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진단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 (1)

병을 치료하려면 무엇보다도 정확하고 올바른 진단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외래진료를 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진단 절차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엑스레이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까지 했는데 왜 쓸데없이 침대에 누워서 다리 여기저기를 누르고 뒤틀어보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환자도 종종 있다.

제대로 된 진단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병력, 즉 어떠한 증상이 언제 어떻게 시작해서 어떠한 경과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가, 라는 병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의사의 진찰에 의한 소견을 더해서 잠정적인 진단을 찾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한 검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병력을 제대로 모르거나 진찰을 하지 않고 그냥 검사를 시행하려면 쓸데없는 검사를 많이 할 위험도 있다. 게다가 검사의 결과만 놓고 환자를 진료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진료실에서 가장 먼저 병력을 들어본 후에 물어보는 질문은 ▲직업과 운동습관이다. 정형외과적 문제(근-골격계 질환)들은 반복적인 일이나 무리한 노동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하루 종일 앉아서 사무를 보는 사람과 일어서서 기계를 조립하고 만드는 사람은 생길 수 있는 병의 종류가 서로 다르다. 또한 평소 안 하던 운동을 다이어트 때문에 시작한 후에 아파지기 시작했다면 당연히 어떤 운동인지를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직업은 치료 후 복귀과정에도 중요한 요소이다. 목발을 4주 동안 사용하고 체중을 딛지 말아야 할 경우에, 앉아서 일하는 분이라면 조금 더 빨리 직업복귀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서서 일하거나 걸어 다니면서 일 해야 하는 사람은 다르다. 간혹 직업을 물어보면 다소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환자도 있는데, 그건 진료를 위해서라고 미리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으로는 ▲신체진찰이다. 필자는 하지 관절을 담당하고 있기에 대개 침대에 누워서 진찰을 시행하는데, 실제로는 환자분이 진료실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부터 진찰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행은 정상적인지, 목발이나 지팡이를 짚었는지, 혹시 걸을 때 한쪽을 절뚝거리지는 않는지 등 환자분의 외양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이미 진찰은 시작된다.

관절의 운동범위나 부어있는 정도, 압통이 있는 부위, 관절의 안정성 유무 등 진찰의 범위는 매우 넓다. 그리고 가능하면 환부를 직접 육안으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미처 환자 분이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과거 수술을 수술흉터를 보고 다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는 옆구리와 고관절이 1주일 째 아프다고 하시는데 엑스레이는 아무런 이상이 없고, 관절의 운동범위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옷을 올려보니 띠를 이루는 수포(물집)들이 있어서 대상포진으로 진단한 적도 있다.

진찰은 양측 다리를 같이 비교하면서 시행하며, 가장 불편하고 아픈 곳은 가장 나중에 보는 것이 원칙이다. 간혹 환자분들은 아프다고 이야기한 곳은 안 보고 엉뚱한 곳만 먼저 보는 의사를 보고 “거기 말고, 여기라니까요.” 라 하시는데, 아픈 곳부터 진찰하면 몸이 경직되고 움츠려 들어서 진찰결과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보는 것임을 설명 드린다.

그렇다면 정밀 검사는 언제 필요한 것일까? 대부분의 정밀 검사는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경우가 많다. 큰 병원에서 MRI 나 CT 를 찍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러할 것이다. 시간을 요한다는 것은 검사의 결과를 알 때 까지는 진단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정확한 치료를 시작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으며,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검사에 드는 경제적 비용과 검사의 필요성 사이에서 저울질 해본 후 검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앞서 언급한 병력 및 진찰 소견만으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다른 검사는 필요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심각한 문제일 가능성이 낮고, 시급한 것이 아닌 경우 (증상이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경우) 라면 단순한 엑스레이 검사 정도만 해보고 경과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치료 경과를 보면서 추후에 정밀 검사 여부를 다시 판단할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진료 때 이미 증상이 매우 심해서 일상생활에 제한이 심한 경우나 예상되는 진단명이 빠른 치료시작을 요하는 경우, 드문 질환으로 정밀 검사 이외에는 확진 할 길이 마땅치 않은 경우 등 일부 예에서는 정밀 검사를 빨리 하는 것이 더 좋다.

어릴 적 즐겨 읽었던 명탐정 셜록 홈즈가 여러 가지 사건의 단서를 종합하여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병의 진단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 가장 사소해 보이는 단서가 어떨 때는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기도 하며,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증거들을 종합적이고 논리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무분별하게 정밀 검사를 남용하여서도 안 되고, 검사 결과만 믿고 정작 환자의 말을 소흘하게 넘겨 들어서도 안 된다. 의료진은 환자의 병력을 잘 듣고 진찰 이후에 꼭 필요한 검사를 시행해야 하며, 환자 분들도 믿을 만한 전문 의료진의 의견을 듣고 노력해 주신다면 정확하고 올바른 진단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달려라병원 김동은 원장

<다음주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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