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계곡과 절터를 달리다

수안보에서 월악산을 에돌아 월악나루로 향하는 597번 도로를 달린다. 월악산을 휘감는 구름에 속도를 늦추고, 송계계곡의 물소리에 차를 세운다. 숲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느리고 비밀스럽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 안 되는 도로 끝은 적막함이 가득하다.

충주 597번 도로 드라이브는 동틀 무렵 출발하면 감동이 치솟는다. 수안보에서 출발해 월악산으로 방향을 잡으면 아늑한 숲길이 이어진다. 왼편으로는 북바위산, 오른쪽으로 조령이다. 깊은 숲을 가르는 길은 이른 아침 청량한 기운이 가득하다. 차창을 열면 바람이 코를 감싸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된다.

석굴사원터 미륵리사지

597번 지방도 드라이브길은 고즈넉한 유적과 옛길에 얽힌 전설이 있어 더욱 운치 있다. 지릅재 출발점을 넘어서면 미륵리사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려초기 석굴사원터인 미륵리사지는 오랫동안 폐사지로 알려졌지만 석불입상, 석탑, 석등 등 옛 석굴사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보물 96호인 석불입상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이다. 신라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서러워하여 이곳까지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5층 석탑 역시 보물로 지정돼 있다. 미륵리사지에서 발걸음을 옮기면 충북과 경북을 잇는 고갯길인 하늘재 옛길과 연결된다. 신라 마의태자, 고구려 궁예, 고려 공민왕의 흔적이 깃든 하늘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옛길로 명승 제49호로도 지정돼 있다.

597번 도로는 숲길과 함께 계곡이 이어져 청량함을 더한다. 미륵사지 인근에는 송계계곡의 지류인 만수계곡이 먼저 아기자기한 자태를 뽐낸다. 골짜기에 형성된 계곡은 만수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들머리와 연결되며, 초입 자연학습장과 오솔길은 가족들 산책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이곳에 차를 잠시 세우고 짧은 계곡 트레킹을 즐겨도 좋다.

화강암 반석의 송계계곡

본류인 송계계곡은 드라이브길의 튼실한 벗이 되는 계곡이다. 규모와 길, 사연도 제법 웅대하다. 계곡에는 일명 너럭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 최고의 계곡이라는 명성답게 송계계곡은 학소대, 월광폭포, 망폭대, 와룡대, 팔랑소 등 송계팔경을 품고 있다.

학소대와 와룡대에는 한 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살았으며,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송계팔경의 최고명소 중 한 곳인 팔랑소는 드넓은 화강암 반석위에 계곡이 흐르는 절경을 만들어낸다. 물이 맑아 옛날 하늘나라 공주도 내려와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송계계곡 드라이브는 충주호를 만나며 마무리된다. 은밀한 숲과 계곡에서 벗어나면 597번 도로는 충주호와 연결된다. 이곳 월악나루터부터는 탁 트인 호반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조각난 호수의 여러 단면들이 출몰하는 또 다른 세상의 길들이다.

597번 도로 드라이브는 수안보에서 시작해도 좋고, 월악나루터를 기점으로 역순으로 출발해도 좋다. 어느 방향을 선택하든 먹을거리 풍족한 수안보에서 배를 채운다. 수안보에서 동틀 때 출발했다면 올갱이국이 제격이다. 올갱이 해장국집들은 아침 일찍 손님을 맞는다. 남한강에서 직접 캐오는 올갱이는 된장과 어우러져 숙취를 삭히는 담백한 맛을 낸다.

글ㆍ사진=서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 IC에서 빠져나온다. 추점삼거리와 수안보온천을 지나면 597번 도로로 이어진다. 충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미륵리사지를 거쳐 수안보까지 향하는 버스도 운행한다.

▲음식=수안보 일대는 올갱이 해장국 외에도 꿩고기로 유명하다. 수안보에서 하룻밤 묵을 요량이라면 이곳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들었다는 손두부에 동동주를 곁들이는 것도 운치 있다.

▲숙소=수안보 일대에 온천을 겸비한 숙소들이 밀집해 있다. 수안보대림호텔, 수안보온천랜드, 조선관광호텔 등이 묵을 만하다. 여행의 피로를 온천에서의 하룻밤으로 피로를 풀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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