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일본 동대사(東大寺)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된 13매(枚)의 경질(經帙) 중 파손된 화엄경론질(華嚴經論帙)의 책갑을 수리할 때 내부의 덧댄 종이 부분이 신라시대 민정문서(民政文書)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라 장적(新羅帳籍) 혹은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 정창원 문서(正倉院文書)로 불리는 이 자료는 서원경(西原京) 즉 지금의 청주 지방 4개 촌의 장적(帳籍)으로, 신라 사회의 구조와 각종 행정 정책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사료로 여겨지지만 그 당시 사진으로만 찍어서 공개하고 다시 봉합됐다. 작성시기가 경덕왕 때로 각 고을의 촌주가 매년마다 조사해서 3년마다 문서로 작성한 자료로 마을의 크기, 호수 인구수, 논 밭 등 토지면적 결수, 말, 소, 뽕나무, 잣나무, 호두나무 까지 일일이 기록되어 있다.

사해점촌이란 마을은 147명이 거주하는데 말이 27, 소가 22마리, 논은 102결, 밭은 62결, 뽕나무는 1,004, 잣나무는 120, 호두나무는 112 그루였다. 여기서 말과 뽕나무가 특히 눈에 띈다. 소보다 말이 많다는 것은 김춘추가 676년 삼국을 통일하고 채 백년이 되지 않았던 750년 때라 전쟁 중에 사용한 말들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뽕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많은 것은 아마도 그 당시 왕과 귀족 혹은 돈 많은 평민이 비단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목화가 유입되기 전의 옷은 비단옷 외에는 한겨울의 방한 기능적인 면에서 쓸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욱더 누에를 기르는 일을 열심히 했으리라 여겨진다. 누에를 기르려면 뽕나무가 필요하다. 그래서 신라시대 때 뽕나무를 다른 과실수 보다 많이 심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에 치고 비단을 짜는 고된 일상은 일상다반사라 여러 한시(漢詩)에도 자연스레 나타나 있다.

회남자(淮南子)는 한나라 유방의 손자인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인데 설산훈(說山訓)에 보면 “뽕나무 잎이 지매 장년의 나이가 슬프다.”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정두경(鄭斗卿)은 동명집에서 이 시를 언급하며 “국화 피는 속에 좋은 시절은 가고, 뽕나무 잎 지매 장년 나이 슬프네”라고 읊조리고 있다. 서거정(徐居正)은 사가집(四佳集)에서 “뽕잎 먹여 누에치고 벼농사 밭농사를 해도 조세를 충당 못할 까 걱정이니 열심히 일해서 관아의 독촉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하였고, 이익(李瀷)은 성호전집 속 한거잡영 〔閒居雜詠〕에서 “뽕잎 풍년으로 누에 먹이는 것은 노인의 비단옷을 짜기 위함이 아니라 일상이다.”라고 쓰고 있다. 고대 중국이나 한국에서 뽕잎은 비단을 만드는 주요 원재료였고 비단은 그 결과물이었다. 비단이 화폐로 통용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 품질 좋은 비단이 얼마나 서유럽으로 많이 팔려나갔으면 비단길이라고 명명했을 정도였을까?

뽕잎은 누에를 먹이기기도 하지만 엄연히 발산풍열약인 한약이다. 첫 서리를 맞은 뽕나무 잎을 따서 건조해서 한약재로 쓴다. 그래서 경상상엽(經霜桑葉)이라고도 부른다. 효과는 산뽕나무의 이파리가 제일 좋다. 우리나라 전역에 뽕나무가 없는 곳은 없다. 성질은 차고 독은 없고 맛은 달고 쓰다.(寒無毒甘辛) 폐경(肺經)과 간경(肝經)으로 약효가 흘러들어간다. 뜨거운 바람을 많이 쐬어 생긴 각종질환을 치료한다. 이를 소산풍열(疏散風熱)이라 한다. 풍열감기가 생겼을 때 치료한다. 폐는 가스교환을 위해서 표면이 촉촉하게 젖어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조열(燥熱)이 생겨 시름시름 앓을 때 찬 성질을 이용해서 이를 제압하고 달달한 맛으로 폐를 촉촉하게 해주는데 이를 청폐윤조(淸肺潤燥)라고 한다. 각종 마른기침이 잦을 때 꿀에 볶아서 쓴다. 각종 스트레스로 간(肝)에 열이 차 있거나 간의 부속지인 눈이 열 받아 충혈되거나 사물이 두 개로 보이거나 어른거리게 보이고 맑지 않을 때 상엽의 찬 기운이 이를 제압해서 치료하는데 이를 청간명목(淸肝明目)이라 한다.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빛을 받아들여서 보게 되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열(熱)이 항상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눈이 머리에 있는 관계로 과로나 스트레스로 열이 위로 치솟으면 열이 눈에 누적이 되어 충혈되거나 발적되거나 핏발이 서게 된다. 안질의 핵심은 열(熱)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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