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들 찾는 옹골찬 음식… 동해 자연산 생선 구해와 본래의 맛 내

직접 동해로 가 재료 구해…양념 사용 않고 고유의 맛 살려

새우 활용한 ‘해물라면’ 유명세…자연산 감소 우려에도 원칙 유지

‘숨은 맛집’은 아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영등포, 여의도 일대의 대기업, 방송사, 정치권 사람들도 웬만큼 안다.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 앉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인당 4만5000원짜리 코스를 내놓는 집. 동해안 자연산 해산물만 고집하는 집. 비싸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막상 나올 때는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드는 집.

“그게 해물라면이었구나?”

서울 신길동 ‘막내회센터’의 이야기다. 대부분은 맞고 일부는 틀린 이야기다.

우선 ‘김영란법’ 시행 이후로 단품음식도 가능하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이 가게도 심하게 영향을 받았다. 손님들의 발길이 툭 끊긴 것이다. 급하게 ‘김영란 메뉴’를 만들었다. 단품을 위주로 2만 원대 음식을 선보인다.

단골들은 모두 안다. 이 집 음식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라면이다. 해물라면.

자리에 앉으면 생새우를 내놓았다. 펄떡펄떡 뛰는 새우가 1인당 2∼3마리 놓였다. 새우 껍질과 대가리를 떼고 살점만 회로 먹는다. 껍질과 대가리를 바구니에 담아서 내간다.

그리고…. 새우는 마지막에 화려하게 부활한다. 라면을 끓이는데 새우 대가리, 껍질이 들어 있다. 2년 된 묵은지와 더불어 먹는다. 세상에 다시없는 새우라면이다.

나도 이 새우라면에 반해서 여러차례 갔던 사람이다. 동해안 자연산 새우를 넣은 라면.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 나중에 알았다. 새우라면의 맛도 좋지만 그보다는 2년간 묵힌 김치의 맛이 라면 맛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신길동 ‘막내회센터’의 김춘기 대표. 1964년생, 오십대 중반의 나이다.

“특별한 음식은 없습니다. 방송사에서 몇 번 촬영을 하겠다고 했는데 힘들게 거절했습니다. 잘 나서 거절한 게 아니라 할 이야기가 없어서 거절했습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별 조리법도 없는 음식을 방송에서 보여줄 수는 없지요.”

대단한 조리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다른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업력이 그리 긴 것도 아니다. 이제 ‘겨우’ 20년이 채 되지 않는 업력이다.

하지만 음식은 옹골차다. 새우부터, 자연산 모둠회, 해삼이나 멍게, 닭새우, 털게, 백고동 찜과 오징어 통찜, 그리고 라면까지. 뭘 먹는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다 보면 마지막 라면은 먹어야 하나, 라고 고민하게 된다.

신길동 산마루에서 테이블 하나로 시작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포장마차 수준이었습니다. 과일가게 하던 집을 세로 얻었습니다. 가게도 아니고 살림집이었지요. 방이 두 칸 있는데 한 칸은 살림 사는 방이고 한 칸은 과일가게였는데, 그걸 얻어서 오징어도 팔고,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호구지책이었지요.”

고향이 강원도 양양이다. 남애항에서 10분 정도 거리다. 중학교 무렵까지 고향에서 자랐다.

농사짓는 부모 아래 4남1녀. 위로 누나와 형님 세분이다. 어려운 살림살이. 아버지는 김 대표의 고등학교 진학을 말렸다. 살림이 빤하니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말고 농사나 짓자”고 했다. 공부를 하고 싶었다.

대부분의 가출은 ‘공부하기 싫어서’ 하는 것이다. 거꾸로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고등학교 진학을 말리니 결국 가출로 이어졌다. 울산으로 도망을 갔다. 몰래 진학 관련 서류를 챙기고 울산으로 갔다. 거기서 공고에 입학했다.

자취를 하면서 이른 새벽 신문 400부를 돌리고 나면 겨우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나중에는 신문사가 운영하는 기숙사에 몸을 담았다.

공고에서 토목을 전공하고 나니 이번에는 공무원 시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중 한 분이 경기도 김포에서 작은 공장을 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위해서 김포로 갔다.

“공무원 시험 공부하러 갔다가 결국 형님과 알루미늄 압연 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지요. 작은 규모였습니다. 압연한 재료를 공급하는 곳이었는데 IMF 무렵 부도가 났어요. 오갈 데도 없고.”

아내는 김포시절 만났다. 거래처에서 경리 일을 하고 있던 전남 신안 출신 처녀였다. 김포에서 1991년 결혼했다. 부도로 오갈 곳이 없는 가족. 답답했다. 신길동 산마루의 자그마한 집은 그래서 구한 것이었다. 물론 셋방이었다.

“사람들이 이름이 같으니 자꾸 묻습니다. 남대문시장의 유명한 ‘막내횟집’은 누나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가게에서 2년 정도 일을 했습니다. 일을 배운 셈이지요.”

테이블이 하나 있는 신길동의 ‘막내회센터’. 테이블이 하나에서 두 개로 늘어나고 옆의 셋집을 얻어서 연결하고 내부 공사를 했다. 조금 조금씩 늘인 것이니 건물 아귀가 맞지 않았다. 인테리어도 돈을 주고 맡긴 것이 아니라 김 대표가 스스로 해냈다. 집의 천장과 벽면도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했다.

단골들은 그 집을 그리워한다. 좁디좁은 방에서 손님들은 등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겨울철 출입문을 열면 한겨울의 찬바람이 테이블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린 방에 앉아 날로, 찌고, 삶은 동해안 생선을 먹었다. 음식을 나르는 홀 직원들이 손님들의 어깨를 가르고 음식, 접시를 날랐다.

동해안의 맛있는 생선을 선보이다

음식이 좋았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그때는 일주일에 네 번이나 동해안을 다녀오곤 했습니다. 적어도 세 번씩은 다녀오고, 잦을 때는 네 번을 가기도 했지요.”

젊은 나이이기도 했다. 채 마흔이 되지 않는 나이였으니 가능했다. 거의 잠을 자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마음에 드는 자연산 생선을 싼값에 가져오는 방법은 그게 유일했다.

처음에는 동해안 자연산을 믿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반신반의하는 손님들도 많았다. 시내 유명 음식점에서도 양식을 사용하는데 신길동 산마루의 허름한 집에서 자연산 생선이라니 믿기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양념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조리법이 없는 셈이지요. 재료가 좋으면 음식은 맛있습니다. 회는 좋은 생선을 잘 썰어서 내고, 대부분의 생선들은 찌거나 삶는 정도입니다. 양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요. 우리 가게에서는 고등어조림 정도만 양념을 얹습니다. 뭘 더하기보다 빼는 음식입니다. 그게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바다에서 건진 그 상태의 맛을 보여주려고 할 뿐입니다.”

양념은 맛을 더하기보다는 해치는 경우가 더 많다. 양념을 빼면 맛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양념을 빼면 원재료의 맛이 제대로 드러난다.

계절별, 동해 생선의 맛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 먹었던 생선의 맛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횟집을 하기 전 여기 저기 다니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자연산을 제대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분명 맛있다고 할 것이다. 내가 먹었던 음식, 내가 기억하고 있는 맛을 속이기는 힘들다. 음식으로 장난치는 것은 싫었다.

가게 문을 막 열었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서울 사람들은 닭새우를 잘 몰랐다. 김 대표는 회로 먹는 닭새우의 달콤한 맛을 기억한다. 속초, 양양, 강릉 일대의 토박이들은 늘 닭새우를 먹는다. 서울의 소비자들이 닭새우를 모르니 남는 물량은 전부 냉동고로 넣었다.

그걸 횟감으로 직접 운반했다. 바닷물로 온도를 조절하고 닭새우를 수족관에서 살릴 방법을 찾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닭새우 1kg가 1만 원대였다. 손님들 상에 올리기도 하고, 더러 서비스로 내놓기도 했다. 그동안 수족관에서 살릴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이 닭새우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제 닭새우 값은 1kg 당 12만원 정도가 되었다.

생선을 구하러 직접 가는 이유가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늦은 저녁에 약속을 했는데 “오늘 동해안 가는 날이라 밤 11시쯤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동해에서 생선을 구할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습니다. 어제 원래 양양 언저리로 가기로 했는데 바다가 뒤집혔어요. 그래서 어제는 배가 출항을 못했으니 생선이 없고, 오늘 나간 배들이 내일 새벽 생선을 출하하니 새벽 어시장 가려면 오늘 늦게 가야지요.”

물차를 끌고 가서 한 번에 실어오는 생선은 대략 200만∼400만원어치다. 고급 어종이 많으면 생선 값은 올라가고, 가격이 싼 생선이 많은 계절에는 한 차 가득 싣고도 가격은 낮다.

“이제 자연산 생선이 귀해지니 가격만 올라가고 좋은 생선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생선이 흔할 때는 그중 좋은 걸 고를 수 있었는데 이젠 자연산이라고 하면 무조건 살 수밖에 없습니다. 동해안에도 생선이 씨가 말랐습니다.”

봄철과 초여름에는 ‘총알 오징어’가 흔했다. 작은 오징어가 북상, 러시아 해역에서 몸집을 키운다. 이 오징어가 11월 이후 남하하면 우리 배들이 오징어를 잡았다. 동해에서 겨울철에 만나는 오징어들이다. 중국 배들이 북상하는 오징어를 모두 잡아버리면 그해 늦가을, 겨울에는 오징어가 귀할 수밖에 없다. 최근 오징어가 귀해진 이유다.

“같은 가격으로 구해오는 자연산 해산물의 양이 10년 전에 비해서 절반밖에 안됩니다. 언제까지 자연산을 고집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자연산이 사라지면 저도 횟집을 하기 힘들겠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 앞에서 김춘기 대표와 헤어졌다. 그는 동해 바닷가로 갔다. “손님들 중에도, 이제 가게 규모도 커졌으니 해산물 구하러 가는 건 직원 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직접 가서 생선 보고 골라 와야 합니다. 우리 가게 생선 맛은 오늘 바닷가에서 생선 고르는 걸로 결정됩니다.”

인터뷰 도중 그와 같이 끓여 먹었던 해물라면의 맛을 기억했다.

“우리 가게 해물라면 맛있지요? 우리 딸애가 강남구청 부근에서 김밥 집을 하는데 제법 잘해요. 그런데 이 녀석, 라면은 꼭 우리 가게에 와서 먹어요. 젤 맛있대요. 오늘 새우가 어떨는지 모르겠네요.”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김춘기 대표 부부. 단골손님들은 '막내회센터'의 자연산 생선 맛과 더불어 홀에서 일하는 안주인의 따뜻한 응대를 기억한다.

-백고동의 속이 꽉찬 모습. 내장이 맛있다는 사실은 비밀.

-이른바 ‘스끼다시’는 거의 없다. 막 썬 자연산 회와 간단한 양념 정도다.

-약 20년 전에 비해 닭새우는 10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김춘기 대표는 동해안의 닭새우 가격을 올린 ‘공로’가 있다.

-‘문제의 라면’. 해산물 코스 마지막 메뉴. 새우 대가리 등을 넣고 끓인 다음, 묵은 지와 더불어 먹는다.

자연산 해산물 전문점

남경미락(제주도)

다금바리, 돌돔 등 제주도 자연산을 속이지 않고 내놓는다. 생선 전문점답게 활어를 넣은 미역국이 압권이다. 각종 장류의 사용도 아주 좋다.

기사문(강릉)

강릉 교동에 있는 집. 주인이 인근 기사문항 출신이다. 동해안 자연산 생선을 이용하여 회, 초밥, 찜, 구이 등의 음식을 내놓는다. 예약 필수.

이작도막회(인천)

주인이 서해 앞바다 이작도가 고향이다. 늘 서해안 자연산 생선만을 내놓는다. 자연산 홍합, 전복 등이 특이하다. 크고 맛있다. 미리 전화, 그날의 메뉴를 확인해야 한다.

충무집(서울 무교동)

남해안 특히 통영의 해산물을 주로 내놓는다. 회도 좋지만 멍게젓갈, 각종 반건 생선 등도 아주 좋다. 멍게비빔밥, 갈치조림, 봄철 도다리쑥국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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