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메밀 막국수, 작지만 숨은 맛집… 미쉘린 ‘빕 구르망’에 선정

어린 시절 100% 메밀면의 투박한 맛 그대로…방송 타며 유명세

즉석 반죽해 막국수 내려… 부인 음식 솜씨, 밑반찬도 수준급

'양양메밀국수' 이태수 대표. 강원도 양양 출신이다.
서울 방배동, 한적한 골목에 있다. ‘양양메밀국수’. 입구에 ‘막국수’라고 써붙였다. 가게도 그리 크지 않다. 좌식 테이블이 대여섯 개 정도. 20명 정도 앉으면 어깨가 닿는다. 메밀국수, 막국수 전문점이다. 업력도 그리 길지 않다. 이제 10년 정도. 미쉘린 선정 ‘빕 구르망’에 선정되었다. 유명 TV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양양메밀국수’의 이태수 대표를 만났다.
이태수 씨와 아내 유순혜 씨가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100% 메밀로 만든 막국수

“세상에는 100% 메밀 막국수만 있는 줄 알았어요.”

아직도 메밀만 100% 사용한 막국수가 가능할까, 라고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막국수를 만드는 이들도 “100% 막국수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100% 메밀 막국수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굳이 메밀 100% 막국수를 만들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일본인들의 ‘니하치면(메밀 80%, 밀가루 20%로 만든 2:8면)’처럼 “메밀 함량 80% 면이 제일 좋다”는 이들도 많다.

메밀 함량, 메밀 면에 대해서 지나친 주장을 펼치는 이들 혹은 고집스럽게 면을 설명하는 이들을 ‘면스플레인(麵s+plain)’이라고 비꼰다. 남자의 허세로 늘 잘난 척 설명하는 ‘맨스플레인(Mansplain)’에 빗댄 말이다.

물막국수
여전히 100% 메밀 막국수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양양메밀국수’는 예나 지금이나 100% 면을 내놓는다. 100% 메밀 막국수에 대한 ‘양양메밀국수’의 설명은 좀 엉뚱하다. 이태수 대표의 말이다.

“강원도라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가 태어나서 자란 양양에서는 막국수는 메밀로만 만들었습니다. ‘메밀 100%’를 고집한 것은 아닙니다. 뭘 섞는다는 사실을 몰랐지요. 밀은 귀했지요. 밀가루가 귀하니까 섞을 수가 없었지요. 전분도 귀하니까 굳이 사용하지 않았고요. 그나마 메밀이 제일 흔했으니까 그걸로 국수를 만들었지요.”

2012년 서울 방배동으로 이사를 하기 전, 잠깐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막국수 전문점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음식점은 처음이었고 당연히 메밀 막국수를 파는 일도 처음이었다. 다른 음식점이 어떤 막국수를 내는지도 몰랐고 막국수에 대한 손님들의 기호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고향에서 먹던 대로, 이태수 대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메밀 막국수를 만들었다. 100% 메밀 막국수였다.

막국수. 육수에 말지 않은 상태.
어느날, 손님이 물었다. “이집 막국수는 메밀 함량이 얼마나 되지요?”

이 대표 부부는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막국수는 메밀로만 만드는데 메밀 함량이 얼마냐고 묻다니,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손님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가게 운영은 어려웠다. 손님이 드문드문하니, 사람들이 메밀 함량 100%의 메밀 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100% 메밀 면을 좋아하는 골수팬들, 단골들은 있었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인근에 국립암센터가 있습니다. 병원에 위문 오는 분들 중에도 우리 가게에 꼭 찾는 사람들이 있긴 했습니다. 숫자는 많지 않았고요. 그저 ‘저 분은 메밀국수를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 메밀 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연했다. ‘생계형’으로 시작한 가게인데 손님들이 들쑥날쑥 드나드니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서울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막국수 가락이 검은 편. 매밀 껍질이 남아있다.면도 거친 편이다.
자동차 정비공장 그리고 막국수 집

이태수 대표는 강원도 양양 출신, 1963년생이다. 1960, 70년대, 대부분 가난한 살림살이였다. 양양군은 바닷가 지역이지만 이 대표가 자란 곳은 산골이었다. 4남1녀 중 셋째. 농사짓는 집안에서 평범하게 자랐다.

‘대처’인 서울과의 인연은 군대생활에서 시작되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군대생활을 했다.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자동차 정비, 기계 관련 일을 배우고 시작했다. 1994년, 다섯 살 아래의 아내 유순혜 씨를 만났다.

이 대표 부부 역시 IMF의 모진 바람을 이길 순 없었다. 1997년 12월, IMF 구제 금융이 시작되었다. 이 대표 부부는 이 대표의 고향인 강원도 양양으로 낙향했다. 그로부터 10년, 부부는 긴 세월을 고향에 묻었다.

“할 줄 아는 게 자동차 정비 관련 일이니까, 고향에서도 작은 자동차 정비공업사를 운영했지요. 2007년 3월에 다시 일산으로 올라왔습니다.”

힘든 시기, 10년의 세월을 이 대표의 고향에서 보내고, 이번엔 아내 유순혜 씨의 고향으로 온 것이다. 그 사이 아들 둘을 얻었다.

'양양메밀국수'의 명태회무침
“처음부터 막국수 집을 운영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내가 음식을 잘 만집니다. 지금도 ‘명태초무침’을 비롯하여 모든 밑반찬을 직접 만듭니다. 아내가 먼저 일산으로 가서 자리를 잡으면 그때 아이들과 함께 서울로 갈 생각이었지요. 아내 고향이니까 자리 잡기도 쉬울 것 같았고요. 처음부터 막국수 집을 예정하진 않았습니다. 저는 역시 그동안 운영했던 대로 작은 정비공업사를 할까, 라고 생각했고요.”

막국수, 파는 게 아니라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들었다

이 대표가 고향에 있는 동안 아내는 일산에서 작은 식당을 내고 자리를 잡았다.

“식당이라고 거창하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작은 밥집을 낸 거지요. 식당 일이 처음이었으니까.”

집안일만 하던 이가 처음 바깥 세상에 나왔을 때 할 수 있는 일, 그 정도였다. 다행히 평소에도 음식 만지는 솜씨는 좋았다. 아내의 친정 외할머니가 개성 출신이었다. 음식 만지는 손끝이 매서웠다. 아내는 외할머니의 음식 솜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작은 밥집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막국수 집으로 변신한 것은 엉뚱하게도 ‘향수’ 때문이었다. 강원도 산골 출신들은 늘 막국수를 그리워한다. 대단히 맛있는 음식도 아니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음식이다.

만둣국이다. 겨울메뉴
음식과 음식 맛은 갖가지 추억과 얽혀 있다. 강원도 산골의 막국수는 동네의 작은 축제, 결혼 등등 기쁜 일과 겹쳐 있다. 크고 작은 기쁜 일이 있으면 늘 막국수를 ‘내렸다’. 유압식 제면기가 없던 시절이다. 동네마다 어딘가에는 분틀이 있었다. 분틀은 강원도 산골에서 막국수를 내릴 때 사용하던 도구다. 강원도에서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전국적으로 모두 분틀을 사용했지만, 전기가 공급된 곳들은 모두 기계, 전기 식 제면기로 바꿨다. 전기 사용이 늦었던 강원도 산골에서는 1980년대까지도 분틀이 남아있었다. 아니, 지금도 군데군데 ‘마을 공용’ 분틀이 있다.

“아내가 식당을 한 지 오래지 않아 막국수 집으로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막국수가 먹고 싶어서 막국수를 내렸지요. 기계 살 돈이 없어서 직접 분틀을 만들었습니다. 분틀을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대부분 고향으로 보냈지요. 그중 한두 개를 가게에서 사용하고. 막국수를 내려 먹다가 보니 이걸로 장사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막국수 집으로 간판을 바꿨지요.”

아내가 식당 문을 연 지 여섯 달쯤 지났을 때, 부부는 식당 간판을 ‘양양메밀국수’로 바꿨다. 2007년의 일이다.

“일산에서 서너 해 했나요? 가게운영은 어려웠지요. 예전에도 홍보, 광고는 할 줄 모르고, 그저 국수만 잘 만들려고 노력했지요. 아무래도 서울이 일산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옮겼지요. 서울 와서도 마찬가지긴 했습니다. 2010년, 2011년 무렵에도 여전히 메밀 100%를 사용하는 막국수 집은 드물었습니다. 지금도 손님들이 더러 ‘메밀 함량이 얼마냐?’고 묻곤 합니다.”

‘어린 시절 그 막국수’는 어렵다. 제분기가 맷돌을 대신한다. 메밀가루는 한결 고와졌다. 유압식 제면기는 한결 일손을 덜어주었다. 툭툭 끊어지던 국수가 곱게 모양을 갖추고 나온다. 달라졌다.

어린 시절의 막국수에는 더러 돌이 씹히기도 했다. 돌밭에서 얻은 메밀이다. 돌을 섬세하게 가려내지 않으면 메밀에 돌이 섞여 있었다. 맷돌로 메밀을 갈면 돌도 같이 부서진다. 국수 그릇에 남았던 작은 모래가 씹히기도 했다. 이제 국산 메밀은 구하기 힘들다. 값이 비싸지만 공급도 그리 여의치 않다. 필요할 때 사들이는 것도 힘들다.

“메밀은 예민합니다. 계절, 온도, 습도, 제분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열에 아주 예민하지요. 같은 양의 물이라도 두 번에 나눠서 넣고 반죽하면 국수 가락이 달라집니다. 같은 양의 메밀가루도 한꺼번에 반죽하는 것과 반죽 중간에 더하는 것도 결과가 다릅니다. 늘 어린 시절 먹었던 막국수를 기억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저 제가 맛있게 먹었던 그 국수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요.”

메뉴판
방송국에서 촬영을 하자고 했을 때 지레짐작으로 출연을 거부(?)했다.

“메밀 막국수는 맛있거나 먹고 싶어서 먹었던 음식이 아니잖아요. 방송국 작가가 전화해서 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먼저 ‘우리 가게 막국수 먹어봤냐?’고 물었어요. 별 맛이 없는 음식을 방송에 내보낸다니까 믿어지지 않았지요. 작가가 이미 저희 가게를 다녀갔더라고요. 반신반의 하면서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맏아들이 막국수에 관심이 깊다. 꾸준히 가게에 출근한다. 틈틈이 막국수를 가르친다. 아들이 다행히도 묵묵히 메밀 반죽, 국수 뽑는 것을 배우고 있다.

아들은 열 번 국수를 뽑으면 네 번 정도 성공한다고 말하면서 흐뭇하게 웃는다. ‘양양메밀국수’의 막국수는 거칠다. 면의 겉면도 거칠고, 까뭇까뭇한 메밀 겉껍질도 얼마간 남아 있다. ‘양양메밀국수’의 특징이다. 여전히 국수 뽑기는 수월치는 않다. 그리 쉽지 않은 그 길에 아들이 들어섰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먹었던 그 막국수를 아들에게 가르칠 터이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서초구 국수 맛집 4곳]

샘밭막국수

서울교대 부근의 업력이 비교적 오래된 메밀 막국수 전문점이다. 막국수도 수준급이지만 김치 등 곁들이는 반찬들이 좋다. 수육 등을 더한 세트 메뉴가 아주 좋다.

미나미

일본에서 공부한 쉐프가 메밀 100% 소바를 내놓는다. 일본 식 소바가 대표 메뉴다. 한국에는 흔치 않았던 니싱(청어) 소바를 널리 알린 공로가 있다.

교대 역 부근에 있다. 분당 야탑 지역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교대 역의 ‘겐’도 직영이다. 수준급의 일본 우동을 내놓는다. 우동 담음새도 아주 좋다.

스바루

일본 식 소바와 우동이 모두 가능하다. 가게 오른쪽에 제분, 제면하는 자그마한 공간이 별도로 있다. 직접 제분, 제면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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