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 끝자락에서 배웅하는 한해

태안 만대항은 태안반도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호젓한 포구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시작하는 상념에 젖기에는 솔향기길과 낙조가 어우러진 만대항 일대가 넉넉하다.

만대마을 사람들이 회고하는 포구의 과거는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낸다. 만대까지 버스도 다니지 않았던 시절, 포구는 겨울이면 눈밭길을 서너시간 걸어서 닿아야 했던 외딴 곳이었다. 대신 인천까지 배가 오가던 때가 있었고, 급한 용무는 가로림만 건너 서산으로 고깃배를 띄웠다. 요즘도 서산 인부들이 점심으로 매운탕 한 그릇을 먹고 가는 일이 다반사라며 식당 주인들은 전한다.

만대항은 태안 솔향기길 1코스의 출발점이다. 솔향기길은 태안반도의 세월과 절경을 간직한 채 유유히 이어진다. 바닷가 비탈 위로 연결된 태안반도의 끝 길을 걸으며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체험은 색다르다. 반도 서쪽으로 내려서는 솔향기길 1코스의 저녁노을 트레킹은 ‘명품’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 길은 위안의 길이고, 사색의 시간 길이다.

낙조를 머금은 솔향기길

만대항을 기점으로 태안반도의 끝자락에는 상념을 부추기는 조연들이 길목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삼형제바위, 새막금쉼터, 당봉전망대 등은 만대마을을 에워싸고 절경을 만들어낸다. 삼형제 바위는 일출을 맞기에 좋으며, 해넘이는 새막금쉼터 인근이 최적의 포인트다.

만대항에서 시작된 솔향기길 1코스는 남쪽 꾸지나무골 해변까지 약 10km 이어진다. 오르막길을 거스르고 굴바위를 지나며 자갈해변을 걷는 3시간 30분의 여정이다. 길 곳곳은 마을, 바닷가, 펜션 등으로 연결되며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한다. 썰물 때 몸을 드러낸 바위에는 자연산 굴이 다닥다닥 치열하게 붙었다. 굴 한 줌이면 저녁 밥상은 훌륭하게 채워진다.

길목에서 만나는 용난굴, 와송, 꾸지나무골 등은 저마다의 사연을 전한다. 용난굴은 바다와 맞닿은 동굴이다. 제법 커다란 동굴 안에 들어서면 두개의 동굴 길로 나뉘는데 두 마리 용의 승천과 망부석에 관한 전설이 담겨 있다. 용난굴 가는길의 와송은 밀물때면 누워 있는 소나무가 잠기는 독특한 형세를 지녔다. 솔향기길 1코스의 종착점이자 태안반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수욕장이 꾸지나무골 해변이다. 뽕잎의 대용인 꾸지나무잎으로 누에를 치던 곳이 지금은 송림을 병풍삼은 해변이 됐다.

당봉전망대에서 새해맞이

만대마을에서 하룻밤을 청한다면 당봉 전망대에 올라 반도의 동쪽 바다에서 펼쳐지는 태양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매년 1월 1일이면 당봉전망대에서는 새해맞이 행사도 열린다. 마을주민을 중심으로 떡국을 나눠먹는 소소한 잔치가 곁들여진다.

솔향기길이 생기면서 만대항의 풍경은 제법 바뀌었다. 유명 편의점과 커피 전문점이 들어섰고 주말 낮이면 걷기 여행자들이 단체로 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순간의 들썩임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만대항은 다시 예전 고요했던 포구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정적만 남은 해질무렵의 만대항은 한갓지고 여유롭다. 만대항 아래로는 겨울 휴지기에 들어간 만대염전이 가로림만의 바다처럼 어깨를 낮게 들썩이며 늘어서 있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에서 빠져나와 태안읍, 원북을 경유해 북쪽 끝으로 향하면 만대항이다. 서울에서 태안까지 시외버스가 오가며 태안터미널에서 만대까지 군내버스가 다닌다.

▲음식, 숙소=원북, 이원 일대의 박속밀국낙지는 통째로 넣은 낙지와 박이 어우러진 시원한 육수에 칼국수, 수제비를 넣어 먹는 맛이 독특하다. 만대항 횟집들에서는 우럭, 노래미, 농어 등을 넉넉하게 내놓는다. 만대항 가는길 곳곳에 호젓한 펜션들이 여럿 있다.

▲기타정보=만대항에서 되돌아오는 길은 원북을 거쳐 신두리 사구로 연결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바닷가 모래 언덕으로, 태안 8경 중 하나이자 천연기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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