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음식과 다른 ‘황해도 음식’… ‘나만의 음식’ 추구, 황해도식 요리 선봬

황해도 사리원 출신 시어머니에게 배운 음식 제대로 보여줘

‘삯국수’ 특이, 황해도식 만두ㆍ국수 주메뉴…새 메뉴 준비

옷가게, 포장마차, 일식집 거쳐 독자적인‘봉산옥’20년 운영

편하게 ‘북한음식’이라고 하자. 서울 서초동의 ‘봉산옥’. ‘북한음식’을 내놓는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읍’의 음식이다. 봉산군은 지금 사리원시다. 북쪽에 속한 땅이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봉산옥’의 음식은 봉산군 사리원의 음식이다. ‘봉산옥’의 대표 윤영숙씨를 만났다.

시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우다

‘봉산옥’의 윤영숙 대표. 1960년 생, 올해 58세다. ‘봉산옥’은 20년 남짓 되었다. 음식점을 운영한 것은 그것보다는 오래되었다. 지금의 자리에서 일식집을 하다가 ‘전업’했다.

사람들은 ‘북한음식’이라고 하는데 늘 ‘황해도 음식’이라고 표현한다. 가게에도 ‘황해도 음식’ ‘황해도 만두’라고 써 붙였다. 북한음식이라고 해도 그저 무덤덤 넘긴다. 그러나 누가 질문하면 반드시 ‘황해도 음식’이라고 이야기하고, 정확하게는 ‘사리원 음식’이라고 대답한다.

“저는 서울 출생입니다. 봉산, 사리원이나 북쪽은 잘 모르지요. 결혼을 했는데 시가집 식구들이 월남한 분들이셨습니다. ‘봉산옥’도 사리원 출신의 시어머님한테 배워서 음식을 내놓다보니 지은 이름이구요. 바뀐 부분도 있지만 시작은 황해도 사리원 음식입니다.”

사리원은 ‘沙里院’이다. ‘원(院)’은 조선시대 ‘역원제도’의 원이다. 조선시대, 공무로 이동 중인 관리, 벼슬아치 등이 이용한 시설이 역원이다. 그중 숙박, 식사 등이 모두 가능한 곳이 바로 ‘원’이다. 사리원, 조치원, 이태원 등이 바로 조선시대 ‘원’이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숙박시설이 있었던 교통요지였다.

사리원은 조선시대, 한양도성과 평양을 잇는 주요 교통요지였다.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단도 한양을 출발, 사리원 일대를 거쳐 평양, 의주, 중국으로 향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철로가 통과하는 교통 요지였다. 음식이 발달한 여건을 갖춘 셈이다.

황해도 일대를 ‘북한지역’이라고 여긴다. 황해도 음식을 북한음식이라고 표현한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이 역시 잘못된 표현이다. 개성이나 봉산군 사리원 등이 지금은 북한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이라고 생각하는 평안도나 함경도와는 다르다.

‘경기’ ‘경기도’라는 개념은 11세기 초반 고려시대에 생겼다. ‘수도 인근, 서울 인근’이 경기도다. 고려시대의 경기도는 한양 인근이 아니라 개성 인근이다. 경기는 이미 천년을 넘긴 지역 개념이다. 황해도의 상당 부분은 이미 경기, 서울 인근의 땅이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고려, 조선 왕조 천년을 통해 지배계층과 섞여 살았다. 지금은 북한 땅, 황해도 일부는 관리들과 반가의 음식 전통이 남아 있는 곳이다.

황해도 음식은 북한음식과는 다르다. 평안도 만두는 크다. 황해도 일대의 만두는 그보다는 작다. 황해도 일대는 일찍부터 국수 문화가 발달했고 개성배추, 황해도 일대 돼지고기는 질이 좋았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황해도로 출장을 가는 이들이 돼지고기를 사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삯국수를 아십니까?

메뉴 중 특이한 것이 있다. 삯국수다. 처음 ‘봉산옥’의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메뉴 중 하나다.

‘삯국수’는 ‘삯을 주고 만들어온 국수’다. 국수 만드는 일을 동네 공장(?)에 맡긴다. 국수를 받아온 다음, 육수 내는 일은 집에서 한다. 삯을 주고 만든 국수니 삯국수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특이한 표현들이 나온다.

“결혼을 하고 나서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국수를 집에서 해먹었지요. 음식 간 맞추는 거나, 고명 만들어 얹는 일을 당연히 며느리인 제가 했고요. 시어머님은 곁에서 코치를 하시고 저는 만들고. 시어머님이 예전 사리원 사실 때 국수 ‘끊어’ 오셔서 집안에서 국수 말아 드셨던 이야기를 늘 하시더라고요.”

국수를 ‘끊어온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인근의 작은 수공업 국수 공장에서 국수를 만들어오면 늘 ‘끊어온다’고 표현했다.

작은 공장에서 국수를 뽑으면 가락이 제법 길다. 그 긴 가락을 가는 대나무에 널어서 실내외에서 건조, 숙성한다. 잘 말린 국수는 쉬이 바스러진다. 긴 면발을 작두 등으로 자른다. 이때 모습이 ‘끊는 것’ 같이 보인다. 그래서 ‘국수를 끊는다’고 한 것이다. ‘끊은 국수’는 밀가루부대 종이에 둘둘 말아서 묶었다.

“사리원 일대는 비교적 밀가루가 흔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기도 했지만 밀가루가 없으면 감자전분으로 삯국수를 끊어다 드셨다고.”

시어머님의 국수에 대한 애착은 깊었다. 월남해 서울에 정착한 다음에도 마찬가지. 서울 오장동 일대의 유명한 냉면집에서 국수를 구해와서 직접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윤영숙 대표는 시댁의 대소사 때마다 국수나 만두 등을 만들고 또 더불어 먹었다.

남대문, 안성을 거쳐 다시 서울로

처음부터 음식점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다.

결혼 후에는 남대문시장에서 의류 판매 가게를 했다. 흔히 ‘뽄’이라고 부르는 옷본을 구해서 인근 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그걸 파는 일이다. 남산 인근의 수공업 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새벽 3시부터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판다.

“가게가 망했어요. 당장 끼니가 걱정일 정도로 망했는데 다행히 시부모님이 안성에서 젖소농장을 하고 계셨는데 그곳으로 갔지요.”

겨우 젖먹이를 벗어난 아들을 데리고 안성으로 갔다. 서툰 농장 일은 힘들었다.

“아무리 시부모님 댁이라도 오래 있을 수는 없으니까, 결국 다시 서울로 나와서 포장마차부터 시작했지요. 돼지갈비를 파는 포장마차였는데 다행히 장사가 쏠쏠하게 되었지요.”

쉽게 이야기하지만 지난 행적들이 평탄치는 않았다.

“서울올림픽 무렵 포장마차를 하고, 그 다음엔 조금 모은 돈으로 현재의 가게를 구하고, 자그마한 일식집을 운영했습니다. 장사는 꾸준하게 되었고요.”

특이한 것은 ‘황해도 음식’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결혼하고 나서도 ‘황해도 음식 전문 음식점’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쫄딱 망하고 안성으로 가고 안성에서 다시 서울로, 포장마차와 일식집을 운영할 때도 단 한번도 ‘황해도 음식’ 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일식 체인점 같은 형태의 음식점을 운영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나만의 음식’ ‘나만 할 수 있는 음식’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집 와서 처음 봤던 음식들이 당혹스러웠지요. 갑자기 그 음식은 어쩌면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친정의 만두는 신 김치를 넣은 것이었다. 시댁에서 처음 본 만두는 친정이나 서울의 다른 집과는 달랐다. 배추를 삶아서 곱게 다진 다음 만두 속에 넣었다. 삶아서 다진 배추에 갖은 양념을 다하고 정성을 더했다. 음식에는 늘 마늘을 많이 사용했는데 시댁에서는 마늘 사용도 제한적이었다. 고기의 마늘도 절제했다. 더하는 음식, 맛을 강하게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빼는 음식이었고 식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음식이었다.

서울토박이인 윤영숙 대표는 “지방 음식은 간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댁인 황해도 사람들의 음식은 때론 서울 음식보다 간이 더 약했다. 많은 재료를 뒤섞는 것보다는 적은 숫자의 고명, 양념을 얹은 맑은 음식이었다. 곁에서 지켜본 시어머님의 음식에 쏟는 정성은 대단했다.

‘나만의 음식’을 만들고 싶다

“체인점 형태였으니까, 제가 원하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 ‘나만 할 수 있는 음식’을 찾다가 시어머님에게 배운 음식들이 떠올라서 어느 날 전업을 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삯국수를 비롯해 황해도식 만두, 만두전골, 만둣국, 김치말이국수 등의 메뉴가 바로 황해도 음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은 내놓지 않지만 늘 생각나는 메뉴도 있습니다. 호박김치찌개입니다. 호불호가 너무 선명하게 갈려서 지금은 내놓지 않지만 참 좋아했던 메뉴였습니다. 찾는 분들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다시 메뉴에 등장하겠지요.”

황해도부터 안면도 해안가에 이르는 중부 서해안 지역 사람들은 박이나 호박을 즐겨 사용한다. 안면도 일대의 ‘박속밀국낙지탕’이나 강화도 일대의 ‘단호박꽃게탕’ 등이다.

황해도의 ‘호박김치찌개’는 호박 들어간 김치를 찌개로 끓인 것이다. ‘호박+김치찌개’가 아니라 ‘호박김치’ 찌개다. 호박김치는 호박을 썰어서 담근 김치다. 늦여름부터 추석 무렵까지는 김치가 귀하다. 늦여름 배추나 무는 무르고 별 맛이 없다. 김치를 담아도 역시 별다른 맛이 없다. 아직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쐰 배추, 무는 이르다. 이 무렵 다 자랐으나 아직은 푸른 호박으로 김치를 담는다. 억센 열무도 김치로 담는다. 호박김치찌개는 호박김치, 열무김치로 끓인 찌개다. 시큼한 열무김치의 맛과 호박김치의 달고 시큼한 맛이 잘 어우러진 특이한 음식이다.

“물론 쉽진 않았습니다. 가게 문 열고 황해도 음식을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저 북한음식이려니 하지, 황해도 음식을 아는 이들이 드물었습니다. 2년 정도 장사는 되질 않고, 그동안 번 돈을 다 까먹었지요. 황해도 태생이 아니더라도 시어머님에게 배운 황해도 음식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만 늘 했습니다.”

다행히도 서른을 넘긴 아들이 가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식재료 구매하는 일은 아버지보다 낫다”고 여기는 아들이다. 늘 싱싱한 식재료를 잘 구해오는 아들이다.

“아들이 가게 운영에 뜻이 있으니 제가 시어머님에게 배우고 거기에 부족하지만 제 나름대로 더한 부분까지 아들이 물려받을 수 있겠지요.”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북한음식 전문점

반룡산

이제는 보기 드문 ‘가릿국밥’을 내놓는 함경도 음식 전문점이다. 주인의 어머니가 집안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메뉴로 구성했다. 만두나 함경도식 식해도 아주 좋다.

설매네

메뉴 구성이 재미있는 집. 만두전골은 푸근하고 푸짐하다. 만두의 크기도 크고, 양도 제법 넉넉하다. 북한식이다. 탕평채는 북한음식이 아니다. 음식은 수준급이다.

평안도만두집

광화문 대우복합빌딩 지하에 있는 작은 만두집. 만두전골이 아주 좋다. 빈대떡, 보쌈 등도 수준급이다.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야 하는 집. 김치찌개도 권한다.

만두집

이름이 ‘만두집’이다. 압구정동 갤러리아 건너편 좁은 골목에 있다. 만두피가 두꺼운 전형적인 이북식 만두다. 전골 형태로 먹는다. 콩비지, 빈대떡, 고추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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