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 가득한 ‘홋카이도의 배꼽’

후라노는 ‘홋카이도의 배꼽’으로 불리는 소도시다. 홋카이도 정중앙에 위치한 마을은 봄이 완연해지면 꽃세상으로 변신한다. 추억의 열차가 닿는 길목에는 연인들이 삼삼오오 찾아든다.

이방인들은 홋카이도의 화원을 탐미하기 위해 후라노를 찾는다. 후라노를 출발하는 노로코 열차는 전원풍경이 가득한 마을과 간이역을 느린 템포로 가로지른다. 창을 바라보고 나무의자가 놓여있는 것도, 손으로 줄을 잡아당겨야 열리는 오래된 창문도 분위기 넘친다. 창밖으로는 들판과 꽃밭세상이다.

홋카이도 열차여행을 정겹게 만드는 노로코 열차는 전원마을과 골목길을 더듬으며 달린다. 열차는 시속 30km쯤으로 천천히 오가며 평소 ‘빠르고 정확히’를 강요하는 빠듯한 도시인의 정서를 외면한다. 넥타이, 허리띠를 풀고 식당칸에서 파는 추억의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한껏 여유로움에 빠질 것을 권한다.

화원, 와이너리를 간직한 소도시

라벤더 꽃밭으로 유명한 후라노의 도미타 농장에는 노로코 열차의 임시역이 마련된다. 임시역 이름조차도 꽃이름을 빌려 ‘라벤더 하다케’역이다. 화원 산책에 곁들여 이곳 라벤더 아이스크림 숍과 디자이너의 손길이 깃든 꽃가게 등을 두루 둘러보면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홋카이도의 소도시 후라노는 드라마 한편 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80년대에 일본 안방극장을 휩쓸었던 <기타노쿠니카라>가 마을을 배경으로 방영되면서 관심을 끌었다. 역앞에는 드라마 자료관이 들어서 있고 드라마의 작가가 운영한다는 ‘닝구르 테라스’에는 통나무 오두막집마다 전통 수공예품을 만들어낸다.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명소로 밤의 정취가 독특하다.

후라노는 와인가게, 치즈공방, 과자가게 등을 둘러보는 길목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홋카이도의 전원이 담긴 길을 걷고 포근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영화 속 흔적 담긴 열차 노선들

후라노를 출발한 열차는 아사히카와를 경유해 삿포로로 향한다. 투박한 외관의 단칸열차들은 경계가 없다. 차창도 시원스럽게 열리고, 검표원을 겸하는 차장과 손님과의 거리도 가깝다.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역무원 아가씨의 모양새도 정겨움이 묻어난다. 일본 시골마을 간이역의 사연을 담아냈던 후르가토 야스오 감독의 <철도원> 속 한 장면이 뇌리를 스친다.

아사히카와는 소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를 배출해낸 도시다. 이곳에서 소야혼센을 타면 러시아의 사할린을 볼 수 있는 일본 최북단의 왓카나이로 향하고, 하코다테혼센에 오르면 삿포로, 오타루, 하코다테로 연결된다. 오타루는 “오겡끼데스까(잘 지내고 있나요)”로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됐고, 하코다테는 세계 3대 미항으로 알려진 야경의 도시다.

역 입구는 온통 도시락 가게들이다 ‘에끼벤’으로 불리는 도시락은 낯선 여행자들에게는 편리함 보다는 추억을 심어주는 매개체다. 일본 열차여행의 묘미중 하나가 역 근처를 기웃거리며 도시락을 사먹는 것이라고 한다. 소담스럽게 담긴 도시락에는 홋카이도의 특산물인 털게로 만든 것도 있어 정겨움을 더한다.

홋카이도를 오가는 열차는 풋풋한 나그네의 뒷모습을 닮았다. 소담스런 꽃마을로 향하는 열차여행은 기차소리가 멀어지고 빛바랜 역사를 벗어나도 진한 추억으로 계속된다. `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인천에서 삿포로까지 직항편이 운항중이다. 후라노까지는 아사히카와를 경유해 닿는다. 2시간~2시간 30분 소요.

▲숙소=후라노의 산책 명소인 닝쿠스 테라스는 호텔숙소와 바로 연결돼 있다. 홋카이도는 라면과 맥주로 유명한 곳이다. 가격은 다소 비싸나 이곳 명물인 털게 요리를 맛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기타정보=단칸짜리 열차나 테마열차 모두 일본 철도 패스인 ‘JR패스’로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역에는 한국어 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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