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해장국 명가…제대로 된 음식 만들려는 노력, 성실함에 ‘+α’

‘일해옥’ 상호는 ‘해장국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집’ 뜻해

엄선한 멸치의 육수와 칼칼한 고추의 맛이 어우러진 맑은 맛

메뉴는 달랑 콩나물국밥 한 종류다.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콩나물국밥 6천원’과 모주뿐이다. 하루 종일 문을 여는 것도 아니다. 저녁에는 문을 닫는다. 아침 6시 문을 열고 아침, 점심에만 국밥을 내놓는다.

“저녁에 문을 열면 매출이 나을 것 아니냐?”는 ‘우문(愚問)’을 던진다. “이 정도 할 수 있다. 저녁에는 내일 내놓을 음식 준비해야 한다”는 현답이 돌아온다. 전북 익산 ‘일해옥’의 정기섭 대표를 만났다. 간단한 음식,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제대로 만드는 이야기를 들었다.

군산에서 출발, 서울을 거쳐 익산으로

정기섭 대표의 고향은 전북 군산이다. 군산에서 20대 중반까지 살았다. 익산은 군산 바로 곁이다. 고향 근처로 회귀한 셈이다.

군산에도 ‘일해옥’이 있다. 정 대표의 둘째 형이 운영하다가 친척에게 넘겼다. 군산 ‘일해옥’은 군산시 월명동에 있다.

정기섭 대표는 월명동 언저리에서 태어났다. 1961년 생.

“군산에서 태어나서 고향에서 스물여섯 살까지 살았지요. 음식점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예전 시골 어른들은 자식들이 번듯한 회사 다니는 걸 원했지요.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어머님이 ‘남자는 직장’이라고 생각하셨지요. 어머님 뜻 따라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다녔습니다. 냉동 관련 회산데….”

1980년대 후반이다. 어머님 뜻은 어머님의 ‘성화’였다. 성화를 못 이겨 직장생활을 했다. 스물여섯 살에 서울로 간 것은 ‘집안의 경제력이 무너졌기 때문’. 이래저래 경제적인 우환이 겹치고 결국 서울행을 결심했다. 아는 이도 없었다. 고향 군산은 떠나야 할 판이라면, 갈 곳은 결국 서울이었다. 잠실 일대에 군데군데 공터가 많았던 시절. 저 멀리 빌딩들이 보이고 여기저기 논밭이 아직 남아 있던 시절이다.

별 연고도 없이 시작한 서울 생활. 1980년대 후반의 서울 생활에 대해서 정 대표는 말을 띄엄띄엄, 아낀다. 쉬 드러내기 힘든, 혹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음식점은 스물아홉, 서른 살 무렵에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하고 나니까 사는 게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요. 책임을 져야 할 사람도 생기고…. 혼자일 때는 내가 원하는 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됐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까 내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가족들이 원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게 음식점의 문을 열었다. 잠실에서도 제법 떨어진 지금의 강동구 암사동에 작은 규모의 콩나물 국밥 집을 열었다. 암사동 일대는 그나마 눈에 익은, 익숙한 곳이었다.

멀리서 택시 타고 오는 손님들

콩나물 국밥 집은 제법 쏠쏠하게, 잘 운영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일해옥’이란 이름을 정했고 사용했다.

필자는 늘 ‘일해옥’이란 이름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일해옥? 그럴듯하지 않은가? 정 대표를 만나서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꼭 이건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가게 이름, ‘일해옥’의 뜻풀이를 들으면서 한참을 웃었다.

“일해옥 뜻이요? 간단합니다. ‘해장국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음식점 중에서도 콩나물 해장국 집이 초기 투자비용이 적은 편입니다. 돈도 별로 없었고,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었고, 겨우 최소한의 자금을 마련해서 시작한 일이었지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해장국 하나라도 잘 해보자는 다짐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일(一)’+‘해(장국)’+‘옥(屋). 해장국 하나라도 제대로, 잘 하는 집. 참 코믹한 발상이었지만 가게는 잘 운영되었다.

“우리집 콩나물 해장국 먹으려고 멀리서 택시 타고 오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잘 운영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님이 콩나물 국밥을 잘 끓였습니다. 아주 맑은 콩나물 국밥이었지요. 어린 시절에 늘 먹었던 음식이니 누구나 다 좋아할 거라고 믿었지요. 좀 건방진 이야기지만 이젠 제가 어머님보다 콩나물 국밥은 잘 끓인다고 자부합니다만. 그간은 어머님이 저희들이 어린 시절 끓여주시던 콩나물 국밥을 재현하려고 노력했지요.”

오래지 않아 좀더 번화한 강남역 사거리로 진출했다. 예전 태극당 제과점 뒤편 골목에서 잠깐 콩나물 국밥 집을 운영했다.

콩나물 국밥을 끓인 기간은 이미 30년에 가까워진다. 지금의 익산 ‘일해옥’을 운영한 것은 불과 10년 남짓이지만 시작은 1990년 무렵 서울 강동 암사동의 콩나물 국밥 전문점이었다.

“식당 일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이른바 스카우트라는 걸 당해봤지요. 대구 동화백화점에서 식당을 열면서 저를 데려 갔습니다. 2000년 무렵인데, 동화백화점에서 식당을 크게 열면서 저를 홀 전체를 관리하는 매니저로 데려갔지요. 바닥 면적만 500평이 되는 큰 매장이었는데 서울에서 잘 한다는 셰프들, 매니저들 데리고 가서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4년 반 정도 일했는데 좋은 경험이었고, 나름 성과도 있었습니다. 만 6개월 만에 식당을 정상적으로 만들고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하지만 식당이 크면 음식 만드는 재미는 없습니다. 좋은 음식,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기는 힘들지요. 식당 일 하면서 원가 계산하면 좋은 음식하고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정 대표는 지금도, 스스로를 ‘원가 계산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정 대표는 4남1녀. 여전히 “형제 간 중에서도 계산이 제일 어둡다”고 털어놓는다.

고추를 다시 말리는 이유

“자기 마음에 드는 음식, 때로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려면 노력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려는 노력과 성실함이 필요하지요. 성실과 노력은 기본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α’가 필요합니다. 기본을 넘어서는 부분이지요. 누구는 ‘타고난 기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런 타고난 기질은 남과 다른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과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눈썰미, 능력이겠지요.”

익산 ‘일해옥’에 들어서면 늘 붉은 고추가 알루미늄 쟁반 위에 얹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손님들은 “음, 고추를 말리는군”이라고 생각하고 스쳐 지나간다. 그렇지 않다. 이미 말린 고추를 다시 널어놓은 것이다.

고추는 햇볕에서 말리는 것을 최고로 친다. 이른바 태양초다. 바짝 말린 태양초를 다시 말릴 필요가 있을까?

“국솥 위에 알루미늄 판을 얹고 그 위에 고추를 저렇게 얹어두면 고추를 슬쩍 굽는 효과가 있습니다. 국솥에는 멸치가 끓고 있습니다. 그 육수의 습기가 고추에 배어들어가고, 알루미늄 판 위에서 수분은 다시 증발하면서 고추에 멸치 맛이 배고 한편으로는 뜨거운 기운이 고추를 슬쩍 굽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부뚜막에서 고추를 말리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콩나물 해장국 집을 열고 나서 우연히 어린 시절 보았던 부뚜막의 고추를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 라고 고민하다가 결국 알루미늄 판을 얹고 그 위에 고추를 두는 걸 생각해냈지요. 같은 효과가 나는지, 또 맛이 달라지는지 알 수가 없으니, 혼자서 여러 번 해봤습니다.”

지금도 아침, 점심 두 끼는 반드시 스스로 만든 가게의 콩나물 해장국을 먹는다. 같은 재료로 늘 자신이 끓인 콩나물 해장국도 매일 맛이 다르다. 말린 고추는 일일이 손으로 부순다. 절구질을 하거나 믹서 기로 갈면 편하다. 일도 간편하고 모양도 좋다. 그러나 손으로 거칠게 부순 고추와 기계로 갈아낸 고추는 맛이 달랐다. 맛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도 기계를 사용할 수는 없는 일. 예전 음식을 무턱대고 따라갈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전 방식을 모두 버릴 것도 아니다. 예전 식으로 고추를 만지면 맛이 낫다는 걸 알고 나서 늘 저녁 시간 혼자서 고추를 부수었다. 덕분에 고추의 매운 맛이 손에 배어들었고, 한동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손이 아렸다.

보기 좋은 멸치가 먹기도 좋다

“좋은 멸치는 빛이 납니다. 색깔이 노랗고 빛이 나는 멸치를 구하면 일단 먹어보지요. 맛이 좋으면 한동안은 육수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멸치 색깔이 거뭇거뭇하면 대부분 맛이 떨어집니다. 좋은 걸 보고 찾아내고 또 비싼 값이라도 구입할 수 있어야 좋은 국물을 얻을 수 있지요.”

정 대표가 말하는, 콩나물 국밥의 맛은 멸치 육수와 칼칼한 고추의 맛이다. 멸치와 고추가 어우러진 맑은 맛이다. 오히려 콩나물은 사각사각 씹히는 맛, 식감을 북돋워 줄 뿐이다.

“한동안은 일본산 멸치를 사용했습니다. 일본 원전사고가 나기 전에는 일본산을 썼지요. 근래는 국산 남해 멸치를 사용합니다. 일본산이나 국산이나 늘 내용물을 일일이 살펴보고 확인해야 합니다.”

한번이라도 말린 멸치포대의 내용물을 본 사람들은 안다. 포대 안에는 멸치뿐만 아니라 때로는 작은 게와 아주 작은 갈치까지 뒤섞여 있다. 대부분 그대로 국을 끓이고 육수를 낸다. 예민한 사람들은 “콩나물 육수가 탁하다”고 불평한다. 당장 정 대표 자신이 그 맛을 구별해낸다. 일일이 멸치를 살펴보고 잡 생선을 가려내는 수밖에 없다.

몇몇 동업 제의도 받았다. 분점을 내자는 제의도 있었다. 자신이 없다. 현재 가게는 테이블 8개, 20여 평이다. 그리 넓지 않다. 여전히 일은 많고 챙길 부분도 많다. 분점을 내면 육수부터 맛까지 제대로 챙길 자신이 없다. 돈 생긴다고 덜렁 저지를 일도 아니다.

가까운 곳에 작은 수공업공장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콩나물 국밥 인터넷 판매’라도 해볼까, 계획하지만 그것도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일해옥’ 정기섭 대표. 고향은 전북 군산. 서울, 대구를 거쳐 고향 인근 익산에 안착했다. 콩나물 국밥 업력 30년. 익산 일해옥은 이제 10 년쯤의 업력을 지니고 있다

-‘일해옥’의 콩나물 국밥. 반찬도 달랑 두가지다. 단출하고 맛은 담백하다.

-정기섭 대표가 콩나물 국밥을 토렴하고 있다. 멸치를 많이 넣은 육수다. 토렴에 대해서는 ‘국물을 탁하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정기섭 대표는 맑은 콩나물 국밥을 지향한다.

-콩나물 국밥의 국물은 멸치와 고추의 칼칼한 맛이다. 좋은 멸치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알루미늄 쟁반 위에 고추를 다시 말리고 있는 모습

익산의 맛집들

정순순대

피순대 전문점이다. 2대 전승. 창업자는 나이가 많아서 ‘고문’으로 하루 한 번씩 가게에 나오고 아들 내외가 운영 중이다. 피순대로는 최상급. 수육 등도 좋다.

왕궁다원

익산시 왕궁면에 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림이 되는’ 찻집이다. 한옥과 전통차가 아주 좋다. 초여름 꽃 잔디와 여름철의 수목이 대단하다.

신동양

화상 노포 중식당이다. ‘하얀짬뽕’은 흰색의 짬뽕이면서 청양고추의 매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소박한 중식당이지만 음식 내공은 깊다. ‘물짜장’도 추천한다.

소주한잔

삼겹살이 좋다. 냄비 밥도 아주 좋다. 소주 한 잔 하기에 아주 좋은 실비집이다. 허름한 집이지만 소박한 메뉴를 수준급으로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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