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문화’ 세계 무형문화유산 인정… ‘김장김치’는 김치의 최고봉

강화도 명물 순
김장철이다.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도 많다. 김장을 하든, 하지 않든, 늦가을, 초겨울이면 한국인들은 김장, 를 떠올린다. 더 이상 김장을 하지 않는 이들은 괜스레 ‘변명’을 한다. “김장을 하기 어려워져서 이젠 김치를 사먹기로 했다”고. 시판 김치가 오히려 싸고 맛있을 때도 있다. 그래도 김장을 하지 않으면 왠지 어색하다. 한국인들의 핏속에 녹아 있는 김장, 김치를 알아본다.

김장김치
김치? 한국인의 고유, 전통 음식이다?

그렇지 않다. 김치가 우리의 전통, 고유 음식이 아니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김치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제로도 등록된, 한국의 고유문화인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유네스코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한 것은 김치가 아니라 한국의 김장 문화다. 정확하게는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고 나누는 행위(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다.

김치의 범위는 넓다. 흔히 보는 배추, 부터 장아찌와 각종 채소 절임 음식도 모두 김치다. 그중 겨울철 가 있다. 는 김치의 최고봉이다.

배추김치
절인 채소는 동북아시아 세 나라에 널리 있었다. 일본에는 지금도 오신코(oshinko), 쓰케모노(tsukemono) 등이 흔하다. 오신코의 ‘신코’는 ‘新香(신향)’이다. 채소를 절이면 새로운 향과 맛이 난다는 뜻이다. 츠케모노는 ‘漬物(지물)’이다. 말 그대로 ‘절인 것’ ‘조미액에 담근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식초, 간장 절임이나 장아찌와 비슷하다.

채소절임에 대한 기록은 중국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시경>에 “울밖에 오이가 열렸다. 오이지 담기 좋겠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오이지를 담아서 조상에게 헌신하면 후손이 잘된다는 내용이다.

농담 삼아 하는 말로, “김치가 한국 고유, 전통이라고 하다가 중국이 ‘김치공정’이라도 시작하면 어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기록문화가 있었다. 오이를 절여서 만든 오이지는 기록상으로는 중국이 오래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김치, 절임 채소가 중국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에도 늦가을, 집집마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김치를 담그는 일은 없다.

무김치
전통적인 ‘고유’의 채소는 없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다. 한반도는 문화의 용광로다. 대륙과 바다를 통해 들어온 모든 것들을 녹인 후, 한반도에 있었던 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든다. 음식, 음식문화도 그러하다. 우리 고유의 것, 전통적인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우리 것과 외부에서 전래된 것들을 잘 섞고 녹여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한반도의 힘이다.

김치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채소는 배추다. 배추도사, 무도사는 만화의 소재로도 등장했다. 친근하다. 배추는 우리 고유의 것일까? 그렇진 않다. 우리 땅에도 배추는 있었다. 어디가 먼저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추는 여기저기 있었다. 중국에서도 배추는 널리 사용되었다. 문제는 질이다. 조선말기까지도 “중국 배추가 좋다” “중국에서 배추 씨앗을 사려고 했는데 마침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다”는 기록들이 나타난다.

배추를 이용한 여름철 물김치
작자 미상의 <부연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시기는 1828년(순조 28년)이다. 글을 쓴 이는 중국 사신단의 일원이다.

(전략) 또 40리를 가 옥전현(玉田縣) 성 밖에서 잤다. 연왕(燕王)의 무덤이 무종산(無終山)에 있다 하며, 이 지방의 숭채(?菜) 종자가 연경(燕京)에서 제일이라 한다.(6월 5일)

옥전현(王田縣) 성 밖에서 잤다. 숭채(?菜) 종자를 구하려는데, 들으니 그 값이 우리나라 저자에서 쓰는 되[斤] 1되에 중국 돈 4냥이라 하므로 마침 돈이 떨어져서 구득하지 못하였다.(8월 16일)

이 글의 ‘숭채’는 배추다. 6월과 8월, 두 달 넘는 기간이다. 배추는 자주 나타난다. 숭채, 배추, 백채, 배초가 같은 식재료, 오늘날의 배추다. 중국으로 간 사절단 일행 중에도 ‘중국 배추 씨앗’을 구하려는 이들이 있었다. 사고 싶으나 돈이 없어 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19세기 초중반까지도 오히려 중국 배추가 우리 것보다 나았다.

갓김치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죽란물명고(竹欄物名考)>에서 “숭채(?菜)는 방언으로 배초(拜草)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백채(白菜)의 와전이며, 내복(萊?)은 방언으로 무우채(蕪尤菜)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후채(武侯菜)의 와전”이라고 했다.

숭채, 한글로 배초라고 부른 것은 중국 백채의 와전임을 이야기한다. 무는 ‘무우’, ‘무후채’에서 비롯되었다. ‘무후’는 중국의 삼국시대 ‘촉의 무후’ 제갈공명이다. 제갈무후가 즐겨 먹었다고 해서 무후가 좋아했던 채소 곧 무후채가 된 것이다. ‘무후’가 ‘무우’가 되고 지금의 표준어인 ‘무’가 되었다.

역시 다산 정약용은 <다산시문집(3권)>의 “장난 삼아 서흥도호부사 임성운에게 주는 시”에서 “납조냉면에 숭저가 푸르다(拉條冷麵?菹碧)”는 구절이 있다. ‘숭’은 배추, 저(菹)는 김치다. ‘숭저’는 다. 다산의 시대에는 오늘날의 봄동 혹은 얼갈이배추 같은 품종이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잎이 푸르니 “가 푸르다”고 표현했다.

파김치
배추 품종은 완전히 달라졌다. 조선시대 배추는 지금의 우리 배추와는 다르다. 현재 김장에 사용하는 배추는 결구배추다. 속고갱이가 노랗다. 맛도 달고 식감도 아삭하다. 결구배추가 한반도에서 재배된 것도 불과 60년 남짓이다. 조선시대 배추는 ‘비 결구배추’였다.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는 1950년 무렵 귀국, 1954년에 결구배추인 ‘원예 1호’를 개발, 발표했다. 한반도의 첫 결구배추다.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 ‘결구배추’ ‘강원도의 돌 많고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감자’ 등을 개발, 발표한 기간은 불과 9년 남짓이다. 당시 일본의 육종학은 한반도보다 앞섰다. 좋은 배추 품종도 많았다. 우장춘 박사의 ‘원예 1호’도 계속 발전했다. 우리가 지금 김장에 사용하는 배추는 60여 년 전과 비교해도 전혀 다른 것이다. 외국 것이 들어오고, 한반도의 배추도 진화, 발전한다.

마늘, 생강 등도 100∼200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달라진 재료로 김치, 김장을 하고 있다. 예전 음식을 만들기 힘든 이유다.

홍어와 어울리는 묵은 김치
싱싱한 것은 좋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

흔히 “한식은 제철에 나오는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여 만든다”고 표현한다. 그럴듯하지만 틀렸다. 세상의 모든 음식은 싱싱한 식재료를 사용한다. 사계절이 두렷한 한반도는 오히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기 힘들다. 벌판이 다 숨을 죽인 겨울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강물도 얼고, 바다 조업도 힘들고, 벌판은 텅텅 비었다. 싱싱한 식재료가 나지 않으니 굶을 것인가? 곡식도 마찬가지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창고에 곡식을 쌓아둔다. 두어 달 묵고 나며 싱싱한 식재료는 아니다. 그렇다고 굶을 것인가?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
싱싱한 식재료는 동남아 등 열대, 아열대 지방에 맞는 표현이다. 한식은 제철에 사용되는 싱싱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아니다. 채소도 싱싱한 생채(生菜)는 피했다. 한식은 재료를 귀하게 여긴다. 열매, 잎, 줄기, 뿌리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귀하게 사용한다. 한국은 발효음식이 발달한 나라다.

겨울철, 채소를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움에 묻어둔다. 움에 묻어둔 채소는 몇 달을 싱싱하게 버틴다. 우거지, 시래기로 만든다. 채소의 웃자란 부분은 우거지다. 겨울바람에 말리면 시래기가 된다.

또 다른 방법은 발효, 숙성시켜 저장하는 것이다. 한겨울의 추운 날씨와 바람 그리고 고추와 소금이 어우러져 발효, 숙성한다. 채소는 새로운 맛으로 변한다. 이른바 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의 맛에 길들여 있다. 싱싱한 채소로 만족하면 김장, 는 필요치 않다. 싱싱한 채소에서는 곰삭은 맛, 감칠맛이 나지 않는다.

김치찌게 최고의 짝궁은 라면이다.
한겨울, 싱싱한 채소를 먹기 위하여 김치를 담근다는 이야기는 틀렸다. 채소가 흔한 여름철에도 김치를 담근다. 겨울엔 동치미, 여름엔 나박김치다. 겨울 김장도 좋지만 여름철 겉절이도 좋다. 도 좋지만 여름철 열도 맛있다. 각종 장아찌 등 여름철 절임채소, 삭힘 채소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채소를 먹기 위하여 겨울 김장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한겨울에도 채소가 흔해진 시대를 살면서도 늦가을이면 김장을 고집하는 이유다.

조선 중기의 예학 사상가 사계 김장생(1548-1631년)의 <사계전서> 제41권 ‘시제(時祭)’에서는 “이른바 세 가지 소채(蔬菜o 채소)라는 것은 침채(沈菜)와 숙채(熟菜)와 초채(醋菜) 따위가 그 속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漬), 저(菹), 침채(沈菜), 초채(醋菜) 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분분하다. 글자의 내용만으로 보면 ‘초채’는 ‘초+채소’다. 오늘날의 피클, 초절임 음식이다. ‘침채’는 대략 김치의 원형으로 본다. 식초 등을 더하여 빨리 삭힌 것이 아니고 소금물 등에 넣어서 긴 시간 발효, 숙성시킨 것이다. 김장생은 16∼17세기에 살았다. 그가 남긴 기록에 이미 초채, 침채가 다르다고 했다. 한반도의 삭힌 음식, 김치는 이토록 다양했다.

[김치, 김치찌개 맛있는 집 4곳]

명천슈퍼/전북 김제

전북 김제군에 있는 작은 동네 가게다. 들판 한 가운데 있는 특이한 가게인데 돼지고기와 김치찌개 등을 내놓는다. 인근 주민들이 손님이지만 김치찌개 수준은 ‘전국구’다.

굴다리김치찌개/서울 마포구

보기 드문 김칫국 스타일의 김치찌개다. 미리 푹 끓인 김치찌개를 손님마다 한 그릇씩 퍼준다. 양도 넉넉하다. 제육볶음과 더불어 주문하면 푸짐하다.

처갓집식당/전남 여수

여수 향일암 오르는 가파른 길에 있다. 뿐만 아니라 밥상의 모든 반찬이 밥도둑이다. 김치만 서너 종류 뺙醮쨈? 그중 가 압권. 묵은지 종류도 아주 좋다.

고냉지식당/서울 신촌

신촌 기차역 앞 작은 골목에 있다. 이름부터 특이하다. ‘고냉지’를 달았다. 고랭지 채소는 평지 것보다 맛이 낫다. 고랭지 김치찌개와 수육, 밑반찬도 좋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