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흔적 서린, 제국의 옛 수도

터키 서북쪽 에디르네는 이스탄불 이전 오스만 제국의 도읍이었던 도시다. 유럽과 맞닿은 낯선 소도시는 도드라진 건축미로 반전을 자아낸다. 오스만 튀르크의 거장인 미마르 시난의 건축물들은 삶속에 낱낱이 흩어져 있다.

에디르네는 오스만왕조의 옛 수도다. 2세기초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본인의 이름을 따 ‘하드리아노폴리스’라는 도시를 세웠고 상업도시로 번성했다. 비잔틴제국이 쇠퇴하자 오스만튀르크가 부르사에서 유럽으로의 영토확장을 위해 도읍을 옮긴 뒤 에디르네 시대는 1453년까지 100여년간 이어졌다.

도시 최고의 건축물이자 세계문화유산인 셀리미예 자미는 친근한 담자락 처럼 골목 한 편에 서 있다. 오스만튀르크의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이 셀레미예 자미를 완공한 게 16세기 중반의 일이다. 그가 이슬람 땅에 남긴 수백개의 건축물중 최고의 작품이 셀레미예 자미다.

시난은 이스탄불 아야소피아에 필적하는 거대한 돔을 만드는 것을 갈망했고 80세에 이르러서야 꿈을 이룬다. 셀레미예 자미는 8개의 기둥이 대형 돔을 받치고 있는 구조로 돔의 직경이 31m에 달한다. 내부 장식과 1000개에 가까운 창문들은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천재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작품들

사원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광장에는 시난의 대형 동상이 들어서 있다. 터키 다른 도시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건축가의 동상은 생경한 풍경이다. 그의 건축물들은 도시 곳곳에 삶으로 녹아들었다. 알리파샤 바자르는 1569년 완공된 시난의 작품으로 아치형 시장 지붕이 우아하다. 천장을 오직 벽돌로만 사용한 소쿨루 하맘(목욕탕) 역시 건축가의 호흡을 담은 채 아직도 남탕, 여탕을 구분해 영업중이다.

알리파샤 바자르는 생선과 야채를 파는 노천시장으로 연결된다. 비좁은 시장 골목길에 들어서면 생선간판을 내건 가게들, 물담배인 시샤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이 모습이 정물화처럼 흐른다. 대도시 이스탄불에서는 낯선, 살가운 풍경들이 에디르네의 골목길에 담긴다.

에디르네는 이스탄불 다음으로 오스만 왕조의 건축물이 많이 남은 곳이다. 올드 모스크로 불리는 에스키 자미는 벽에 그려진 텔라그라피가 인상적이다. 위츠 페네펠리 자미는 미나레(탑)에 있는 3개 발코니의 건축양식이 도드라진다. 옛 병원과 학교유적인 ‘바야싯 2세 큘리예시’ 역시 도시의 세월을 강변한다.

그리스 접경...‘오일 레스링’의 본고장

툰자강 건너 옛 궁전터인 에스키 사라이를 지나면 오일레슬링 ‘크르크프나르 야을르 귀레쉬’가 개최되는 공간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에디네르의 귀레쉬 대회는 터키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축제시즌이면 숙소들은 한달전부터 예약이 동난다.

이 도시에서 몸에 오일을 서로 발라주며 겨루는 오일레슬링만 이채로운 게 아니다. 에디르네의 별미가 ‘지에르 타바’로 불리는 양의 간 요리다. 간에 밀가루를 뿌려 쇠냄비에 튀긴 것으로 맛의 여운은 입안을 맴돌며 진하게 남는다.

도심에서 차량으로 30여분만 달리면 그리스, 불가리아의 접경과 닿는다. 에디르네 주민들은 외식이나 당일치기 여행을 위해 국경을 넘는 일이 다반사다. 유럽과 맞닿은 오스만튀르크의 소도시는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빛을 발한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인천에서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한뒤 차량으로 3시간 정도면 에디르네에 도착한다. 터키항공은 매일 0시 40분에 출발해 오전 6시 15분에 도착하는 비행편을 운항중이다. 항공시간은 11시간 가량 소요된다.

▲숙소, 음식=휴리엣 광장 일대에 숙소들이 밀집돼 있다. 터키에서는 디저트인 나무열매 과자인 ‘에즈메’나 터키젤리로 알려진 ‘로쿰’ 이 인기 간식거리다.

▲기타정보=에디르네의 숙박요금은 축제시즌을 제외하면 이스탄불보다 한결 저렴하다. 기온은 한국보다는 다소 온화한 편이다. 유로나 달러를 가져가면 현지에서 리라로 환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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