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원(金元)시대는 중국의 전 역사상으로 보아도 잘 먹고 잘 살던 시기였다. 항산이후항심(恒産以後恒心)이라고 먹고 살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덩달아 삶이 윤택해져서 나라가 안정이 되고 학문이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에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한의학에 4명의 걸출한 대가가 출현한다. 장종정(張從正)의 공하파(攻下派), 유완소(劉完素)의 한량파(寒凉派), 이고(李呆)의 보토파(補土派), 주진형(朱震亨)의 자음파(滋陰派)가 그들이다.

그 이후 한의학은 이들 대가들의 이론을 정교화하거나 아니면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는 쪽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지닌다. 그 중에 한명이 명(明)나라 때 이름을 떨친 장개빈(張介賓)이다. 장개빈은 초기에는 ‘상화론(相火論), 양유여음부족(陽有餘陰不足)’을 주장하면서 상화로 인해 양(陽)은 부족하지 않고 항상 남는 반면, 음(陰)은 항상 부족하니 자음(滋陰)해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한 주진형의 자음파(滋陰派)학설을 따랐다. 하지만 임상을 해 가면서 자음(滋陰)뿐 아니라 양기도 부족한 경우를 많이 경험해서 보양(補陽)도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온보파(溫補派)를 창시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아가 다른 학파들이 성질이 찬 약으로 몸을 차게 하거나, 토(吐)하게 하거나 설사시켜서 원기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장개빈의 저서인 경악전서(景岳全書)를 보면 한의학 이론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편집했을 뿐 아니라 각각의 개념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 놓았다. 또한 처방을 쓰는데 있어 8가지로 대분류해서 팔진(八陣)을 세웠다. 보진(補陣)에는 인체의 기혈음양을 보(補)하는 모든 처방을 수록해 놓았으며, 한진(寒陣)은 열을 꺼트리는 처방들을 군대(軍隊)의 진(陣)처럼 벌여 놓았고, 열진(熱陣)은 열(熱)을 북돋우는 처방들을 모아 놓았다.

과거에 기술된 한의서적에는 유난히 전투를 상징하는 언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결국 인체라는 거대한 영양덩어리를 놓고 정기(正氣)와 사기(邪氣)가 한판 붙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이 의서에도 진(陣)이란 말이 나온다. 진(陣)이란 군대의 본진(本陣) 혹은 진법(陣法)에 해당되며 우리 몸을 침범한 사기(邪氣)를 내모는 군대의 잘 갖춰진 진용이란 뜻으로 보면 된다. 경악전서의 군약(君藥)의 처방용량이 만만치가 않다는 특징이 있다. 보진(補陣)의 대표처방인 대보원전(大補元煎)에는 한 첩에 숙지황이 2-3전(錢)에서 많게는 20-30전(錢)까지 임의로 한의사가 판단해서 쓰도록 구성되어 있다.

요즘 한의원에서 쓰는 처방들은 20첩 기준으로 대개 300전(1.2Kg)에서 500전(1.9Kg)정도 되는 것에 비해서 숙지황을 1첩에 30전을 쓰면 이것으로도 1제 20첩으로는 벌써 600전(2.3Kg)이 될 정도다. 보통의 한의사들은 숙지황을 1첩에 30전 정도 쓰면 소화에 장애를 주기 때문에 다른 한약을 부수로 첨가해야 되는 문제 때문에 섣불리 쓰지 못하지만 경악전서에 능통한 한의사들은 많은 양의 군약(君藥)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고 효과도 좋게 나오는 편이다.

오늘 소개할 한약은 여정자(女貞子)다. 이름이 사람이름처럼 묘하다. '한의학고전DB'로 검색해보면 여정자는 동의보감에는 등장하지 않고 경악전서의 보진(補陣)에 3번 정도 나오는 정도로 쓰임새가 많은 한약은 아니다. 목서과(木犀科) 즉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제주광나무’의 성숙한 과실이다. 제주광나무는 겨울에도 독야청청하게 푸르러서 동청(冬靑)나무라고도 부르고 그 때문에 여정자를 동청자(冬靑子)로 부른다. 성질은 서늘하고 맛은 달면서 쓰다.(凉甘苦) 간경과 신경으로 약효를 나타낸다. 간신(肝腎)의 음혈(陰血)을 보해서 안구건조증에 특효를 나타낸다. 그 외는 그 닥 쓰임새가 없었으나 최근 버럭 화를 잘 내고 짜증을 부쩍 많이 내는 태음인에게 태음인 상황보음탕로 효과를 보았다는 임상례가 여기저기서 올라오고 있다. 그 처방의 핵심이 여정자(女貞子)다.

여정자(女貞子)는 날걸로 쓰면 간열을 사(瀉)하고 술에 쪄서 쓰면 보음(補陰)한다. 특히 술에 찔 때도 밀막걸리로 쪄야 효과가 배가된다. 그리고 용량도 12g을 쓰면 별로지만 16g으로 높이면 잘 듣는다. 배불뚝이에다가 겁도 많고 덩치는 산만한 사람이 짜증이 늘었다면 한번 써 보길 권한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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