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능선따라 푸근한 가을 산행

무등산은 빛고을 광주를 품에 안은 산이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무등산 억새 산행은 푸근함을 더하며, 도심으로 이어지는 골목 산책은 빛고을의 추억을 다독여준다.

무등산의 ‘무등(無等)’에는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규모보다는 풍기는 느낌에서 ‘무등’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를 껴안은 1000m대 높이의 산은 무등산이 유일하다. 스물 한번째로 국립공원에 이름을 올린 무등산은 가을이면 어머니 가슴처럼 따사로운 능선에 억새가 핀다.

무등산 산행은 오르는 길, 고개, 능선따라 다채롭다. 가장 일반적인 출발 포인트는 두 곳. 증심사 입구에서 시작해 중머리재, 장불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와 원효사 지구 원효 분소에서 출발해 서석대에 오른뒤 장불재를 돌아오는 코스다. 중머리재, 장불재 코스는 사찰, 미술관 등 산행 초입에 볼거리들이 곁들여져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한다.

중머리재, 장불재의 억새 향연

무등산 초입의 증심사는 광주광역시의 당당한 ‘문화재 1호’다. 신라 헌안왕때 창건했으며 서민의 얼굴이 담긴 보물 비로자나불 좌상을 간직하고 있다. 증심사 계곡의 의재미술관은 자연친화적 미술관을 표방하는 곳으로 의재 허백련 선생의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증심교 일대에는 보리밥 식당들도 늘어서 있다. 무등산 보리밥 정식은 맛 보기 전, 눈부터 호강을 한다. 10여가지 산나물 외에 돼지머리고기, 도토리묵 등이 한상 푸짐하게 식탁위에 오른다. 그릇마다 남도의 인심이 가득 담겨 있다.

증심교에서 출발해 당산나무 숲길을 거쳐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면 시야가 탁 트이는 너른 공간이 드러난다. 해발 617m인 중머리재에만 올라서도 작은 능선들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중머리재는 본격적으로 억새향연이 모습을 드러내는 포인트다. 정상등반의 마지막 쉼터인 장불재에서 백마능선으로 길을 잡으면 완만한 곡선을 따라 억새숲 사이를 가로지를 수 있다. 장불재에서 바라보는 입석대, 서석대 등 1000m 높이의 주상절리대는 천연기념물(465호)로 지정돼 있다. 주상절리대는 흐린 날이면 구름에 휩싸여 귀한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산행의 여운 잇는 양림동 골목

서석대 넘어 원효 분소까지는 무등산 옛길이 단장돼 있다. 무등산 국립공원 탐방센터에서 꼭 걸어보기를 추천하는 길로 숲길 코스 외에 능선 코스를 선택해 하산할 수 있다. 이 곳 숲길은 대낮에도 어둠이 드리울 정도로 울창하다. 원효 분소 초입에는 무등산 정상 높이와 같은 1187번 버스가 다녀 여운을 남긴다.

산행의 감동은 도심 골목 산책으로 수려하게 이어진다. 양림동 오거리 일대는 양림교회 등 근대문화유적과 카페거리가 조성돼 있다. 시간의 보물상자를 열 듯 잘 보존된 전통가옥과 선교사들의 사택이 있는 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운치 넘친다. 이 길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가을의 기도>를 쓴 시인 김현승의 흔적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낮은 담장에 불 밝힌 골목길 노천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은 문향을 부추긴다.

앙증맞은 장식과 벽화로 채워진 양림동 펭귄마을에는 옛 골목의 정서가 숨어들었다. 추억의 생활소품들이 골목을 단장한 이색 골목에는 주말이면 골목길 플리마켓이 열려 가을 오후를 풍성하게 채워준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광주송정역까지 KTX가 수시로 오간다. 서울 용산역에서 약 1시간 50분 소요. 무등산 초입까지는 지하철 이동뒤 버스 환승이 편리하다.

▲음식=광주 송정동 일대는 떡갈비 골목으로 유명하다. 떡갈비는 갈빗살에 양념을 재워 숙성시킨 후 숯불에 구워내는데 달짝지근하기 보다는 담백한 맛을 내는게 포인트다.

▲기타정보=KTX 이동이라면 광주송정역시장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1913년에 형성돼 104년 전통을 자랑하는 송정역시장은 청년들의 상점과 시장사람들의 점포 60여개가 어깨를 맞댄 보행자 거리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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