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지 않고 ‘뺄 만큼 뺀’ 마음에 남는 음식 … ‘정성’으로 최고의 맛 내

손수 고른 나물, 직접 담근 장(醬), 최대의 정성 음식에 쏟아

주인이 주방 맡아, 식재료에 해박한 지식… 본래 고기집, 나물로 더 유명

음식은 소통의 도구…가슴으로 전하고, 머리로 그리고, 손으로 만들어

새로 연 ‘두루담아’ 한정식 인기…버섯전골형태의 탕, 나물, 생선 등 선봬

필자는 음식 공부를 하는 이다. 고기, 생선, 나물, 곡물, 각종 장류 등이 모두 공부의 대상이다. 공부에는 ‘선생’이 필요하다. 경기도 곤지암의 ‘마당넓은집’ 장영순 대표는 필자의 ‘나물 선생’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5월 초, 곤지암 ‘마당넓은집’에서 장영순 대표를 만났다. 역시 나물, 각종 장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하고 들었다. 이날 있었던 대화와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다.

‘마당넓은집’, 고기 집? 나물 집?

장영순 대표. 1956년생이다. 환갑을 넘겼다. 여전히 주방과 홀을 뛰어다닌다. 손님도 웬만큼 있다. 이쯤 되면 설렁설렁 해도 된다. 낮 시간에는 가게를 지키더라도 저녁나절에는 비워도 될 법하지만, 마지막 시간까지 가게를 지킨다.

‘마당넓은집’은 쇠고기가 주력메뉴다. 쇠고기의 질이 상당하다. ‘소백산 한우’만 고집한다. 가격 대비 최상급의 고기를 쓴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손님들 중 아무도 “이집 고기가 좋다” “이집 고기가 맛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마당넓은집’은 나물이 좋다”라고 이야기한다. 다음은? “‘마당넓은집’ 나물을 무친 간장이 10년 묵은 것”이라고 말한다. 가끔 이 집에서 직접 만드는 식초를 이야기하고 효소를 이야기한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고기 이야기를 꺼낸다. 겨우 “그 집, 고기도 맛있지”라는 말이다.

나물을 일일이 골라서 사고, 된장, 간장, 고추장은 전부 직접 담근다. 산지 직거래도 하고, 더러는 나물을 모으는 이를 통해서도 구한다. 부족한 부분은 가락동 농산물 시장에서 구한다. 좋은 나물이 있으면 가락동 농산물 도매상에서 먼저 전화를 한다.

장만 직접 담그는 게 아니라 각종 식초와 효소 등도 직접 담근다. 최소 10년 동안 그렇게 해왔으니 ‘10년 묵은 된장, 간장’이 있다. 입버릇처럼 말한다. “음식은 장맛이다.”

매번 손님상에 내는 나물반찬이 20종류는 넘긴다. 나물이 흔한 매년 4월 무렵에는 스무 종류를 훨씬 넘기는 나물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나물반찬 하나하나에 대단한 정성을 기울인다. 삶은 시간, 삶는 방식, 나물에 더하는 장의 종류, 무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거칠게 무쳐야 하는 것이 있고, 손대는 듯 마는 듯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나물은 고유의 맛을 지니고 있다. 쓴 나물은 쓴 나물대로, 향이 강한 것은 사람의 혀가 견딜 정도의 향을 살린다. 단맛이 나는 것은 달게, 매운 맛이 나는 나물은 매운 맛을 살린다.

언젠가 울릉도 명이나물을 두고 손님이 불평을 했다.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명이나물이 아니냐? 요즘 웬만한 곳은 다 명이나물 내놓는다”는 것.

궁금증이 생겼다. ‘울릉도 명이나물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늘 울릉도 명이만 고집했다. 진짜 그럴까?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현지 명이나물 채취 과정을 보고 싶어졌다.

명이나물 채취시기에 맞춰 울릉도에 갔다. “내가 사용하는 나물을 어떻게 채취하고 어떤 경로로 내 부엌에 들어오는지?” 알고 싶었다. 육지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나물들은 경험했다. 산지에 가보고 채취 과정도 본다. 산지에서 나물을 살 때는 반드시 맛을 본다. 산에서 야생의 나물 맛을 보다가 엉뚱한 독초를 먹고 혀가 마비되는 일도 겪었다. 때로는 급히 병원에 실려 가는 일도 겪었다.

울릉도는 멀었다. 심하게 배 멀미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현지에서 자연산 명이나물 채취 현장을 봤다. 나이 드신 분들이 명이나물을 채취했다. 몸을 다치기고 하고 심지어는 나물 채취 과정에 인명사고가 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주방에서 만나는 ‘울릉도 자연산 명이나물’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고갱이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사용한다. 손님들에게도 떳떳이 이야기한다. “이거 귀한 나물입니다.” 가격도 비싸지만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나물 한 움큼을 얻기 위해서 현지에서 겪는 고통을 보면서 나물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이 ‘마당넓은집’의 음식이다

오랫동안 음식 이야기를 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이날은 장 대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원래 저는 서울 출생입니다. 서울 토박이지요. 가게 간판에 소백산 한우를 써 붙인 것은 시댁이 영주 풍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주 지역 고기가 상당히 좋습니다. 친척들이 살고 있으니까 고기 수급도 편하고요.”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음식을 잘 만드는 이들 중에는 어린 시절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많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들이 잘 먹는다고 했던가? 장 대표 역시 어린 시절의 입맛을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님이 손으로 일일이 떡을 빚어두면 속만 파먹곤 했습니다. 어머님은 그 속을 다시 채워서 구워주시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외갓집 어른들이 음식을 참 잘 만드셨습니다. 음식 하다가 막히면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이나 그 맛을 되새겨 봅니다. 해답이 보이지요.”

그러다가 집안이 기울어졌다.

“잘 살던 집안 살림이 원주에서 망가졌지요. 원주에서 재산을 다 날리고 서울의 옹색한 셋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전 원주의 ‘옛집’을 다시 가보았다. 살던 집은 허물어졌다. 대신 집터 위에 열댓 집이 새로 들어섰다. 그러고도 마당 한 가운데 있던 연못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른바 당시의 ‘대가(大家)집’이었던 셈이다.

“나물 하나하나 다 따로 삶은 법이 있고, 양념의 종류도 다르고, 무치는 방법도 다르고, 그걸 친정어머님이 다 해내셨습니다.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나물을 만지다 보면 문득 그 생각이 납니다.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 그 음식의 맛이 나질 않으면 뭔가 내가 잘못했다, 이런 생각이 들지요. 다시 찬찬히 해봅니다. 어머님의 손길을 생각해보고, 몇 번을 다시 해보면 그 음식의 맛이 되살아날 때가 있습니다. 그걸 손이 기억하고 마음이 기억해야지요.”

좋은 나물, 나쁜 나물의 구분은 없다

음식점 경영 18년째. 현재의 ‘마당넓은집’은 10년을 넘겼다. 처음에는 서울 시내 강남에서 ‘주방장을 두고’ 음식점을 했다.

“서울 시내에서 그럭저럭 음식점을 잘 하다가 평생 살 곳을 찾자고 곤지암으로 와서 ‘마당넓은집’을 열었지요. 처음에는 여전히 주방실장을 두고 일을 시작했는데 ‘내가 원하는 음식’이 나오질 않는 겁니다. 결국 제가 주방에서 일을 시작했지요.”

‘마당넓은집’에서 가을 냉이를 먹어본 적이 있다. 냉이는 봄에 먹는 것이라 여긴다. 그렇지 않다. 늦가을의 냉이는 뿌리가 굵고 길다. 가을에는 봄, 여름보다 건조하다. 겨울을 넘기기 위해 냉이는 수분을 모은다. 깊은 땅에 뿌리박고 수분을 찾는다. “봄 냉이는 향을 먹고, 가을 냉이는 단맛을 먹는다”는 표현도 있다. 가을 냉이는 맛이 달다. 문제는 뿌리다. 뿌리 속에 이른바 ‘심’이 박혀 있다. 질기다.

‘마당넓은집’의 가을 냉이는 일일이 ‘심’을 빼낸 것이었다. 냉이 뿌리를 두 쪽, 네 쪽으로 나눈다. 고갱이인 심을 빼내고 반찬으로 만든다. 하찮은 냉이 한 뿌리라도 이런 정성을 기울이면 대단한 음식이 되기 마련이다.

주인의 나물에 대한 욕심과 해박한 지식 덕분에 ‘마당넓은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모든 나물을 제철에 맞춰 볼 수 있다.

손님들은 잘 모르는 울릉도 산 전호나물, 눈개승마, 어수리, 오가피 순, 가죽나물 등, 이른 봄부터 ‘마당넓은집’은 봄나물의 축제가 시작된다. 각종 취나물과 야생 참두릅, 땅 두릅, 석이, 목이버섯 등도 흔하게 더러는 귀하게 나타난다.

“두어해 전에 ‘마당넓은집’과 멀지 않는 곳에 ‘두루담아’를 열었습니다. 버섯전골형태의 탕을 내고, 여러 가지 나물과 생선 등을 내는 집입니다.”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가격은 2만5000원. 해를 넘기면서 손님들이 늘어나더니 가까운 곳으로 제2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서서히 손님이 차고 있다.

“바로 곁에 제가 사는 집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가까운 손님들 밥 해드리고, 만들고 싶은 음식들 마음껏 만들려고 준비한 공간입니다. 원하는 대로 음식을 만들어줄 사람을 못 구해서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제가 가서 일하고 싶은데 ‘마당넓은집’의 손님들이 찾으니 거기만 전념하기도 그렇고.”

몇 차례 가봤다. 푸근하게 한 끼 식사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정성스러운 공간. 손님들 중에는 부모님 환갑잔치를 이곳에서 연 이들도 있을 정도다.

음식은 흔히, 세 번 만든다고 한다. 손으로 만들고, 머리로 만들고, 가슴으로 만든다. 순서는 거꾸로다. 가슴, 머리, 손의 순서다. 음식은 소통의 도구다. 이 음식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손님에게 이런 음식을 전하고 싶다고 마음먹는다. 머리로 음식을 그려본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조리할는지 미리 가늠한다. 경험도 중요하다. 음식 그림이 그려지면 손이 움직인다. 밥상을 받은 손님은 한 상 잘 먹고나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더하지 않고 뺄 일이다. 덧붙이는 것은 오히려 음식의 맛을 망친다. 최소한 더하는 것은 장이다. ‘두루담아’ 건물 옆에는 장독대가 있다. ‘마당넓은집’이나 ‘두루담아’의 음식 맛은 여기서 시작되고 완성된다. 결국 음식은 장맛이다.

‘마당넓은집’ 장영순 대표의 음식. 더한 음식이 아니라 뺄 만큼 뺀 음식이다. 양념도 덜고 맛도 덜면서 만든 음식은 마음에 남는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설명

-‘마당넓은집’ 장영순 대표. 일년 내내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나오는 거의 대부분을 나물을 음식으로 만들어 내놓는다. 2월 울릉도 전호나물과 부지깽이 나물부터 초겨울 냉이까지 거의 대부분의 나물들을 건사하고 사용한다.

-‘마당넓은집’은 고기 집이다. 정작 손님들은 서너 마디 건넨 후에야 고기 집이라고 말한다. 그 이전에는 모두 ‘나물이 아주 좋은 집’이라고 평한다.

-‘마당넓은집’은 소백산 한우만 고집한다. 함께 나온 나물 반찬들.

-각종 절임 음식들이 한상 가득하다.

-각종 장과 더불어 초절임, 삭힘 음식도 직접 만든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나물을 비빈 다음 주먹밥을 내놓는다. 이른바 나물 주먹밥이다.

나물이 맛있는 집 4곳

점봉산산나물

서초역-교대역 인근이다. 오래된 산나물 전문점이다. 강원도 산 산나물을 구해서 사용한다. 가게 한 구석에 말린 산나물이 가득하다. 산나물 비빔밥이 아주 좋다.

달래촌

정식 이름이 길다. ‘달래촌힐링캠프몸마음치유센터’. 강원도 양양군. 국도에서 한참을 외진 길로 들어가야 한다. 인근 산에서 주민들이 채취한 나물로 밥상을 차린다.

토지

인사동의 한식집. 제철에 맞는 각종 나물이 풍성하다. 고기나 생선류도 수준급. 지리산이나 여러 산지에서 가져오는 나물들을 정성을 들여 반찬으로 만든다.

걸구쟁이

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안성맞춤 산나물 전문점, 사찰음식 전문점이다. 한상 가득 각종 나물류가 차려진다. 특히 김부각은 아주 좋다. 산초장아찌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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