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이 찾는 성스러운 산

일본 야마가타현의 갓산은 데와삼산의 최고봉(1984m)을 간직한 곳이다. 일본 산악 신앙의 사연이 서린 데와삼산은 갓산 외에 유도노산, 하구로산 등 3개의 산으로 이뤄져 있다. 인간사의 과거, 미래, 현재를 상징하는 봉우리들은 순례자들이 찾는 성스러운 산들로 명성 높다. 갓산 얘기를 꺼내면 나이 지긋한 현지 주민들은 숙연한 몸가짐으로 목소리를 낮춘다.

데와삼산 중 갓산은 과거를 상징한다. 죽은 자들을 다독이는 의미가 담겼다. 순례 기간에는 나무 지팡이에 게다(나무신발), 밀짚모자를 쓴 순례자들이 등산로에서 서성거린다. 산행에 동행한 산악가이드는 “안개속의 등산객들이 망자를 닮지 않았느냐”며 농담을 건넨다.

갓산은 세인들에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산이 아니다. 11월이 시작되면 눈이 내리고, 그 눈이 겨우내 5m 가까이 쌓인다. 갓산이 속한 야마가타현 일대는 일본에서도 가장 눈이 많은 곳이다. 갓산으로 향하는 길이 닫히면 11월부터 3월까지는 입산이 제한된다. 갓산 초입의 스키장은 폭설을 피해 4월에야 비로소 문을 연다. 4월부터 7월까지, 일본에서 독특하게 여름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이 갓산지대다.

이색 여름스키와 시즈온천장

갓산 초입에는 시즈온천이 자리했다. 야마가타현에 다채로운 온천이 많지만 이곳 온천장이 정겹다. 열개 남짓 객실이 있는 산골 온천장의 저녁은 오붓하다. 주인장이 내놓는 가정식 백반의 상차림은 일본 다른 곳에서 맛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야마가타현은 일본에서는 쌀이 맛있기로 소문난 곳. ‘츠야히메’ 쌀은 윤기가 흐르며 감칠맛이 난다. 정갈한 반찬에 갓산맥주 한잔 기울이면 산기슭의 고요한 가을밤이 무르익는다.

시즈온천에서는 갓산의 산세를 음미하며 천연온천욕을 즐겨 본다. 앙증맞은 온천장 공중탕은 하루에 두 차례 남탕, 여탕의 위치가 바뀐다. 온천수의 기운과 효능을 위해서다. 모락모락 흐르는 온천수는 겨울이면 지붕 높이로 쌓이는 눈을 녹이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갓산에서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시기는 8월부터 10월 사이다. 그 짧은 기간에 봄, 여름, 가을이 스쳐 지난다. 여름 스키의 교통수단이었던 우바가다테행 리프트는 갓산을 이어주는 지름길 역할을 한다. 리프트에서 내리면 마주하는 나무기둥에는 월산(月山), 갓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산책의 계단길, 하구로산 삼나무숲

갓산 산행은 목책을 따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곳 식생을 보호하기 위해 이어진 목책은 산행의 또 다른 이정표다. 산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6시간 남짓. 갓산에서 즐기는 단풍은 수려한 가을나무의 것이 아니다. 해발 고지대의 낮은 관목들이 바닥을 수놓으며 붉게 변신 한다. 구름 속, 안개 속의 갓산은 가끔씩 햇살이 깃들면 감탄의 장면을 선사하며 발길을 붙잡는다.

정상에는 갓산 산장과, 아담한 신사가 있다. 산장 난로가에서 도란도란 나누는 얘기는 악천후 산행의 무용담으로 채워진다. 신사의 모습은 단출해도 순례자들에게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맑은 날에는 갓산 정상에서 동해 바다까지 내려다 보인다. 하산길의 미타가하라 습지대는 산행의 방점을 찍으며 감동에 여운을 남긴다.

갓산 산행이 벅차면 데와삼산의 하구로산으로 다가설 일이다. 하구로산은 500여년 세월의 삼나무숲이 인상 깊다. 낮은 정상(414m)을 향해 오르는 2446개 계단길은 미슐랭 그린 가이드에 별 3개로 이름을 올렸다. 아름드리 삼나무 숲속을 거닐면 국보로 지정된 14세기 고주노토 5층 목탑과 수제 인절미를 내어주는 찻집이 숨을 고르게 한다. 정상에는 데와삼산을 기리는 고풍스러운 신사가 깊은 가을휴식을 선사한다. 하구로산 삼나무길은 ‘아름다운 숲길’로도 수차례 선정된 꼭 가볼만한 산책로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한국에서 직항편이 오가는 센다이 공항을 경유해 야마가타현으로 이동한다. 쇼나이 공항까지 전세기편이 운행되기도 한다.

▲음식=야마가타현 일대는 메밀국수(소바)가 명성 높다. 토란과 쇠고기를 넣어 끓인 이모니나베(토란탕) 역시 지역 명물이다. 갓산 일대에서는 갓산맥주와 갓산와인도 별미다.

▲숙소=갓산 초입 시즈온천 일대에 숙소가 여럿 있다. 시즈온천의 ‘마이즈루야’ 온천장에서 오붓한 하룻밤과 정갈한 식사를 맛볼수 있다. 하구로산 입구에는 ‘큐카무라 하구로’ 리조트가 가족방문객들이 묵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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