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진’에서 맞는 일출과 사색

장흥 남포마을로 가는 길, 남도의 포구를 찾아가는데 작은 산들이 굽이굽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밤늦은 시간 남포마을에 닿는 길은 그렇듯 생경하다. 지방도를 따라 야트막한 산자락을 돌면 산줄기가 끝나는 곳에 어슴푸레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와 인접한 아담한 남포마을 포구는 영화 '축제'의 촬영지였다. ‘축제’는 장흥 출신의 작가 고 이청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해 오랫동안 회자되고 화제가 됐다. 남포마을과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들어서 있는 무인도인 소등섬 역시 영화속에 단골로 등장했다. 영화 제작진들은 이곳 민박집에 오랫동안 머물며 축제(전통 장례식)의 현장을 생생하게 스크린에 담았다. 해변에는 영화 '축제'의 촬영지라는 영화비가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어 감회를 돕는다.

영화 ‘축제’의 배경이 된 포구

남포는 득량만 바다를 아늑하게 안고 있는 갯마을이다, 안개 자욱한 바다 멀리로는 고흥군의 거금도, 금당도, 소록도 등이 손에 잡힐듯 아련히 늘어서 있다. 영화 이전에 남포는 외지인들에게 석화(굴)와 바지락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겨울이면 석화구이를 맛보려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의 여운이 스러진 뒤로는 요즘은 일출을 보기 위해 이곳 남포마을을 찾는다.

"굳이 쌀쌀한데 바깥에 나갈 필요 없어라우. 방안에서도 다 보이는디."

주민들 말 그대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인도인 소등섬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남해에서 맞는 일출은 동해에서 경험하는 해돋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동해 일출이 장엄하다면 남해의 일출은 소박하고 단아하다. 방안 창문에 머리를 빼꼼이 내민 채 맞는 일출은 좀 더 오붓하다. 소등섬 위로 해가 치솟는 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겨울이 좋지만 다른 계절에 남포를 찾아도 해돋이의 단아함은 빠지지 않는다.

전설 서린 소등섬에서의 해돋이

남포마을 일대는 최근 정남진으로 그 가치가 인정된 후 더욱 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광화문의 정남쪽이라는 의미의 정남진을 알리는 비석은 영화 축제비와 나란히 들어서 있다.

일출 감상 뒤 날이 밝으면 소등섬까지 직접 걸어서 다가설 수 있다. 물이 빠지면 하루 두차례 소등섬을 연결하는 길이 열린다. 외롭게 선 소나무들이 자라는 소등섬은 소의 등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섬은 '작은 불빛'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실제로 소등섬은 뱃사람들에게 예전 등대와 같은 길잡이의 구실을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 소등섬은 정월보름이면 당할머니 제사를 지내는 신령스런 섬이기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한 백발 노파가 꿈에 나타나 소등섬에서 제사를 지내면 마을과 고기잡이가 평안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했다고 한다. 소등섬 노파의 전설이 담긴 남포마을에서 할머니의 장례를 소재로 다룬 영화 '축제'가 촬영된 것은 묘한 인연이기도 하다.

남포마을 구경을 마쳤으면 장흥읍내 탐진강변의 토요시장에서 배를 두둑하게 채워볼 일이다. 매 2,7일과 토, 일요일 장이 서는 토요시장은 곰탕집이 명성을 떨칠 정도로 한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특산물인 한우, 키조개, 표고버섯을 함께 먹는 삼합 요리도 색다른 맛을 자랑한다. 또 시장 한편에 다문화 전통거리가 들어서 외지인이 판매하는 태국, 필리핀 음식 등을 직접 맛보는 따뜻한 시간도 마련된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화순이나 강진을 거쳐 장흥읍내로 들어선뒤 18번, 77번 국도를 경유하면 남포마을에 닿는다. 장흥읍내에서 용산면 상발리행 군내버스 이용해 남포마을에 하차할 수 있다.

▲음식=장흥에서는 키조개, 한우, 표고버섯 등으로 이뤄진 삼합요리가 인기 높다. 겨울 시즌이면 석화구이 역시 흔하게 먹을 수 있다. 토요시장에는 한우식당 거리가 형성돼 있으며 낙지 등 해산물도 푸짐하게 맛볼 수 있다.

▲기타정보=남포 마을에서 민박이 가능하며 읍내에도 깔끔한 모텔들이 다수 있다. 억불산 기슭의 우드랜드는 편백나무 숲을 거니는 숲체험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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