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된, 공정한 ‘나만의 잣대’ 가져야…음식은 몸과 직결, 맛집 공부해야

맛집은 객관적이어야…맛집 음식은 식재료 살리고, 양념과 균형 갖춰야

식의 맛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아’

경희식당
한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는다.

수십 년 동안 다사다난(多事多難)하지 않았던 해는 없었다. 지난해는 각별했다.

‘음식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다사다난했고 앞으로도 다사다난할 것이다.

새해에도 음식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음식, 맛집, 식재료 등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심한 굴곡을 겪고 있다. 인터넷,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음식, 맛집 자료는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아졌다. 정보의 홍수다.

홍수 속에서 점심, 저녁 밥 한 그릇 편하게 먹을 가게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 풍요 속의 빈곤이다. 제대로 된 음식, ‘맛집 찾는 법’을 약소한 새해 선물로 선보인다.

암행어사의 유척(鍮尺)을 아십니까?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유척(鍮尺)을 가지고 다녔다. 오늘날의 자(尺)다. 유척에는 곡식의 양과 무게, 옷감의 길이와 넓이, 토지의 넓이, 악기, 제기 등을 재는 눈금을 새겼다. 시체검안이나 형구의 치수를 재는데도 유척을 사용했다.

암행어사의 필수품이 유척인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수령들이 엉터리 자로 농단을 했기 때문이다. 엉터리 자로 탐학하니 ‘정부 공인 잣대’가 필요했다.

걸구쟁이
맛집을 찾을 때도 ‘나만의 유척’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유척이 없으니 “맛있다” “양이 푸짐하다” “주인이나 종업원들이 친절하다” “인테리어가 예쁘다”는 말만 하는 것이다. 정작 음식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왔다” 혹은 “짜다, 싱겁다”는 주관적인 판단만 내린다. 짜서 좋은 음식도 있고, 싱거워야 하는 음식도 있다.

‘나만의 잣대’는 ‘공인(共認)’이자 ‘공인(公認)’이어야 한다. 설명하면 누구나 납득할 내용이나 자료가 있어야 한다. 정확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암행어사의 유척처럼, 누구나 공인한, 공정함이 있어야 한다.

“음식도 공부해야 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공부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식사의 상당 부분을 외부 식당에서 처리한다.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잦지 않다. 가정의 식사와 달리 외식업체, 식당의 ‘밥’은 어떤 재료, 어떤 조리기법으로 만드는지 알 도리가 없다. 무턱대고 믿을 수도 없다. 먹는 이가 공부해야 한다. 먹어보고 스스로의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 그 평가를 바탕으로 ‘밥 먹을 만한 집’을 찾아야 한다. ‘맛집’ ‘밥 먹을 집’을 찾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년)은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평론가다. 그는 “당신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다. 먹는 음식에 따라 사람은 달라진다. 음식은 우리 몸, 생명과 직접 연결돼 있다. 음식, 나만의 맛집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마당넓은집
맛이란 무엇인가?

맛집인가, 아닌가는 주관적이지 않다. 맛집은 객관적이다. “괜찮은 집, 맛집”이라 설명할 수 있고 그 설명이 객관적이어야 맛집이다.

맛은 무엇인가?

인간의 혀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그리고 감칠맛과 통각인 매운 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을 먹고 그 맛을 판단할 때 혀보다 더 큰 작용을 하는 것은 코다. 미각보다 후각이 더 예민하다는 주장도 있다. 감기가 걸리면 맛을 분간하지 못한다. 미각이 아니라 후각이 정지하기 때문이다.

혀, 코, 시각으로 우리는 맛을 평가한다. 치아로 음식을 씹을 때의 감각도 중요하다.

음식은 ‘식재료+양념’이다. 음식의 맛은 식재료의 맛 혹은 양념의 맛이다. 생선회를 초장에 찍어먹으면 ‘맛’은 초장의 맛이다. 간장에 적시면 간장의 맛이다. 생선의 맛은 맛보기 힘들다. 양념의 맛이다.

진정한 맛집은 1. 식재료, 2. 양념의 맛이 좋은 집이다. 양념은 식재료의 맛을 도와준다. 식재료와 양념의 균형 잡힌 맛이 좋은 맛이다. 주인공은 식재료다. 양념이 식재료를 앞서면 균형은 무너진다. 우리의 밥상이 무너진 이유다.

강원도 양양의 ‘’, 경기도 여주의 ‘’, 충청도 보은 속리산의 ‘’,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 네 집은 모두 산나물, 들나물, 버섯으로 이름난 맛집이다. 모두 음식 맛이 다르지만 맛집이다. 공통점? 나물의 맛을 제대로 살린다. 양념을 사용하지만 인공 화학조미료는 최대한 절제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 나물 고유의 맛을 해치기 때문이다.

달래촌
‘’은 4, 5월 이후에 가면 아주 좋다. 산에서 나물을 채취하여 자연 상태 그대로 내놓는다. 참두릅이나 개두릅, 머윗대 같은 흔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살아 있는 나물들이 제격이다. 양념하지 않고 삶거나 쪄서 혹은 날 것으로 내놓는다. 나물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쓴맛을 잃어버렸다. 음식에서 쓴맛이 나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씀바귀, 고들빼기 뿌리도 쓴맛이 나지 않는다. 달고 감칠맛이 난다. 다양한 맛을 수용하지 않으니 모든 나물 맛이 똑 같다.

‘’은 고기 집이지만 산나물로 유명하다. 봄철이 되기 전, 2-3월의 전호나물이나 자연산 명이나물, 여러 종류의 취나물, 눈개승마, 어수리, 오가피 순, 가죽나물 등이 밥상에 가득하다. 나물들을 조리하고 무치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나물의 맛과 향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는 출발부터 다른 음식점들과 다르다. 사찰음식 전문점이다. 고기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부각 류가 아주 좋다. 부각은 오래 전 채소 등을 보관하는 방식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별로 돋보이지 않지만 손은 아주 많이 간다. 제철을 지난 다음에도 나물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이다.

‘’은 70년 전, 창업주 고 남경희 할머니가 세운 음식점이다. 지금은 손자가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 생전의 음식 맛을 재현하지만, 손자 이두영 사장은 한술 더 보탰다. 할머니 시대와는 달리 냉동 기술이 발달했다. 산나물들을 냉동 보관한다. 상당수의 산나물, 들나물은 채취 당시의 향과 맛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잘못된 변화가 아니라 제대로 발전, 변화한 것이다.

천황식당
식재료의 맛을 살리는 고기 집과 비빔밥집도 있다

나물만 원래 맛을 살리는 맛집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고기 집과 비빔밥 집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전주의 비빔밥과 달리 진주비빔밥은 소박하지만 맛깔나다. 비빔밥의 상업화는 경남 진주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지금도 전국 최고(最古)의 노포 중 하나인 진주 ‘’. 100년의 업력을 가지고 있다. 시작은 진주 도성 내 나무시장이다. 이른 새벽, 진주 도성으로 땔감을 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무 시장 부근에 음식점을 열었다. 진주 ‘’의 시작이다.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고 음식도 발전한다. 오늘날의 진주 ‘’이다. 여전히 장을 직접 담그고 있다. 가게 뒤편 마당 장독대에는 장독들이 수북하다. 삶아서 꼭 짠 다음 나물을 무친다. 나물에 장이 배어들면 나물 맛이 한결 돋보인다. 식재료의 맛을 살린 것이다. ‘’을 비빔밥 맛집으로 치는 이유다.

함양집
울산의 ‘’도 마찬가지다. 80∼90년의 업력이다. ‘함양’은 지금의 함양군이다. 진주문화권이다. 의 비빔밥이 전복을 넣은 얼마쯤 화려한 비빔밥인 이유다. 나물을 사용하는 품새나 고기 국물을 주는 모양새도 진주비빔밥과 닮았다. 역시 비빔밥 맛집으로 여기는 이유다.

곰탕의 출발은 대갱(大羹)이다. 간장, 소금 간도 하지 않은 것. 고기 곤 국물이 바로 곰탕의 시작이다. 곰탕과 설렁탕은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다. 곰탕, 대갱은 고기 곤 국물로 역사가 깊다. 기록도 흔하다. 설렁탕은 정육(精肉)을 제외하고 뼈, 내장 등을 넣고 곤 국물이다.

곰탕은 고기 국물이니 고기 곤 맛이 나야 한다. 국물 색깔이 맑고 투명하다. 설렁탕은 뼈, 내장을 넣고 곤 국물이니 뼈의 골수나 내장의 맛이 나야 한다. 국물 색깔은 유탁색이다. 우윳빛으로 뽀얗다.

곰탕수육전문
‘하동관’이 곰탕 노포로 유명하지만, 엉뚱하게도 새로 문을 연 서울 마포구 현석동의 ‘’의 곰탕도 ‘하동관’ 못지않다.

재미있는 곳은 서울 마포구 합정역 부근의 ‘’과 광화문의 ‘’이다.

옥동식
광화문국밥
식당 음식은 급격히 바뀐다. 흔히 “서울 사람들은 돼지고기가 물에 들어가는 것은 김치찌개뿐”이라고 표현한다. “서울에는 돼지국밥도 없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과 ‘’은 돼지국밥을 내놓는다. 정확하게는 ‘돼지국밥’이 아니라 돼지곰탕이다. 살코기를 푹 고아서 내놓는다. 2017년에는 엉뚱하게도 ‘돼지고기 곰탕’이라는 희한한 음식이 등장하고 인기를 끌었다. 식재료, 음식은 급격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맛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음식은 장맛’이라고 했다.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다. 며느리가 새로 들어오고 장맛이 좋아졌다는 표현도 있다. 장맛은 음식 맛의 기본이다.

우리 음식은 ‘식재료의 맛+장맛’이다. 나물을 된장에 무치거나 간장에 무친다. 각각 맛이 다르다. 된장찌개와 막장찌개는 맛이 다르다. 청국장도 다르다. 청국장찌개에서 단맛이 지나치면 곤란하다. 공장제 청국장찌개는 단맛과 감칠맛만 난다. 청국장이 천연 조미료다. 조미료에 또 인공조미료를 더한다. 우리 시대의 음식이 이러하다.

황금콩밭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 매일 두부를 만들고 청국장도 직접 띄운다. 국산 콩을 구해서 삶고 절구질한다. 힘든 과정을 통하여 청국장찌개를 내놓는다. 국산 콩으로 청국장을 띄우고 매일 두부를 만드는 집은 드물다.

‘며느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 레시피’라는 표현이 있다. 이른바 ‘비법 레시피’라는 것이다. 비법은 없다. 비법은 조미료 배합 비율일 뿐이다. 단맛, 짠맛, 매운맛과 조미료의 감칠맛을 교묘히 배합하는 것일 뿐이다.

진부집
강릉 중앙시장의 ‘’. 공사하기 전, ‘’의 감자전은 일품이었다. 감자전 부치는데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손님이 감자전을 주문하면 그때부터 감자를 가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다. 갓 지은 밥이 맛있고 갓 빚은 떡이 맛있다. 감자전도 마찬가지다. 기계로 갈지 않고 손으로 강판에 감자를 갈아낸다. 바로 번철에 부친 감자전이 맛있다. 식기 전에 호호 불면서 먹는 감자전은 일품이었다.

제대로 음식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정성’이라고 하지만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맛을 얻는 방법이다. 비법이 아니다.

한식의 맛은 무엇인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백제 문화를 이른 표현이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한식의 맛, 한식도 그러하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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