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와 동떨어진 질곡의 과거를 지닌 땅, 원주민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은 외딴 마을들은 알래스카의 분위기를 고요하게 담아낸다. 곰, 빙하, 고래 등 동화 속에나 등장할듯한 흥분되는 얘기는 알래스카의 여행길에 하나씩 벗겨지는 베일들이다.

주노, 스케그웨이, 헤인즈 등은 알래스카의 서쪽해변에 매달린 마을이다. 주노는 알래스카의 주도이지만 뭍으로 닿는 길이 없다. 배를 타거나 비행기로 다가서야 하는 외딴 곳에 도시는 웅크려 있다.

알래스카의 마을들은 옛 빙하가 녹아내린 비탈진 땅에 터를 잡았다. 언덕과 비좁은 계단길은 주노가 보여주는 색다른 단상들이다. 주노 뒤로 흐르는 멘던홀 빙하는 헬기를 타고 올라 마주하면 윤곽이 또렸하다.

빙하 위에 들어선 알래스카의 주도

주노의 골목에서는 흔하게 원주민 아저씨를 만난다. 옛 알래스카 주지자 관저에는 원주민의 토템 폴이 들어서 있다. 주노 시청사 앞에는 잠시 러시아의 땅이었음을 추억하듯 러시안 만두(팔메니) 가게가 위치했다. 해질 무렵, 해변가 만두 가게에서는 LP판을 돌려 음악을 틀어준다. 그 도시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고래구경은 신난다. 주노는 고래투어의 출발 포인트이기도 하다. 대부분 크고 작은 망원렌즈를 들고 고래탐방선에 오른다. 탐방선은 링컨 아일랜드까지 고래를 보러 나선다. 운이 좋으면 북극곰, 상어를 잡아먹는다는 킬러 고래를 만날 수 있다.

피오르드 북쪽의 스케그웨이는 예전 금광으로 번성하다 쇠락했던 마을이다. 크루즈가 닿으면서 도시는 다시 분주해졌다. 항구 주변으로는 서부영화에서 나올듯한 거리가 말끔하게 조성돼 있다. 마을은 흥미롭다. 골드러시 시기의 가장 오래된 가옥은 관광안내 센터로 변신했고 옛 술집과 매춘부의 집도 유적으로 보존돼 있다. 광석을 실어 나르던 화이트패스 열차는 캐나다 유콘지역까지 관광열차처럼 연결된다.

회색곰을 만나는 칠캣 주립공원

코앞에서 곰을 보는 투어는 가장 들뜬다. 스케그웨이에서 작은 뱃길로 연결되는 헤인즈에서는 곰을 본다. 알래스카 회색곰인 그리즐리다. 연어를 우적우적 뜯어먹는 곰이 헤인즈의 칠캣 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살고 있다. 칠캣 주립공원 일대의 투어는 야생동물을 구경하는게 포인트다. 해달이 물길을 오르고, 흰머리 독수리가 날아오른다.

알래스카 최남단의 캐치칸은 알래스카의 작별을 아쉬워하듯 늘 흐린 날씨다. 이곳에서는 TV쇼에서 화제가 됐던 게잡이 투어와 수상가옥이 늘어선 크리크 거리 등이 인상적이다. 인디언의 흔적은 그 어느 마을 보다 캐치칸에서 강렬하다. 진귀한 유물을 간직한 박물관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알래스카의 야생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는 그의 저서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에서 “숲과 빙하에 휩싸인 태고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다”고 썼다. 이방인의 염원처럼 알래스카에서 머문다는 것, 또 잠시 가로지른다는 것 자체가 전율이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바닷길을 통한 알래스카 마을여행의 주요 출항지는 미국 시애틀이다. 프린세스 크루즈 등이 운항중이며 주노, 캐치칸, 스케그웨이 등을 거쳐 글레이셔 베이 빙하지대를 탐방한다.

▲숙소, 음식=장기 체류자를 위한 마을 단위의 숙소가 마련돼 있다. 크루즈 여행자들은 선내에서 숙박을 하며 기항지 투어에 나선다. 현지 마을에 내려 로컬 펍에서 맥주한잔 기울이는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 알래스카에서는 지역 별미인 게 요리를 놓치지 말것.

▲기타정보=알래스카 여행은 하계 시즌이 적기다. 가을이 깊어지면 대부분의 뱃길이 닫힌다. 알래스카 여행(www.travelalaska.com), 프린세스 크루즈(www.princesscruises.co.kr)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한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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