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가 빚어낸 최고의 보양식

굴에 대한 ‘미각의 추억’은 야릇하다. 카사노바가 즐겨 먹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힘’이 느껴지고 때로는 군침 가득, 입안에서 먼저 신호가 오기도 한다. 보령 천북 굴은 겨울 바다가 빚어낸 최고 보양식의 반열에 올라 있다.

서해안 최대의 굴산지인 천수만 일대는 굴이 제 맛을 내는 12월을 기점으로 미식가들이 몰려든다. 천수만은 보령 천북면, 서산 간월도, 태안 안면도, 홍성 남당리 등 4개의 시,군이 타원으로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갯바위에서 굴을 따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살가운 곳이다.

천수만과 맞닿은 천북면 장은리 굴마을은 찬바람만 불면 북적거린다. 장은리 포구 앞에는 90여개의 굴 전문점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서는 굴구이의 명성이 높다. 살이 통통 오른 석화(굴)를 조개구이하듯 석쇠에 통째로 올려 굽는 굴구이는 예전에 뱃사람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배위 화로에서 구워먹던 것이 유래가 됐다. 홍성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장은리 포구 안쪽 끝에 포장마차 굴구이 집이 몇 채 있었을 뿐이었다. 굴마을로 이름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밀려온 것은 20여년을 넘어섰다.

85% 자랐을 때 가장 달콤

갯바위의 꽃 ‘석화’로 불리는 천북 굴은 밀물과 썰물이 빚어낸 결정체이다. 만조때 물을 빨아들여 영양분을 섭취하고 간조때 햇볕을 쬐면 성장은 늦어도 맛은 깊게 밴다. 굴구이 집에서 바구니 가득 내놓는 굴중 덩치가 큰 놈들은 대부분 양식굴이다. 굴은 85% 자랐을 때가 가장 맛있고 달콤하다.

천북에서는 굴구이 외에도 굴에 콩나물을 넣고 간장에 비벼먹는 굴밥과 칼칼한 국물이 입맛을 돋우는 굴칼국수, 식초 고춧가루 오이와 곁들여 먹는 굴물회 등이 인기가 높다.

천수만 굴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다. 보령 천북에서 북쪽으로 20분 달리면 서산 간월도다. 잘잘한 간월도 굴은 ‘밥도둑’ 어리굴젓으로 명함을 내민다. 천북 굴이 석화밭에서 주로 양식으로 재배된다면 간월도 굴은 뻘바위에서 직접 따 낸다. 이곳 어리굴젓은 옛날 임금님께 진상하기도 했는데 굴을 따서 보름간 발효한 뒤 고춧가루를 섞으면 얼얼한 어리굴젓이 완성된다. 어리굴젓 못지않게 간월도에서도 명성 높은게 굴밥이다.

어리굴젓, 새조개도 별미

흥미로운 것은 천북과 간월도의 굴밥이 다르다는 점이다. 천북 굴밥은 굴에 콩나물을 넣고 간장에 비벼 시원하게 맛을 내는 데 반해 간월도 영양굴밥은 밤, 대추 등 견과류가 풍성하게 들어간다. 일부 식당들은 간월도와 천북의 장점을 적절하게 응용해 퓨전굴밥을 내어 놓기도 한다. 간월도 굴이 잘잘한 까닭에 남해 통영에서 올라온 굴을 쓰는 굴밥집들도 있다는 것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천수만 일대에서는 굴과 함께 새조개가 ‘겨울 진미’로 통한다. 새조개는 속살이 새의 부리처럼 비죽하게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꼭 갓난 새의 새끼를 닮았을 뿐 아니라 바다에서 새처럼 몰려다녀 새조개로 불리기도 한다. 간월도와 인근 남당포구에서 새조개를 맛 볼수 있는 데 쑥갓, 마늘, 미나리를 넣어 샤브샤브로 먹은 뒤 남은 국물에 라면을 끓여 먹는 맛이 또 일품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간월암의 낙조 감상을 놓칠수 없다. 겨울이 깊어지면 간월암 너머 바다와 일몰, 석양, 월출이 붉은빛 조화를 이루며 풍류를 더한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장은리 굴마을은 서해안 고속도로 광천IC에서 빠져나와 천북~홍성방조제 방향으로 향하면 닿는다. 굴마을에서는 40번 국도와 96번 지방도를 경유하면 남당항을 거쳐 간월도로 이어진다.

▲먹을 곳=천북 굴구이는 장은리 일대의 굴 식당에서 직접 구워먹어야 제맛이다. 겨울 주말이면 굴 도매상을 겸하는 ‘천북수산’, ‘섬마을’ 등 다수의 굴집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묵을 곳=천북에서 북쪽으로 연결되는 간월암, 천수만 일대에 다수의 펜션들이 있다. 안면도로 들어서 안면도자연휴양림에서 묵는 것도 바다향, 솔향 가득한 호젓한 하룻밤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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