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다’는 것은 감동의 순간과 묘하게 닿아 있다. 세계 10대 불가사의인 ‘바위왕궁 시기리야’에 걸터앉은 청춘들은 미동이 없다. 탐험가 마르코폴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나라로 스리랑카를 꼽았다. 탐험가의 호언 너머, 기이한 유적이 뒤엉킨 땅은 이채로운 빛을 발한다.

담불라(Dambulla) 칸달라마 호텔의 2층 레스토랑은 창문이 유난히 넓다. 창밖은 담불라의 호수와 숲으로 채워진다. 호텔은 꽤 자연친화적이다. 나무 덩굴이 호텔벽을 따라 오르고, 숙소로 향하는 복도에는 바위가 비쭉 솟아 있다.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건축가 제프리 바와는 주위의 우려를 떨치고 이곳에 친환경호텔을 설계했다.

370m 절벽위에 세워진 철옹성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즐기던 여인이 창밖으로 응시한 건 호수와 숲만이 아니다. 녹색의 숲 너머 봉긋 솟은 바위산은 시기리야(Sigirya)다. 세계 10대 불가사의로 여겨지는 스리랑카의 상징과 같은 유적이다.

부왕을 시해한 카사파 1세는 370m 바위절벽 위에 철옹성을 세웠다. 그것도 모자라 바위산 주변에 해자를 만들고 ‘사자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바위통로로 겹겹이 에워 쌓았다. 승려들의 수행지였던 바위산 정상에는 수영장, 연회장까지 갖춘 왕궁이 모양새를 갖췄다. 5세기때 일이었고, 짧은 흥망의 과정을 겪었던 암벽왕궁은 19세기 후반 영국군 장교에게 발견되면서 1400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리기아로 오르는 길은 녹록지만은 않다. 방어와 삶터 확보를 위해 조성했던 공간들은 물의 정원, 바위정원, 테라스 정원이라는 말로 곱게 포장돼 있다. 영국 식민시절, 정복자에 의해 철제 계단이 설치됐고 그 철조물들은 세계유산의 한 가운데 생채기를 내며 가로지른다.

세계유산인 석굴사원 ‘담불라’

상막할 것만 같던 육중한 바위산 동굴에는 가슴을 드러낸 여인들의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시기리야 미인도’. 부왕의 혼을 달래기 위해 춤추는 선녀의 모습을 그렸다는데 천년 넘는 세월을 넘어 정교함이 배어난다. 두개의 커다란 앞발이 인상적인 사자의 목구멍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면 정상 왕궁이다. 바위산 왕궁터에 걸터앉으면 시기리야, 담불라의 평원과 산자락이 아득하게 내달린다. 시기리야에 오른 자들은 무슨 일인지 할 말을 삼킨다. 먹먹한 감동만이 주위를 맴돈다.

오르는 행위는 시기리야에서 멈추지 않는다. 담불라 석굴사원으로 가는 길 역시 고행의 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계단을 오르는 길 내내 모두 애처로운 맨발이다. 흰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노파의 거친 손에는 꽃이 담겨 있다. 햇살이 이마에 쏟아지고 가쁜 호흡이 매달려도 얼굴만큼은 편안하다.

자연동굴속에 들어선 담불라 사원은 기원전 3세기때부터 승려들이 수행했던 터다. 스리랑카의 사원중 가장 오래된 곳 중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다섯 개의 석굴사원에는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150여기의 불상과 정교한 채색의 프레스코화가 남아 스리랑카의 여운을 아련하게 되새기게 만든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수도인 콜롬보가 스리랑카의 관문이다. 인천공항에서 콜롬보까지는 직항노선이 운항중이다. 콜롬보를 경유한 항공기는 몰디브까지 연결된다.

▲숙소=담불라의 ‘해리턴스 칸달라마 호텔’은 숲속에 들어선 친환경 호텔이다. 이 곳을 거점으로 인근 시기리야, 담불라 일대를 둘러보기에 편리하다.

▲기타정보=스리랑카 서남단의 콜롬보에서 섬 중앙의 시기리야, 담불라까지는 버스로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스리랑카에서는 도시 간 도로상황이 수월하지는 않다. 스리랑카 입국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현지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지만 다소 붐비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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