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걸쳐 묵에 매진, 업계 최초로 HACCP 인증 …전통식품 새롭게 살려가

20년을 훨씬 넘는 업력… ‘안동특산품’, 묵으로만 연 매출 20억원

전국 25개 이상의 대리점…좋은 재료, 올곧은 마음으로 다양한 묵 만들어

남갑석, 남경수 씨 부자. 마치 동업자 같은 느낌이 드는 부자지간이다.

연 매출 20억원. 대도시 중소기업들은 연 매출 20억 원을 쉽게 넘긴다. 경북 안동, 그중에서도 외진 곳이다. 한갓진 시골(?)에서 연 매출 20억 원의 회사는 많지 않다. 그것도 묵으로 이룬 매출이다.

업력은 20년을 훨씬 넘겼다. 나이든 부부가 가내수공업으로 묵을 만들어, 직접 시장바닥에서 팔았던 세월까지 셈하자면 업력은 길어진다. 안동시 송천동 ‘일월푸디스’의 남갑석 대표 그리고 ‘2대 묵쟁이’로 자부하는 아들 남경수 씨를 만났다.

건조시설에서 묵을 말리고 있는 모습.

전국에서 가장 작은 HACCP 인증 묵 제조업체

매출만 보자면 그리 큰 회사는 아니다. 홈페이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묵을 학교에 급식하는 일이 주 업무다. 전국 25개 이상 지역에 대리점을 두고 있다. 서울 경기 지역만 하더라도 4곳의 대리점이 있다. 서울ㆍ경기 북부, 경기 남부, 경기 서부, 경기 동부 등이다. 강원도에도 대리점이 있다. 제법 먼 호남에도 6곳의 대리점이 있다.

묵도 10여 종류 내고 있다. 메밀묵, 도토리묵부터 올방개묵, 녹두, 우무, 밤을 이용한 묵도 내놓는다. 묵 말랭이도 재미있는 상품이다. 묵을 말린 것이다. 간단하지만 적절한 시설이 없으면 내놓기 힘든 제품이다.

2007년 묵 관련 회사로는 최초로 HACCP 인증을 받았다. 이미 10년을 넘겼다. 인증을 받을 당시에도 전국에서 ‘가장 작은 인증업체’로 주목받았다. 덕분에 HACCP 인증을 준비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강의도 여러 번 했다.

묵 말랭이는 새로운 시도다. 사찰에서 혹은 사찰음식을 조리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일반 소비자나 식당에서도 많이 찾는다. 탕평채는 여러 가지 식재료를 모은 다음 섞는다. 묵만으로 ‘탕평채 같은 음식’을 만들어본다. 형형색색의 묵이 새로운 음식으로 태어난다.

묵 가루도 인기가 있다. 묵에 대해서 숱한 실험, 시험을 해본다. 그리고 현장에서 적용한다. 국산 100% 제품과 외국산 제품도 갈랐다. 국산 100% 제품에는 ‘웅부’라는 이름을 붙였다. ‘웅부’는 안동의 옛 이름이다. ‘일월도토리묵’은 수입산을 사용한 것이다. 가격 차이가 있다.

웅부메밀묵.

‘열린 공장’을 지향한다. 묵 공장, 생산코스 견학도 가능하다. 당당하게 내놓는다. 묵을 쑤는 가마솥은 자체 제작한 것이다. 얼마간의 노하우가 숨어있다.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 정도 시설,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묵은 안심하고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은 힘들었다. 진부한 이야기다. 대표 남갑석 씨, 가난한 시골에서 자랐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다. 경북 안동. 오래지 않은 시절, 10∼20년 전만 하더라도 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들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곳이다. 정서적으로 보수적인 곳이다. 경북 안동시 와룡면이 고향이다. 1952년생.

와룡산이 있어서 와룡면이다. 깊은 산골은 아니지만 제법 외진 곳에 있다. 보수적인 곳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까지도 ‘양반은’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지역이다. ‘묵쟁이’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여동생이 늦은 밤까지 묵 포장 하던 일을 잊지 못한다”

6남매 중 다섯째다. 일찍부터 대처(大處)인 안동시로 나왔다. 배가 고팠다. ‘자존심’ 대신 ‘대처 행’을 택했다. 큰 도시에는 그나마 일거리가 있을 터. 한입이라도 덜어내는 것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고향을 떠나온 후 몇몇 일을 전전하다가 찾은 일이 묵 만들어 파는 일이었다. 작으나마 가내수공업식 공장을 만들고 등록한 것이 1990년대 중반이다. 40대에 이미 공장을 만들었으니 그 이전까지 셈하자면 평생을 묵, 묵 만드는 일에 헌신한 셈이다. 그 세월이 이미 반세기에 가깝다. 대단한 신념을 기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할 줄 아는 일, 할 수 있는 일이니 묵묵히 묵 만드는 일을 했을 뿐이다.

도회지인 안동. 남갑석 대표 부부는 먹고 살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아내는 요구르트 배달 일을 했다. 살림살이는 여전히 궁핍했다. 아들이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은 참 열심히 사신 분들이다. 그리고 ‘남녀 역할이 바뀐 부부’다.

“흔히 남편이 일을 벌이고 아내는 일을 수습하거나 마무리하는 것이지요. 저희 부모님은 완전히 뒤바뀐 케이습니다. 어머님이 일을 벌이시고 아버님이 뒷마무리를 하십니다.”

우무콩묵.

집안 어른에게 묵 만드는 일을 배웠다. 묵을 직접 만들어서 팔면 생계는 해결이 되겠다 싶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묵을 만드는 일은 비교적 순탄했지만, 영업이 문제였다. 가까운 곳에서 소모되는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근 대도시 공급은 유통망 문제가 있었다. ‘중간도매상’이라도 두면 나으련만 중간 상인들에게 지급할 경비가 부담이 되었다. 직접 생산, 직접 배달만이 살 길이었다.

1990년대 중반 자그마한 가내수공업 공장을 마련, 정식으로 등록을 했다. ‘묵 전문 음식점’도 운영했다. 그나마 살림살이가 나아지는가 싶었다. 호사다마, 보증을 잘못 섰다가 그나마 나아졌던 살림살이가 빚더미로 내려앉았다. 살림살이는 쑥대밭이 되었다.

더 아픈 일도 겪었다. 하루 두세 시간 자고 묵을 만들었다. 어지럽고 졸리는 상태로 바로 운전을 했다. 묵을 배달하고 돌아와서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바로 묵을 만들기도 했다. 부산의 시장까지도 직접 배달을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 몇 해 동안 그렇게 묵을 만들고 배달했다.

끝내 사단이 났다. 졸음운전이었다. 졸음운전은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아내 손귀영 씨는 열 번 이상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얼굴에 상처가 남아 있었다. 손귀영 씨는 2011년 세상을 떠났다.

아들 남경수 씨의 기억이다.

“직원을 들일 형편은 안 되고 아버님, 어머님이 묵을 만들어 배달하곤 했습니다.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묵 공장 일을 하셨지요. 저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까 휴일이나 방학 때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를 다녔던 여동생이 늦은 밤까지, 하루 종일 묵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으니 부모님 하시는 일에 도움이 되지 못했고요. 마음 아팠지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안동지방에는 아직도 탕평채를 내놓는 집들이 있다.

탕평채와 태평추에도 묵이 들어간다

묵 중에 가장 흔한 것은 도토리묵과 메밀묵, 청포묵이다. 흔한 이유가 있다. 도토리와 메밀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포묵은 안동에서도 귀하게 사용한다.

가까운 영주시 순흥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묵집이 있다. 서울 시내에서도 경북 북부지방의 도시 이름을 내건 집에서는 묵을 내놓는다. ‘안동국시’를 내놓는 집에서도 메밀묵을 내놓는다. 묵밥, 묵사발도 유명하고, 묵에서 파생한 탕평채도 안동 음식이다.

외부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태평추’라는 음식도 묵으로 만든다. 허름한 냄비에 메밀묵, 신 김치,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끓여서 먹는 음식이다. 안동, 바로 곁의 예천에서는 대부분 태평추로 겨울을 난다. 역시 묵이 들어간 음식이다.

“도토리는 다람쥐 먹이, 도토리를 줍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도 틀렸다. 아들 남경수 씨의 이야기다.

“도토리를 줍는 것이 불법인 것은 국립공원 지역에서의 이야깁니다. 사유지에서는 도토리를 주워도 불법이 아닙니다. 저희들은 늦가을부터 도토리를 사들입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인건비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산은 인건비가 싸니까 가격이 쌉니다. 도토리 질은 큰 차이가 없을 텐데 유통과정이 문젭니다. 중국산의 경우 훈증(燻蒸)을 합니다. 도토리 알에 연기를 쐬어서 벌레나 균들을 막지요.”

맨 왼쪽인 '재롱이'는 중국 수입 도토리의 일종이다. 오른쪽 물암도 중국 생산 도토리의 일종이다.

훈증한 중국산 도토리는 물에 불려서 훈증 기운을 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훈증 과정에서 어떤 약품을 사용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HACCP 인증 10년, ‘안동특산품’ 인증 마크

‘일월푸디스’를 보면 가족들끼리의 분업이 ‘조화롭다’는 느낌이 든다.

부모님은 평생 묵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아들 남경수 씨는 부모님의 좋은 점을 모두 이어받으려 노력한다. 공장을 세운지 20년을 넘겼고, HACCP 인증을 받은 지 10년을 넘겼다. 순항 중이다.

“대학교 다니다가 군 입대할 때까지도 묵 사업은 물려받지 않으려 했습니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사업이었으니까요. 군대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묵 자체가 지겨웠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면서 얻은 지식으로 판단해도 묵 관련 사업은 비전이 없었다. 안동 언저리에서나 묵을 찾지 외지에서는 그 수요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묵말랭이.
묵말랭이 말린 나물볶음.

“대기업이 쉽게 뛰어들지 못할 사업이니까 중소기업이 비전이 있다고 봅니다. 국산 식재료를 고집하는 것도 차별화 포인트고요. 전통식품으로 인정받는 것도 큰 힘이 됩니다. 욕심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진행합니다. 학교 급식이 큰 부분입니다. 묵은 전통식품이니까 학교에서는 일부러 찾습니다.”

묵 공장. 쉬운 일은 아니다. 묵 제조전문 업체는 모두 열 개 남짓이었다. 현재는 다섯 개 정도만 남았다. 회사 규모를 키워 대기업에 납품을 하던 업체의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힘에 부치는 사업 확대는 회사를 망가뜨린다는 교훈을 얻었다.

느리지만 깊게 걷는다. 묵 제조 공장으로 드물게 HACCP 인증을 받았고, 2대에 걸쳐 묵에 매진하고 있다. 안동시로부터 ‘안동특산품’ 마크도 받았다. 널리 알려진 안동소주, 안동 간고등어와 더불어 받은 소중한 인정이자 인증이다.

묵은 탱글탱글하면서 적당한 탄성을 가져야 한다. 좋은 식재료, 적절한 조리법, 올곧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식품이다. 우리처럼 묵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민족은 없다. 묵은 전통식품이다. ‘오래된 미래’, 새롭게 태어나는 전통식품을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묵 맛집 4곳]

봉화묵집

서울 성북구 아리랑고개 언저리의 안동국시 전문점이다. 건진국시와 제물국시가 수준급이고 묵밥ㆍ묵사발도 아주 좋다. 경북 봉화출신의 노부부가 운영한다.

까치구멍집

경북 안동에 있는 전통적인 안동헛제삿밥 전문점이다. 헛제삿밥과 더불어 탕평채를 내놓는다. 기와집에서 전통적인 방식, 수준급의 헛제삿밥과 탕평채를 만날 수 있다.

전국을달리는청포집

경북 예천에 있는 한식집이다. 한상차림의 한식이다. 한식 밥상에 청포묵 요리를 내놓는다. 경북 내륙의 한식 한상차림이 비교적 푸짐하다. 청포묵도 좋다.

순흥묵?

경북 영주시 순흥면의 묵, 두부 전문점이다. 묵 전문점이지만 두부도 아주 좋다. 외진 곳이지만 손님들은 꾸준하다. 푸근한 시골두부, 시골 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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