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이 없던 무지 외반증이 갑자기 생겼다고?

정형외과 족부전문의인 필자가 무지 외반증을 치료한지도 10여년이 넘었다. 그 중에서 매우 독특하게 필자의 기억에 남는 환자가 한 사람 있다. 무지 외반증으로 필자를 찾아오는 여자환자는 대부분 4~50 대 중년 여성들인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22살의 매우 젊은 여성이 진료실로 다리를 절면서 들어왔다. "선생님, 제가 원래 7살 때 부터 무지 외반증이 심했거든요. 근데 증상이 없었어요 물론 아프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최근 4-5개월 전부터는 많이 아파요. 진통제를 먹고 지냈는데도 이제는 제대로 걷기도 힘드네요."

필자의 경험으로는 무지 외반증 수술을 원해서 오는 환자 중 20대 환자는 매우 드문 게 현실. 환자들이 20대인 경우엔 보통 미용 목적으로 수술을 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미용목적으로는 수술을 권하지 않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환자가 정말로 통증이 심한 것일까 아니면 미용목적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 약간의 엄살을 부리는 것인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꼬치꼬치 물어봤다.

"최근에 무슨 일을 하고나서 부터 많이 아픈가요? 혹시 안하던 운동을 시작했거나 아니면 회사에 새로 입사했나요? " 필자의 질문에 환자는 "맞아요. 최근 회사에 새로 입사했는데 일이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이에요. 게다가 최근엔 살 빼려고 안하던 2만보 걷기 운동도 시작했어요." 환자의 대답을 듣고 필자가 말했다. " 그럼 그렇겠지요. 갑자기 안하던 운동을 하거나, 오래 서있게 되면 무지 외반증 증상이 일시적으로 심해질 수 있어요."

필자와 환자의 대화는 예상보다 길게 지속됐다. 그 환자는 의사인 필자에게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환자가 말했다." 근데 아파서 운동도 쉬고 일도 쉬고 있는데도 점점 더 아파요. 엄지를 딛지를 못할 정도로 아파요" 이 때 필자의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 ‘이상한 걸. 쉬고 있는데도 아프다고?’ 그래서 환자의 발을 진찰했다. 무지외반증도 중등(中等)도 이상 심했지만, 엄지가 튀어나온 곳 보다는 엄지 바닥부분으로 압통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또한 엄지발가락을 좌우 위아래로 움직일 때도 통증이 심하였다. 꾀병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전형적인 무지외반증의 압통자리와 통증의 양상이 좀 다르다면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상황.

하나는 엄지발가락 바닥 아래쪽에 존재하는 종자뼈의 스트레스 골절, 또 다른 하나는 제1 중족골 바닥부분의 관절연골 손상이었다. 기존에 증상이 없는 무지 외반 환자가 갑자기 통증을 많이 호소할 때 족부전문의인 필자 경험으로 생각해 봐야할 두 가지였다. 둘 모두 엑스레이로는 발견할 수 없는 진단이라서 서둘러 MRI 촬영을 했다. MRI 상 무지외반증 때 보이는 일반적인 소견들이 보이고 있었다. 아울러 제1 중족골 관절 전체에 삼출액이 가득하고, 제1 중족골두 바닥부분의 연골이 세로 방향으로 벗겨진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게다가 조그만 제1 중족골두에 골낭종까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하 통증이 이것 때문에 많이 심해졌군요. 원래 심한 무지 외반 변형인데, 최근에 무리하면서 제 1 중족골두의 바닥부분 연골이 손상되었어요. 거기다가 뼛속으로 골낭종까지 만들어졌네요. 이 병변은 추후에도 증상을 지속적으로 일으키기 때문에 바로 수술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필자의 말에 그 20대 여자환자는 무지 외반 교정수술 뿐만 아니라 낭종 절제술 및 연골 미세천공술도 하게 되었고, 한동안 목발을 짚고 재활을 했다. 재활이 좀 오래 걸리긴 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나고 1년이 지난 지금은 회사도 잘 다니고 아프지도 않다며 필자를 찾아와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갔다.

우리나라의 무지외반증 환자는 약 4-5년 전부터 점진적으로 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이제 발(足)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신경을 쓰고 치료를 할 만큼의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방증일 수 있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무지 외반 변형이 있는 환자라고 해서 모두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변형이 있는 환자의 약 4~50% 정도가 통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무지외반증 환자들은 대개 엄지 안쪽으로 튀어나온 부위가 신발과 심한 마찰을 일으키면서 염증과 통증이 오는 경우가 가장 많다. 하지만 드물게는 증상이 없던 무지 외반 환자들이 갑자기 극심하게 아픈 원인 중 하나로 필자는 관절 연골 손상을 꼽는다.(이는 아직 족부 학회나 족부 교과서에 자세하게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다.) 무지 외반 변형이 오래 지속되면, 제 1 중족골의 회내 변형 (몸 안쪽으로 회전하는 변형) 이 일어나는데, 특히 이때 엄지 발가락 바닥쪽 연골에 스트레스가 집중된다.하지 않던 운동 (마라톤, 장거리 조깅, 하루 종일 서있기 등등)을 하다가 아파지는 경우가 많은데, 쉬면서 좋아진다면 큰 문제는 없지만 쉬고 있어도 지속적으로 아프다면 다른 문제가 추가됐을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연골병변이 발생하게 되면 관절 활액막에 전체적으로 염증 반응이 발생되어 심한 증상을 일으킨다. 심한 환자는 제1 중족골두에 골낭종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치료는 일반 무지외반증 교정하듯이 일단 교정을 확실히 하고 관절 연골 병변에 대한 치료를 해야 한다. 연골 병변이 매우 작다면 무지 외반 교정만으로 충분하지만 연골병변의 면적이 크다면 수술 후 약 6주간 비체중 부하를 시키고 미세천공술이나 골낭종에 대한 수술을 같이 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무지외반증이라고 해서 다 같은 무지외반증은 아니다. 환자들이 불편해하는 위치도 각양각색이다. 특히 평소 증상이 없는 무지 외반 변형을 가진 분들이 갑자기 극심하게 아파진다면 족부 전문의의 상담과 검사를 통해 원인을 빨리 찾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달려라병원 장종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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