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 ‘손맛’의 ‘맛있는 음식’ 내놔…김국ㆍ김장아찌 독특, 미자탕 유명

“음식맛, 유명세는 장모님과 아내 덕분”…모든 장(醬) 직접 담고, 인근 농수축산물 사용

‘곱창 돌김’ 요리 각별, “장맛이 비법”…해남ㆍ광주서 ‘해남성내식당’운영,

전남 해남에 있는 ‘해남성내식당’. 굳이 ‘전남 해남’이라고 앞에 붙이는 이유가 있다. 광주에도 ‘해남성내식당’이 있다. 동서지간의 두 부부가 운영 중이다. 어느 게 원조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둘 다 원조다. ‘원조’ 최경애씨의 두 딸 부부가 한 곳씩 운영하고 있다.

‘해남성내식당’ 인터뷰를 어디서 할까, 고민했다. 해남의 ‘해남성내식당’이 먼저 생겼다. 그래서 땅끝마을 해남으로 갔다. 해남의 ‘해남성내식당’ 최중석 대표를 만났다.

어린 시절 먹던 음식 ‘김국’을 내놓다

얼마쯤 인터뷰 내용이 우왕좌왕할 수 있다. 광주냐, 해남이냐를 두고 헛갈렸던 것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원조를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원조는 최경애(66)씨다. 두 동서의 장모님이다. 먼저 창업한 것은 해남의 ‘해남성내식당’이다.

음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 이야기와 고기, 미자탕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고기 집이지만 김이 워낙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약 30년 전, 최경애씨가 해남에서 식당 일을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호남에서도 제일 아래 부분, 땅끝이다. 외진 곳이다. 식당 여는 이가 대단한 신념이나 음식에 대한 진정성을 가졌기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호구지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그런데 남달랐다. 음식 만지는 솜씨야 당연히 수준급이었다. 지금까지도 해남과 광주의 ‘해남성내식당’이 꾸준히 맛있는 음식, 맛있는 밑반찬을 내놓는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남달랐다’고 표현하는 것은 식당의 메뉴판을 짜는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마음속으로 “뭔가 색다른 걸 내놓으면 좋겠다”고 고민했고, 그 색다른 걸, 김국으로 정했다.

김국은 김을 마치 국처럼 만든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널리 먹지 않으니 보편적인 메뉴는 아니다. 김국 먹어봤느냐, 고 물으면 대부분 김국이 뭐냐고 되묻는다. 미역을 넣고 끓이면 미역국이다. 김을 넣으면 김국이다. 비슷한데 다르다.

김국은 끓이지 않는다. 김국은 냉국이다. 미역국처럼 뜨거운 맛이 아니다. 서늘한 냉국이다. 큰 그릇에, 통째로 구운 김을 열장 정도 부숴 넣는다. 통깨를 뿌리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이게 과정의 모두다. 알고 보면 싱겁기 짝이 없는 레시피(?)지만 간단치 않다.

역시 김이 좋아야 한다. 좋은 김을 곱게 부숴서 넣는다. 어디 김일까, 궁금하다.

해남은 좁다. 한 집 건너 친척이 살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초, 중, 고등학교 동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숨만 크게 쉬어도 다 알아차린다.

‘해남성내식당’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이런 지역의 유명 식당이 특정 지역의 농수축산물을 사용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남김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인근 어란진의 김을 가져다 썼다. 어란진은 해남읍의 서남단에 있는 작은 포구. 방파제가 있다. 한때는 영암군에 속했지만 지금은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다. 임진왜란 당시 주요한 군사요충지였다. 작은 시골학교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있다. 해남, 완도 등의 포구에서 제주도로 가는 길목에 있다. 김 생산지로 유명하다.

어란진의 김, 곱창 돌김

해남의 김 생산량은 김으로 유명한 완도보다 더 많다. 완도 김이 유명한 것은 김에 대한 브랜드를 완도가 먼저 가졌기 때문이다. 막상 현지에서는 완도와 해남 일대를 굳이 가르지 않는다. 모두 연결된 바다다. ‘해남은 안이고 완도는 바깥’이라고 말한다. 완도가 좀 더 남쪽바다로 자리하고 있다.

해남의 어란진 포구는 많은 양의 김을 생산하고 특히 재래 토종이라고 할 수 있는 ‘해남 곱창돌김’을 생산하는 곳이다. 돌김은 재래식 김을 이른다. 바위에서 채취하는 자연산 김을 고집하는 것은 허망하다. 없다. 실제 자연산 김은 있지만 일일이 자연산 김을 채취하여 말린 김으로 한 장 한 장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래 전에는 얕은 바다에 긴 나무를 꽂고 그 둘레에 잔가지를 얹어서 김을 양식했다. 이젠 그런 방식으로 김을 양식하는 곳도 사라졌다. 김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대량 생산에 맞는 방식을 찾았다. 몇 개의 줄을 나란히 달고 그 줄에 김을 양식한다.

곱창 돌김은 줄에 매달린 생김의 가닥이 마치 곱창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예전의 품종이고 맛도 뛰어나다.

“곱창 돌김을 쓴다”고 말하진 않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김을 담은 박스를 하나 건넨다. 해남군과 김 양식 단체 마크가 찍혀 있었다. ‘해남 곱창돌김’이었다. 최중석 대표가 자랑했다. “우리 식당에서 김을 많이 소비하고, 김국이나 김장아찌를 통해서 김을 널리 알렸다고 표창장도 주고, 이렇게 샘플도 주시고….”

김국, 생김전, 생김라면, 그리고 김장아찌

해남에 가면 김으로 만든 냉국과 생김을 넣은 라면, 생김으로 만든 생김 전, 그리고 김 장아찌를 먹어보길 권한다.

김장아찌는 ‘해남성내식당’의 곁 메뉴다. 고기를 파는 집이니 고기가 유명하고 김국도 유명하다. 김 장아찌는 밥상 위에 있는 20여 종류의 밑반찬 중 하나다.

처음부터 미자탕이 유명했다. 미자탕은 수소의 생식기를 샤브샤브 식으로 먹는 것이다. 된장 등을 푼 육수에 수소 생식기 고기를 샤브샤브 식으로 처리하여 먹는 것이다.

이 집에 들렀던 ‘글 쓰는 주방장 박찬일씨’는 “소의 아랫부분이긴 한데 정확히 어느 부위인지는 따지지 말자. 무릇 아랫도리 이야기는 슬쩍 묻고 지나가는 법”이라고 너스레를 떤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미자탕이 궁금해서 들렀다가 결국 김 장아찌와 김국에 반하게 되었다. 미자탕이나 김국, 김 장아찌 모두 처음 창업한 최경애씨 작품이다.

현재 ‘해남성내식당’의 주인 최중석씨는 결혼 후, 한참 동안 건축 관련 일을 하다가 늦게 식당 일에 뛰어들었다. 고향은 멀지 않은 나주. 1969년생이다. 아내 강지숙씨는 1973년 생으로 해남이 고향이다.

“원래 장인, 장모님이 오랫동안 해남에서 식당을 운영하셨지요. 저희들은 따로 나주에 살다가 장인어른이 많이 아프셔서 해남으로 왔습니다. 아프다고 하시니 ‘우리가 내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쪽으로 왔습니다.”

원조 최경애씨가 운영하는 가게를 물려받았던 것도 자연스러웠다.

“안사람 음식 만지는 솜씨가 장모님을 닮았습니다. 어머니 옆에서 배우다가 식당 일을 맡아서 운영하게 되었지요. 요즘은 제가 고기 만지는 일을 하지만 원래는 고기 만지는 일도 아내가 더 잘 합니다. 된장, 간장, 고추장 챙기는 일부터 여러 가지 반찬 만드는 일까지 아내가 모두 배웠지요. 장모님이 가지고 있던 맛입니다.”

지금의 자리로 이사 오기 전에는 군청 주차장 한 귀퉁이에 가게가 있었다. 오래된 건물이고 낡았다. 불고기나 고기구이를 내지 않고 샤브샤브 스타일의 음식을 내놓은 이유도 따로 있다. 공간이 그리 넓지 않고 낡았으니 고기를 굽기는 좋지 않았다. 공기 순환도 문제가 되고 숯불을 다룰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결국 된장을 이용한 샤브샤브였다.

“이 음식은 누가 시작한 거냐?” “미자탕은 누가 시작했느냐?” “고기가 굉장히 좋은데 누가 구해오는 거냐?”는 등등의 질문에 최중석씨는 대부분 “장모님이 시작하신 걸, 아내가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웃는 인상으로 ‘장모님과 아내 덕분’이라고 말하지만 그의 역할도 만만치 않았을 터이다. 아들 둘을 두었다. 두 아이는 12살 터울이다. 터울이 길다. 대답이 참 간단하다. 그 간단한 대답에 가게를 운영한 최씨의 고단함이 묻어 있다.

“장사를 했으니까요.”

지난 세월, 아마 정신없이 바빴을 것이다.

된장독, 김칫독 모으고, 장 엘리베이터를 장만하다

좁고 낡은 예전의 장소에서 현재의 장소로 이사하면서 최씨는 신이 났다. 제일 큰 기쁨은 옥상에 된장 항아리 40개를 한 장소에 모아둔 일이다. 된장 항아리가 상당히 크다. 옥상에서 아래의 주방으로 된장독을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다. 옥상과 주방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를 달았다.

음식에 대해서 물어보면 ‘된장독 옮기는 엘리베이터’부터 자랑한다. 그 엘리베이터가 보통 식당에서 사용하는 음식 나르는 엘리베이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고 자랑한다. 자랑거리는 또 있다. 예전 장소에서는 김치를 3곳에서 보관했다. 번거롭고 힘들었다. 이사를 하면서 그 김칫독을 한 곳에 모았다.

동서 부부가 운영하는 광주의 ‘해남성내식당’도 음식은 마찬가지다. 창업주 최경애씨는 현재 광주 작은 딸네 가게에서 일을 돕는다. 해남은 자리를 잡았다. 작은 딸이 운영하는 광주의 가게는 이제 시작이다. 물론 광주의 가게는 해남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 도시의 규모가 다르다. 광주는 해남에 비하면 아주 크다. 큰 도시 광주라면 쉽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게다가 창업주가 직접 음식을 관리하고 주방 일을 돕고 있다.

두 곳은 음식은 도플갱어다. 당연하다. 광주에는 창업주가, 해남에는 창업주에게 음식을 배운 맏딸이 어머니의 음식을 그대로 내놓고 있다. 같을 수밖에 없다.

‘해남성내식당’의 음식이 맛있는 이유를 물었다. 최중석씨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한다. “결국 장맛입니다. 모든 장을 직접 담고 당연히 김치도 인근의 농산물을 이용하여 담으니까요.”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설명

-‘해남성내식당’의 대표 최중석씨와 아내 강지숙씨. 최 대표는 올해 49세, 강지숙씨는 45세다. 최 대표는 나주가 고향이고 해남은 강씨의 고향. 최 대표는 처가인 해남으로 와서 장모님이 하던 식당을 물러받았다. '아내가 장모님에게 음식 만드는 일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 밑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다. 김치부터 장까지 모두 맛있다. 다른 밑반찬들도 좋지만 고기 질이 아주 좋다. 인근 지역의 한우를 사용한다.

-‘해남성내식당’의 김국. 오래 전부터 김국은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먹었던 음식이다.

-‘해남성내식당’의 미자탕.

-‘해남성내식당’김장아찌.

쇠고기 맛집

통일집/서울 을지로

밤늦은 시간 을지로 골목에서 화덕 불을 밝히고 암소등심을 굽는다. 가격은 대중적, 맛은 수준급이다. 대단한 인테리어는 기대하지 말 것. 골목에 화덕을 놓았다.

황소한마리육개장/경기도 남양주

특이하게 황소고기를 사용한다. 거세하지 않은 것이다. 육개장과 바싹불고기가 있다.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나는 설하멱(雪下覓)도 가능하다(예약). 황소고기도 부드럽다.

마당넓은집/경기도 곤지암

소백산 일대의 한우를 사용한다. 고기와 더불어 나물들이 아주 좋은 집이다. 고기를 주문하면 각종 산나물, 들나물이 한상 가득이다. 각종 장류, 장아찌가 아주 좋다.

녹양구이/ 대구 중구

대구 시내 중심가에 있는 노포. 대중적인 집이다. 돼지고기 석쇠 불고기가 좋지만 주력은 ‘뭉티이 고기’다. 소의 우둔 등을 잘 손질하여 생고기로 먹는다. 가성비 아주 좋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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