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빚어낸 경이로운 땅

자연과 바림이 뒤엉킨 땅 위에 선다. 기암괴석과 인고의 세월을 담아낸 터키의 대지들은 묻어나는 사연도 숨가쁘다. 이방인들은 카파도키아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이동을 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터키에 대한 숨겨진 잔상은 중부 카파도키아에서 더욱 강렬하다. 도시의 감동이 인간문명에 대한 숙연함이었다면 카파도키아에서는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에 매료된다.

수억 년 전 용암이 만들어낸 기이한 암석들은 버섯모양의 바위로, 또 수도사들이 은거했다는 울퉁불퉁 솟은 황토빛 동굴숙소로 눈을 현란하게 만든다. 여행자들의 아지트인 괴레메에는 30여개의 암굴교회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절벽에 숨어산 수도사들의 생활상이 보존된 차우신 마을도 터키의 시골정경을 보는 것 같아 푸근하다.

용암이 침식돼 만든 마을

카파도키아 여행의 출발점인 괴레메의 아침은 분주하고도 평화롭다. 이방인들이 몰려드는 오토갈(정류장)에는 좌판대가 늘어서 있다. 낯선 기념품과 과일들이 좌판 위에 빼곡한데 주인장은 길가는 행인에게 ‘터키 차’ 한잔을 내민다. 북적이고 요란스런 풍경보다는 이런 여유와 친절함이 카파도키아에서는 어울린다. 현지인들은 터키식 장기인 ‘타블라’를 즐기거나 물담배인 ‘나르길라’를 피며 하루를 맞이한다.

마을을 벗어나면 화산재와 용암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세상이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오래된 바위들은 비바람에 침식돼 세월의 흔적을 남겼다. 요새처럼 생긴 우치히사르는 한 개의 바위로 이뤄진 성채 마을로 카파도키아의 이정표같은 역할을 한다. 바위표면에는 수많은 비둘기집이 있는데 이곳 비둘기 배설물은 포도밭 비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우치히사르를 바라보며 카파도키아 와인을 한잔 마시거나 아늑한 분위기의 동굴숙소에서 하룻밤 묵는 것은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호사’다.

기암괴석들은 단순히 자연적 풍경만을 전해주는 것은 아니다. 버섯 바위로 유명한 파샤바 지구는 수도사들의 은둔처였다. 실제로 카파도키아에 살았던 그리스도들은 아랍인들을 피해 수십km가 되는 지하 동굴을 뚫고 은거해 살기도 했다. 카이마크르, 데린쿠유같은 지하도시에는 예배당 뿐 아니라 학교, 주거시설 등이 마련돼 있다.

열기구에서 기암괴석을 보다

카파도키아의 기괴함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하늘에 오른다. 열기구에서 내려다본 카파도키아의 전경은 지구 밖 외딴 혹성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차창 밖, 절벽처럼 느껴졌던 기암들은 창공에서 조망하면 뾰족한 봉우리가 돼 짙은 음영을 드리운다. 황토색 바위와 마을은 그 아래서 옹기종기 어우러진다.

카파도키아는 깊게 들어설수록 그윽하다. 낭떠러지 교회로 단장된 으흘라라 계곡에서는 노새 탄 소녀와 길동무가 된다. 무스타파파샤의 ‘올드 그릭 하우스’ 레스토랑에는 그리스인들의 생활상이 정물화처럼 남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왜 카파도키아가 자연이 만들어낸 단순한 신비로움이 아니라 터키 여행의 중심으로 이방인들을 유혹하는지를 설명해준다.

해질 무렵이면 우치히사르의 낯선 바에 앉아 터키식 진토닉 ’라크‘를 마신다. 노을과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터키에 오면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글귀를 떠올려 본다. 낯설고 아득한 땅은 푸근함으로 변질돼 가슴 깊이 다가서게 된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팁

▲가는길=아시아나항공과 터키항공이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중이다. 약 11시간 소요. 시차는 7시간.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 까지는 항공으로 1시간 30분이 걸린다. 관광을 목적으로 3개월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

▲숙소, 음식=카파도키아의 괴레메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펜션들이 들어서 있다. 터키식 피자인 피데나 고기와 곁들여 먹는 요구르트인 ‘아이란’을 꼭 맛본다. 필라우는 소나무 열매가 들어 있는 버터 볶음밥으로 케밥에 따라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타정보=터키의 겨울은 흐린 날이 많은 편이다. 터키인은 99%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모스크를 들어갈 때는 복장에 예의를 갖춰야 한다. 터키의 화폐단위는 예니 터키리라(YTL). 달러와 유로를 지니고 있으면 시내 환전소나 호텔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한국처럼 220V 콘센트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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