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자유로운 '혼돈반'…中 '골동반', 日 '가마메시'와 달라

중국 기록보다 앞서…지역 따라 '비빈 밥' '비빔 밥' 등 변화ㆍ진화

서울 상암동에 있는 한식당 '차림'이다. 진주비빔밥을 서울에서 재현했다.
비빔밥은 중국 골동반과 다르다

‘골동반’은 명나라 동기창(董其昌)의 <골동십삼설(骨董十三說)>이란 책에 나온다. 뒤섞은 것을 ‘골동(骨董)’이라고 썼다. 동기창은 16세기-17세기 중엽의 인물이다.

이보다 앞선, 우리 측의 ‘비빔밥’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이름은 다르다. “전임(田霖, ?∼1509년, 중종 4년)이 대답하기를, ‘오직 공께서 명하시는 대로 먹겠습니다’ 하니, 곧 밥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비빔밥과 같이 만들고 술 세 병들이나 되는 한 잔을 대접하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우고 단숨에 그 술을 들이켰다.”

조선 인조 때 박동량이 기술한 <기재잡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원문에는 ‘비빔밥’을 ‘混沌飯(혼돈반)’이라고 표기했다. “민간에서 말하는 이른바 ‘혼돈반’같이(如俗所謂混沌飯, 여속소위혼돈반)”라는 표현이다. 혼돈반은 ‘뒤섞은 밥’이다. “밥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라고 했다. 혼돈반은 비빔밥이다.

전임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위의 내용은 전임이 갓 벼슬살이를 했을 때의 이야기다. 전임은 1482년(성종 13년) 전주판관이 되었다. 15세기 후반 고위직 벼슬살이를 했으니 위 내용의 시기는 15세기 중반 무렵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전임의 혼돈반’은 명나라 동기창의 ‘골동’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

한반도의 비빔밥은 중국 측 기록에 앞서 오래 전부터 있었다. 문서상의 한자 표기가 ‘骨董飯, 골동반’이었을 뿐이다.

19세기 기록물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야외에 나갈 때 준비했던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도 중국 골동반의 일종이다. 반유반은, 밥을 지을 때 생선이나 고기 등을 미리 넣고 쌀을 안친 것이다. 중국 골동반의 소풍용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반유반 역시 우리 비빔밥과는 다르다. 생선, 고기 등을 미리 넣고 밥을 짓는다고 했지 그걸 섞어 먹는다는 이야기는 없다.

서울 여의도의 한식집의 비빔밥이다. 나물을 골라 담을 수 있게 별로도 내놓았다.
비빔밥은 일본 가마메시와 다르다

일본 ‘가마메시’가 우리 비빔밥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 않다. ‘가마메시(釜飯, 부반)’는 중국의 골동반이나 <동국세시기>의 반유반과 거의 흡사하다. ‘가마(가마솥)에 지은 밥’이라는 뜻이다. 쌀을 안칠 때 육수를 넣고, 작은 가마솥 위에 새우나 작은 생선 등을 얹는다. 밥을 짓다가 마지막에 작은 푸른나물 등을 얹어서 내온다.

‘가마메시’는 비빔밥이 아니다. 가마메시는 비벼 먹으면 안 된다. 양념을 얹어서 살살 떠먹어야 한다.

일본 가마메시나 중국 골동반은 ‘비빈다’는 행위가 없다. 섞어서 밥을 짓는다는 정도다. 우리나라의 콩나물밥이나 무밥과 비슷하다. 콩나물밥이나 무밥은 가마메시, 중국 골동반, 반유반처럼 미리 식재료를 같이 안쳐서 밥을 짓는다. 그러나 콩나물밥, 무밥도 가마메시와는 다르다. 콩나물밥은 비벼 먹는다.

일본인들은 비빔밥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린다. 미국 뉴욕에 비빔밥 광고판이 걸렸을 때 일본의 유명 언론인 구로다 가쓰히로는 “비빔밥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음식”이라고 했다. ‘양두구육’은 “양머리를 걸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비빔밥은, 겉은 아름답고 화려한데 막상 먹을 때는 뒤섞어 엉망인 음식이란 뜻이다. 음식의 모양새를 귀중하게 여기고 알록달록한 색상을 최고로 치는 일본 식 발상이다. 일본 가마메시는 섞어 먹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형태가 무너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먹어야 한다.

소박한 가정식 비빔밥이다. 간장으로 비비는 '헛제삿밥' 스타일의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진화한다

모든 음식은 변화한다. 때로는 발전, 진화한다. 비빔밥도 변화, 진화하고 있다. 문제는 오늘날의 비빔밥이 오래 전의 비빔밥에 비하면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비빔밥은 예전보다 더 다양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

오주 이규경(1788-1856년)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여러 종류의 비빔밥을 이야기한다. 오이비빔밥도 있고 각종 생선, 새우 비빔밥도 있다. ‘새우 알 비빔밥’이란 표현을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황두비빔밥은 아마도 콩나물 비빔밥일 것이다. 김 가루, 게장, 달래 등도 비빔밥의 재료, 고명으로 썼다. 오늘날 같이 육회 비빔밥만이 대단한 것인 양 내세우지 않았다. 각 지방의 특산물을 소개하면서 “평양의 감홍로(甘紅露), 냉면, 골동반(骨董飯)”이라고 이야기했던 걸 보면 당시에는 냉면과 더불어 비빔밥이 평양의 주요 먹거리였음은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빔밥의 종류만 나열할 뿐 특정 지방의 특정 비빔밥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특정 지방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다양한 비빔밥을 먹었다는 뜻이다.

동해안의 어느 횟집에서 내놓는 전복비빔밥이다. 화려한 비빔밥인 셈이다,
예전에는 다양한 비빔밥이 있었음에도 오늘날에는 비빔밥이 단순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밥을 정성들여 짓는다. 고기는 재워서 볶고 간납(간전)을 부쳐서 썬다. 각색(여러 종류)나물을 볶아놓고 좋은 다시마로 튀각을 튀겨서 부숴놓는다. 밥에 만든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계란지단을 붙여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는다. 고기완자는 곱게 다져 잘 재워 구슬만큼씩 빚은 다음, 밀가루를 약간 묻혀 계란을 씌워 부쳐 얹는다. 비빔밥 상에 장국은 잡탕국을 쓴다.”

위 내용은 19세기 말 기술한 것으로 알려진 <시의전서>의 비빔밥 부분이다. 문제는 19세기 말이라는 시점이다. 나라가 무너지는 시기다. 미처 음식에 대해서 분별할 여유가 없다. 제대로 헤아리지도 가리지도 못했다. ‘무분별하게’ 외국 풍조를 받아 들였다. 음식도 마찬가지. 아무런 헤아림 없이 외국 것을 받아들였다.

고기가 비교적 흔해졌다고 하지만 19세기 말에 비빔밥을 만들면서 간납, 고기완자, 계란지단, 다시마튀각 등을 흔하게 사용하는 이는 드물었을 것이다. 화려하다.

이 책에서 ‘골동반’을 ‘부ㅂㅢㅁ밥’이라고 최초로 한글로 표기했다고 알려졌다. 비빔밥을 이야기하면 늘 “시의전서”를 들고 나오는 이유다. 이 부분도 틀렸다. 비빔밥에 대한 한글 표기는 그 이전에 이미 있었다.

이이엄 장혼(1759∼1828년)의 “몽유편(蒙喩篇)”에 이미 비빔밥은 ‘브뷔음’이라는 표기로 나타난다. 장혼은 당대의 여항문인(閭巷文人)으로 민간의 삶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겼다.

무채비빔밥이다. 무채는 잘 삭은 동치미를 잘게 썬 것이다. 무채, 된장, 고추장이 고명, 양념의 전부다.
비빈 밥인가, 비빌 밥인가?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 가면 이른바 황등비빔밥 전문점이 몇몇 있다. 한때 ‘비빈 밥’인가, ‘비빌 밥’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미리 비벼서 내놓는 밥인가 아니면 밥에 고명을 얹어서 내놓으면 스스로 비벼서 먹는 밥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등장한 전임의 혼돈반은 비빌 밥이다. 맨밥에 생선, 채소 등을 얹고 전임이 스스로 비빈 다음 두어 숟가락 만에 그 많은 양을 다 먹었다고 했다. 그나마 전임이 밥을 먹은 장소가 고위 관료의 집이었기에 생선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일반적인 비빔밥은 간단한 채소와 장류 등을 얹은 소박한 것이었음 짐작할 수 있다. 비빔밥은 ‘비빌 밥’이었다.

“시의전서”의 비빔밥은 명백하게 비빈 밥이다. 여러 가지 화려한 고명을 넣고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낸다고 했다. 비빈 다음 고명을 또 올린다. 고명도 화려하다. 계란지단을 붙여서 골패 짝만큼씩 썰어 얹고 고기완자도 얹는다. 고기완자는 곱게 다진 다음 구슬만큼 빚은 후,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을 씌워서 부친다. 그런 다음 얹는다.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전임과 “시의전서” 중간의 비빔밥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생선이 등장하지만 <시의전서>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평양비빔밥이 유명하지만 채소 비빔밥이라고 설명한다.

황등비빔밥을 유심히 보는 것은 비빌 밥이 아니라 <시의전서>와 비슷한 ‘비빈 밥’이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의 ‘진주비빔밥’은 ‘비빌 밥’이다. 시장 통의 비빔밥이다. 일제강점기 초기 진주 중앙시장의 나무전 거리에서 팔았던 서민적인 음식이다. “시의전서”의 비빔밥과도 다르다. 소박하다.

오래된 진주의 ‘비빌 밥’과 황등의 ‘비빈 밥’ 그리고 어중간한 전주중앙회관의 비빔밥을 보면서 비빔밥의 변화와 진화를 생각한다. ‘비빈 밥’과 ‘비빌 밥’을 통하여 그리고 고명의 다양함을 통하여 비빔밥은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비빔밥 맛집 4곳

진미식당

전북 익산시 황등면 황등시장에 있는 ‘황등비빔밥’ 전문점이다. 황등시장 언저리 몇몇 비빔밥 전문점 중 업력이 가장 길다. 비빈 밥 형태. 내놓기 전 일일이 ‘불질’을 한다.

백만석

경남 거제도에 있는 멍게비빔밥 전문점이다. 이 지역 특산물 중 하나인 멍게를 넣은 것. 멍게 철뿐만 아니라 냉동 상태의 멍게를 이용한 비빔밥이 사시사철 가능하다.

초성공원

경기도 고양시 일산 부근의 보리비빔밥 전문점이다. 큰 바가지에 보리밥을 담아준다. 먹는 이가 스스로 여러 가지 채소를 얹어서 비비면 된다. 장도 수준급이다.

전주중앙회관

작은 솥에 밥을 지어서 내놓는다. 큰 그릇에 밥을 푸고, 나물을 얹어서 주인이나 종업원이 비벼준다. 비빈 밥과 비빌 밥의 중간형태인 셈이다. 수준급의 비빔밥이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