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제자들이 남긴 논어(論語)의 첫 편 이름이 학이(學而)편이다. ‘학이시습지’로 시작되어서 앞 두 음절을 따서 붙여진 편명이다. 논어는 전부 그렇게 편명을 만들었다. 공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배우는 것(好學)’이라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반영한 듯싶다. 맹자 또한 맹자(孟子)라는 책을 남겼는데 맹자 말년이나 사후에 제자들이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맹자 첫 편의 이름이 양혜왕(梁惠王)편이다. 이걸 달리 하필왈리(何必曰利)장이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양혜왕도 자신의 이익을 ?는데 대해 대의(大義)가 이익(利益)을 앞서야 한다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광경이 그려진다. 공자가 왕에게 예의를 차리면서 정중하게 설득했던 것과는 달리 맹자는 왕의 면전에서 왕을 꼼짝달싹 못하게 몰아 붙여서 심지어 왕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런 이유로 공자는 성인의 반열에 올려졌고, 맹자는 아성(亞聖)에서 머물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공자의 큰 가르침보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맹자의 가열 찬 전투력에 더 수긍이 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맹자도 재미있는 책이지만 필자에게 동양고전을 한권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권하겠다. 역사를 기록한 책인 것은 맞지만 너무나 많은 인간 군상들의 적나라한 모습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마천이 생존했던 시대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기는 사마천의 살아생전에는 공표하지 않았다. 그가 생존해 있을 때 왕인 무제(武帝)에 대해서도 평가를 했는데 무제의 눈에 거슬릴만한 내용을 많이 기술했기 때문이다. 무제가 죽은 다음 외손자 양운(楊惲)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사기를 기술할 당시 종이는 이 세상에 없었으며 죽간으로 글을 남겼다. 한글로 번역된 책의 두께로 미루어 짐작 컨 데 이걸 죽간(竹簡)에 모두 기록했다고 하면 어마어마한 양일 것으로 추측된다. 나침반, 화약, 인쇄술의 발명과 더불어 고대 중국의 4대 발명품으로 꼽히는 종이의 발명으로 인해 유통되는 지식의 양이 그 이전에 죽간이나 목간 혹은 비단으로 전달되었던 때 보다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 저(楮)는 닥나무라는 뜻이다. 닥나무는 꾸지나무, 삼지닥나무, 산닥나무, 닥풀등과 함께 한지의 원료가 되는 나무다. 이 나무들의 가지에서 벗겨낸 껍질을 짓찧어서 닥풀의 뿌리를 우려낸 물과 섞은 다음에 종이 틀에 떠내어 말린 것이 한지다. 닥나무 껍질을 저피(楮皮)라 하고, 저피로 만든 종이를 저지(楮紙), 꾸지나무 껍질을 구피(構皮)라 하고 구피로 만든 종이를 구지(構紙)라 한다. 구지가 저지보다 품질이 좋다. 저피가 죠해, 죵희를 거쳐 종이로 변했다는 설이 있지만 잘 모르겠다. 저실자(楮實子)는 뽕나무과에 속한 꾸지나무의 과실을 건조한 것으로 8-10월 사이 과실이 붉은 색을 띨 때 채취해서 사용한다. 저실자는 성질이 차고(寒) 맛은 달다.(甘) 간경과 신경 외에 비경으로 들어간다. 보신청간(補腎淸肝)작용이 있다. 간장과 신장을 튼튼히 해서 근골을 강화시켜 허리와 무릎이 시큰거리고 뻑뻑하게 아픈 요슬산연(腰膝酸軟)에 쓴다. 또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간장(肝臟)에 열이 차서 눈이 뻑뻑하고 침침할 뿐 아니라 예막(翳膜)이 생긴 것처럼 뿌옇게 보이거나 빨갛게 변해 있을 때 이 열을 꺼줘서 눈을 촉촉하게 해줘서 시원하고 맑게 해준다. 이를 명목(明目)이라한다. 눈을 밝게 한다는 뜻이다.

혹간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눈이 빨갛게 충혈 된 것 같으면 지금 당장 냉동실에 얼려놓은 조각 얼음을 비닐에 넣어서 눈을 감고 그 위에 10초 정도 얼음을 붙였다 떼는 것을 반복해 보라. 눈이 정말 시원하고 맑아지는 걸 알 수 있다. 저실자는 이뇨작용도 있다. 2012년 강원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꾸지나무 농축추출물과 인동(忍冬)의 에탄올 추출물에서 염증과 통증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가지고 특허를 신청한 적이 있었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두 한약 모두 성질이 무지 찬 한약이고 당연히 염증이 있는 곳에 투약할 수 있는 한약들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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