인은 민족 하나하나가 자기 민족 문화를 가지고 무지개 색처럼 어울려야 글로벌이 되는 것이다. 빨간색을 글로벌 색깔로 하자? 노란색을 하자? 이거 불가능하다. 단색의 글로벌리즘은 없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비빔밥처럼 오방색이 각각 어울려서 다양한 무지개 색을 내는 것이다. 다중일, 일중다(多衆一 一中多). 이게 최종적인 우리의 글로벌리즘이고 한국의 오방색, 다섯 색깔이 모여서 하나의 비빔밥이 된다, 이런 이야기다. (계속)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진주비빔밥 맛집

진주부엌 하모

“서울에서 진주비빔밥 먹을 곳이 없어서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진주 출신 주인이 진주음식을 제대로 선보이고 있다. 육전이나 제대로 만든 잡채가 압권. 서울 도산사거리.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진주비빔밥을 선보이고 있다. 진주 중앙시장 옆에 있다. 식당 내부를 가로 지르면 가정집 스타일이 별도 공간이 있다. 장독대가 아주 좋다.

진주 스타일의 냉면이나 비빔밥, 육전 등을 만날 수 있다. 실내 분위기도 깔끔하다. 대중적으로 내놓는 진주 음식들이다.

엉뚱하게도 울산에서 진주비빔밥을 내놓는다. 보탕국도 아주 좋고 비빔밥은 정통 진주식이다. 울산 시청 무렵의 점포가 본점이고 80∼90년의 업력이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