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 베네딕트’는 대학에서 인류학을 연구하다가 2차 대전 중인 1943년 미국 국무부 산하 전시정보국(OWI)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의 주요 임무는 교전상대국의 문화적 특징을 연구하여 미군의 전쟁 수행 또는 전후 대응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특히 전쟁 중에 일본군이 항복을 택하는 대신 쇄사슬로 서로의 몸을 엮은 채 마지막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결사 항전하는 옥쇄(玉碎)의 방법을 택한다든지, 물을 마시지 마라는 지휘관의 말 한마디에 물이 수통에 있는데도 목말라 죽는다든지 같은 비합리적 행동을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인의 문화를 알지 못하면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일본에 대한 점령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요구에 부응해서 베네딕트는 1945년 ‘일본인의 행동 패턴’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곧이어 전쟁이 끝나자 그는 이 보고서를 대폭 수정 보완해 1946년에 ‘국화와 칼’을 출간한다. 이 책은 베네딕트가 학술적 관점에서 저술한 작품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 이익이 개입된, 의도적 저술이다. 그는 일본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가치관을 하지(恥,수치심), 온(恩,은혜), 기리(義理,의리), 기무(義務,의무)라고 보았다. 일본은 하지(恥)를 극도로 싫어하는 민족이다. 나라, 부모, 스승 혹은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입은 ‘온’은 어떤 방법으로든 갚아야 하는 ‘기무’와 ‘기리’다. 이를 다하지 못하면 ‘하지’로 여겨 스스로 할복하거나 죽기까지 한다. 보편적인 가치에 반해서 비윤리적인 행위를 했을 때 세상의 질책을 받는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기무와 기리’를 이행하지 않아 세상으로부터 수치를 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을 은유적으로 사용해서 일본인의 이면성(二面性)을 잘 그려냈다. 국화는 일본인의 예술성, 예의, 충, 효 등 아름다움을 의미하며 그와 대조되는 이미지의 칼은 일본인의 무(武)에 대한 숭상을 나타낸다. 일본인을 뼛속깊이 알려면 이 책을 일독하기 바란다. 단국대 석사논문 ‘국화와 칼에 제시된 하지(恥)·온(恩)·기리(義理)·기무(義務)에 관한 연구-최병우‘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국화(菊花)는 일본 왕실문양이다. 참고로 조선왕실의 문양은 자두나무 즉 오얏나무 꽃인 이화(李花)다. 이씨 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의 이화(梨花)는 배꽃이다. 주역에서 9란 숫자는 태양 혹은 노양(老陽)이라 부른다. 양으로서 가장 끝까지 가서 이제부터는 음(陰)으로 접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노양인 9가 2번 겹치는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이 날 노란 국화를 따다가 찹쌀전 즉 화전(花煎)을 만들고 국화를 넣어서 만든 만두를 먹는가 하면 국화주를 함께 마셨다고 한다. 국화는 사군자에 속하며 많은 선비들의 문인화에도 등장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꽃이다. 국화는 가을날이 한참인 9월에서 11월에 채취하기 때문에 그 성질이 찰 수밖에 없다.

국화는 감국(甘菊) 금정(金精, 금의 정기), 야국(野菊)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어디에 가도 지천으로 널려 있다. 독은 없고 맛은 약간 차고 달고 쓰다.(微寒無毒甘苦) 폐경(肺經)과 간경(肝經)으로 약효가 발현된다. 발산풍열약인고로 풍열(風熱)로 인해서 발생한 각종 질환을 치료한다. 특히 풍열로 인해 땀을 흘리면서 오싹하게 추운 감기와, 두통, 또한 이와 동반한 어지럼증 등에 많이 쓰인다. 국화는 간경의 기운을 북돋아 간의 감각기관인 눈의 기운을 증진시켜 눈병을 다스리며 눈을 맑고 밝게 한다. 이를 양간명목(養肝明目)이라 한다. 그래서 눈이 핏발 서는 목적(目赤)과 눈 주위가 붓고 아픈 종통(腫痛), 눈에서 불꽃같은 것이 어른거리는 안화(眼花)에 쓰인다. 열을 꺼트리고 독을 해소시키는 청열해독 작용도 있다. 국화는 황국(黃菊)과 백국(白菊), 야국(野菊)이 있는데 모두 풍열(風熱)과 간풍(肝風)을 흩어서 해독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풍열을 흩는데는 황국이 좋고 눈을 맑게 하는 데는 백국이 탁월하고 열독에 의해서 붓고 쑤시고 아픈 데는 야국이 좋다. 지금 체온을 넘어서는 더위가 맹위를 떨치지만 그 안에는 이미 추운 일음(一陰)이 싹 터고 있으니 국화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우리의 아름답고 풍성한 가을을 기다려보자.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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