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막국수 투어’ 해볼 만…100% 메밀 막국수ㆍ냉면 ‘특별한’ 집들


오는 8월 16일, 말복이다. 여름의 끝, 더위의 마지막 자락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시원한 음식, 냉면, 막국수 등을 찾는 이도 많았다. 냉면은 평양, 막국수는 강원도라고 말한다. 서울이 빠질리 없다. 모든 음식은 서울로 모여든다.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맛본 이는 드물다. 평양냉면은 평양보다 서울에서 더 뜨겁다. 여름의 끝,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지에서 돌아온 계절. 서울에서 ‘평양냉면, 막국수 투어’를 하는 것은 어떨까?

왜 평양냉면, 막국수인가?

휴가지에서 돌아왔다. 혹은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 아직 서울에 있다. 여름 휴가철,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서울의 국수 투어’를 권한다.서울은 국수에 관한 한 독보적이다. 막국수, 냉면뿐만 아니라 이탈리안 파스타까지, 서울이 강세다.

국수는 문명권 대부분의 나라에서 소비된다. 유럽의 파스타, 동양의 국수다. ‘면(麵)’이라고 쓰면 국수뿐만 아니라 밀가루 음식 혹은 곡물의 가루음식 모두를 아우른다. 일본의 소바, 중국의 도삭면, 한국의 수제비도 포함한다.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 귀한 음식은 귀한 행사에 사용한다. 인간은 평생 네 번의 큰 ‘행사’를 치른다. 관혼상제(冠婚喪祭)다. 성인이 되고 혼례를 치른다. 돌아가시면 상을 치르고 매년 제사를 모신다.

관혼상제는 귀한 행사이니 귀한 음식인 국수를 내놓는다. 결혼하는 일을 두고 “언제 국수 먹여줄래?”라고 묻는 이유다. 국수가 귀하던 시절, 결혼식에서는 반드시 국수를 손님맞이 음식으로 내놓았다. 가난한 서민들은 일상적으로 국수를 먹을 수 없었다. 귀한 결혼식에서나 국수를 먹었다. 제사도 마찬가지. 조상을 모시는 일이니 귀하디 귀하다. 제대로 된 제사에는 국수가 빠지지 않았다. 지금도 경북 안동 지방에서는 ‘국수 제사’를 모신다. ‘밥 대신 국수’가 아니라 밥도 놓고 국수도 놓는다.

일제시대 냉면 배달 풍경을 묘사한 그림. '벽제갈비'의 벽면에 있다.

일제강점기 냉면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음식이었다. 위로는 의주, 신의주부터 아래로는 경남 의령까지, 어디서나 냉면을 먹었다. 서울도 마찬가지. 일제강점기 서울에는 ‘한밤중 냉면 배달’이 흔했다. 한밤중에 냉면 먹고 식중독에 걸려 처남, 매부가 연이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평양냉면의 신화는 일제강점기 평양에 냉면 문화가 널리 퍼졌고 한편으로는 평양에 냉면 공장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평양에는 냉면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가게가 많으니 종사하는 인원도 많았다. ‘평양냉면 가게 주인들(상인조합)’ ‘냉면 뽑는 면장(麵匠)들’ ‘냉면배달부들’이 각각 조합,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임금인상, 고용 안정을 조건으로 파업을 하는 일도 잦았다. 파업이 길어지고 과격해지니 당시 경찰이 개입하는 일도 있었다.

국수 내리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벽제갈비 벽면에 있다.

평양냉면은 평양에서 냉면이 시작되면서 생긴 현상이 아니다. 평양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냉면 중 평양냉면이 유독 강세를 보이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평양에서 냉면이 널리 소비되었고 냉면 제조 공장 등 ‘냉면 산업’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서울에는 ‘평양에서 온 냉면집’들이 흔했다. ‘서울 냉면’이나 평양냉면을 내놓는 집들이 많았다. 당시 냉면 집은 마치 국수 가락 같은 하얀 수술을 크고 길게 만들어 가게 앞에 내걸었다. ‘국숫집’임을 표시한 것이다. 남산에서 발치 아래의 청계천을 바라보면 그 수술들이 마치 큰 파도같이 보였다고 전해진다.

서울에서 100% 메밀국수를 찾는다

100% 메밀로 냉면, 막국수를 내놓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 40∼50년 전만 하더라도 ‘원형 100% 메밀 막국수’는 강원도 산골에 흔했다. 100% 막국수는 슬픈 음식이다. 먹고 싶어서 100% 막국수를 먹었던 것은 아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는 제분 시설을 갖춘 곳이 드물었다. 전기가 귀하던 시절이니 기계가 있다고 해도 사용이 불가능했다. 메밀 이외 밀가루나 전분은 모두 귀했다. 메밀 100%를 원해서가 아니라 밀가루나 전분이 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메밀 100% 막국수였다.

어린 시절을 강원도 평창 횡계에서 보낸 권오복 씨(강원도 강릉 ‘권오복분틀메밀국수’ 대표)는 오래 전의 강원도 산골 메밀국수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국수 내리는 모습.

“국수를 뽑으려면 가루를 만들어야지요. 메밀을 맷돌에 갈아서 타갭니다. 타갠 메밀을 디딜방아에 찧어서 메밀가루를 얻었습니다. 고운 체로 내리면 고운 가루가 나오지요. 나머지 찌꺼기들은 다시 몇 번이고 찧어서 가루를 냈지요. 이 가루를 모아서 분틀로 국수를 뽑아서 메밀국수를 만들었습니다. 물에 담그면 국수 가락이 툭툭 끊어졌지요. 원래 메밀국수는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떠먹었습니다. 국수지만 툭툭 끊어지니 숟가락으로 퍼먹었지요.”

기계가 달라지고 기술이 발전했다. 맷돌과 디딜방아 대신 메밀 제분기가 나왔다. 고운 가루를 얻는 것은 한결 쉬워졌다. 메밀은 점도가 약하지만 가루가 고우니 국수 만들기는 한결 편해졌다. 10여전 전부터 군데군데 메밀 100% 메밀국수가 등장했다.

100% 메밀국수, 냉면과 막국수가 가능하다면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 메밀 100%가 좋다는‘면스플레인’이 아니다. 100%가 가능한데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아직도 ‘메밀 100% 막국수, 냉면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100% 메밀을 사용하는 집들을 찾아가서 음식과 음식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한번쯤 이야기를 들어볼 일이다.

서울의 100% 메밀, 막국수 5집과 냉면 집 4곳

서울에서 100% 메밀 막국수를 처음으로 상품화한 곳은 강서구 방화동의 ‘고성막국수’다. 위치도 상당히 외진 곳이다. 인근 동네의 주민이 아니라면 내비게이션 없이는 찾기 힘든 곳이다.

방화동 ‘고성막국수’

100% 메밀 막국수에 곁들이는 동치미도 아주 좋았다. 메밀 면 추가가 번거로웠다. 100% 메밀의 경우, 작은 양을 별도로 삶기는 퍽 힘들다. 100% 메밀 막국수의 경우, 생면 스타일이 있고 숙면 스타일이 있다. 면 반죽을 바로 해서 바로 국수로 뽑는 생면과 하루 전날 밤 혹은 당일 이른 아침에 반죽한 후, 일정 시간 보관, 숙성한 것으로 면을 뽑는 경우다. 주문받을 때마다 면 반죽을 새롭게 하는 경우, ‘메밀 사리 추가’는 퍽 번거롭다.

여전히 호평을 받고 있지만 손님이 늘어나면서 동치미가 점점 더 단맛을 낸다는 불평도 있다. 단맛은 대중적인 기호를 위한 것이다. 어느 정도 단맛과 동치미 특유의 쿰쿰하고 시원한 맛으로 균형을 잡을는지는 가게 측의 판단이다.

강동구청 부근의 ‘화진포막국수’

는 이른바 숙면(熟麵) 혹은 숙성면(熟成麵)을 사용하는 집이다. “메밀은 잘 삭기 때문에 반죽하자마자 바로 국수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메밀 면을 직접 만드는 이들 중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는 않다. ‘화진포막국수’의 경우 메밀 반죽을 하룻밤 재운다. 늦은 밤 시간에 반죽을 하고 이 반죽으로 다음날 메밀 막국수를 뽑는다. 면

삶은 시간 등을 적절히 조정하여 상당히 부드럽고 고소한 맛의 메밀 100% 막국수를 내놓고 있다. 메밀도 곡물이다. 숙성하면 부드러워지고 곡물 특유의 고소한 맛은 짙어진다.

망원동의 ‘홍대 장원막국수’

는 ‘새색시같이 단아한 막국수’를 내놓는 곳이다. 깔끔한 메밀 100% 막국수를 모양새 좋게 내놓는다. 모양새나 색깔의 조합 모두 좋다. 주인이자 주방장은 편집 디자이너 출신이다. 음식을 ‘디자인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장원막국수’의 본점인 ‘홍천 장원막국수’ 대표가 사촌형이다. 홍천에서 주방 일을 하면서 100% 막국수를 배웠고 다른 곳에서 ‘장원막국수’ 분점을 낼 때도 일손을 보탰다.

수육도 수준급이고 감자전도 아주 재미있다. 감자를 강판에 가는 대신 곱게 채 썰어서 전으로 붙였다. 아삭한 식감이 별미다.

역삼동 ‘백운봉막국수’

는 선릉역 부근에서 시작해서 강남의 메밀 100% 막국수를 선도한 곳이다. 입구에 메밀 제분 맷돌이 있다. 다른 곳의 맷돌과 비교해도 상당히 큰 크기다. 전기형 맷돌도 가능하면 큰 것이 좋다. 곱게 갈리고 생산량도 많다.

주방에서 일하는 인력들이 오랫동안 이 식당에서 일을 한 이들이다. 주방이 안정적이니 막국수의 맛도 수준급이다. 열무김치나 동치미 등을 육수로 사용하는 막국수를 권한다.

스페인산 돼지 등을 이용한 돼지고기 관련 메뉴도 특이하다. 저녁시간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것은 ‘점심식사+저녁 술자리’에 맞는 메뉴의 조합이 적절하다는 뜻이다.

방배동 ‘양양메밀국수’

방배동의 ‘양양메밀국수’는 강원도 양양 출신의 주인이 주방을 맡고 있다. 다른 곳의 메밀 막국수와는 질감이 확연히 다르다. 면 질감이 상당히 거칠고 뻑뻑하다. 숨죽이지 않는 강원도 산골의 떠꺼머리총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면이 순박, 우직하다. 뻑뻑하고 찰진 느낌의 면은 반죽 배합 시 물의 양을 줄이거나 삶은 시간을 줄였을 때 나타난다.

이 집에서는 명태회무침을 맛봐야 한다. 비빔 막국수를 주문하면 나오는 명태회무침은 명태식해의 또 다른 버전이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벽제갈비 봉피양

‘100% 메밀 냉면’은 막국수에 비하여 활성화되지 않은 편이다. ‘벽제갈비-봉피양’에서 100% 메밀 냉면을 내놓는다. ‘우래옥’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벽제갈비’로 옮긴 김태원 장인이 ‘벽제갈비’로 이직한 후 개발한 것이다. 서울에서 100% 메밀 냉면을 만든 것은 ‘벽제갈비’가 시초로 알려졌다. 우직스럽게 유기 냉면 그릇을 사용하고 쇠고기 등으로 육수를 낸다.

방이동 본점에서는 늘 맛볼 수 있지만 분점 형태의 ‘봉피양’에서는 계절 별로 메밀의 농도를 조절한다. 여름 성수기에는 방이동에서만 100% 메밀 면을 내놓는다. 가격이 높다는 점을 제외하면 불평이 없다.

역삼동 '평양옥'

강남 역삼동의 ‘평양옥’은 냉면 업계의 신흥강자다. 가게 안에는 맷돌 제분기를 두고 주인이 주방을 총괄한다. 맷돌제분기에 속도계가 달려 있다. 메밀은 열에 약하다. 메밀에 열을 더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낮은 속도로 맷돌을 돌린다. 투 플러스 등급의 한우로 육수를 내고 삶은 고기는 수육으로 내놓는다. 불고기도 수준급이고 겨울철 메뉴로 준비 중인 ‘만두전골+동해안 식해’도 재미있다.

문을 연지 5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주인 겸 주방 책임자의 경력은 30년을 훨씬 넘겼다. 냉면이나 육수 등은 흠잡을 곳이 없다.

공덕로터리 '무삼면옥'

공덕로터리 부근의 '무삼면옥'은 우직한 돌직구 스타일의 메밀 100% 국수를 내놓고 있다. 막국수인지 냉면인지 정확하게 가늠하기는 힘들다. 좁은 공간에서 꾸준히 실험하고 조금씩 변화, 발전하고 있다. 순박한 맛의 메밀 면이다.

광명 '정인면옥'

‘정인면옥’은 원래 주인이 여의도로 옮기고 광명 정인면옥의 주인은 바뀌었다. 특이하게 ‘광명 정인면옥’은 주인이 바뀌고도 음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는 면에서는 ‘달라져서 고맙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다.

한여름 성수기를 지나면 100% 메밀 냉면을 내놓는다. 공간이 좁아서 많은 이들이 바깥에서 긴 줄을 서곤 한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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