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교통로’로 불리던 접경의 도시

아스완 강변 위로 노을이 내린다. 국경지대의 들어선 도시는 돛단 배 뒤로 수몰된 유적의 사연을 지니고 있다. 해가 저물면, 강에 기댄 사람들의 시큰한 일상이 눈에 박힌다.

강변에 석양이 깃든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와 마주한다는 일종의 신호다. 해가 지기 전, 아스완 강가에 머물던 사람들은 서둘러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선다.

노을 지는 강 사이로는 높다란 돛단배가 가로지른다. 이곳 누비아 사람들의 옛 교통수단인 펠루카다. 관광객들을 위한 휴양용으로 변질됐지만 펠루카는 이곳이 사막을 외면한 채 넘실거리는 휴양의 땅임을 알려준다. 가이드가 쏟아내는 수많은 설명들은 펠루카가 그려내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넘어서지 못한다.

삶터와 유적 사이를 가르는 돛단배

아스완은 나일강 상류의 국경도시다. 아스완에서 남으로 수단과의 국경까지는 사막지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사막지대를 황금의 교통로라는 의미로 누비아라 불렀다. 옛 누비아인들의 삶은 강변에 낱낱이 녹아 있다.

검은색 피부에 곱슬머리인 누비아인들은 이집트 북부 사람들과는 외모부터 다르다. 크루즈들이 빼곡히 도열해 있는 강을 건너서면 소 모는 목동, 낙타에게 먹이주는 아낙네, 물담배인 시샤를 피는 할아버지가 느린 슬라이드처럼 연결되는 그들만의 동네다. 고대 신전과는 비교되는 허름한 사원, 예배를 보기 전 냇물에 손을 씻는 담백한 풍경들이 나일강 건너편에 가지런하게 펼쳐진다.

토담길 골목 안에서 만나는 누비아 사람들의 삶터는 소담스럽다. 얼굴을 가린채 미소 짓는 부인들이 한집에 여럿이고, 첫째 부인인 듯한 여인이 차를 한잔 건넨다. 차를 내놓은 탁자를 중심으로 각자의 부인들이 투숙하는 방들은 흩어져 있다. 아스완 투어의 잔 감동은 오랫동안 이곳에 기대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만나 더욱 살가워진다.

강속에 수몰된 신전과 무덤

다시 강으로 나서면 아스완의 나일강은 좀 더 흥미로운 사연들을 쏟아낸다. 아스완은 추리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나일강 살인사건’의 실제 무대다. 강변의 올드 카터렉스 호텔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이 소설을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100년이 넘어선 호텔은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 등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찾아 더욱 유명해졌다.

강 위의 풍경은 호사스럽고 운치 넘치지만 이곳 누비아 지역의 과거는 아프다. 아스완 하이댐의 건설로 거대한 인공호수 니세르호가 사막안에 등장했고 20여개의 신전과 무덤은 수몰됐다. 몇 천년 동안 살아온 누비아인들도 인근 콤 옴보와 아스완 시내로 터전을 옮겼으며 일부 신전들만 수몰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유네스코는 수몰의 상처가 스쳐간 뒤 아스완 일대 신들의 유적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아스완에서 가장 가깝게 만나는 유물은 필레 신전이다. 여신 이시스에게 바쳤던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신전이다. 본래 필레 섬 위에 위치했던 신전은 수몰을 피해 인근 아길키아 섬으로 옮겨졌는데 클레오파트라가 이곳에 신혼여행을 오기도 했다. 신전에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히에로글리프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비석이 남아 있다.

아스완의 고대이름인 ‘셰네’는 시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역상들의 터전이었으며 교역의 중심지 였던 시내로 들어서면 역이 있고 바자르(시장)가 들어선 사람사는 풍경이다.

글 사진 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수도 카이로가 관문이다. 카이로까지는 카타르 항공 등 다양한 경유 항공편이 운항중이다. 이집트 입국에는 별도의 비자가 필요한데 공항 입국장 환전소에서도 즉석 구입이 가능하다.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는 현지 국내편 항공기가 하루 수차례씩 운항한다.

▲숙소, 환전=아스완의 올드 카터렉스 호텔 등이 수준급이다. 1층에서 차 한잔 마시는 호사스러운 휴식을 놓치지 말것. 통화는 이집트 파운드를 쓰며 달러나 유로를 가져가면 현지 호텔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기타정보=근거리 유적지 이동은 호텔 프런트에 문의해 택시로 이동한다. 반팔 옷과 함께 얇은 긴팔 옷을 가져가면 편리하다. 챙 넓은 모자와 스카프 등도 필수다. 투어때는 물을 꼭 지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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