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은 음의 계절에 양을 더해 ‘평(平)’을 향하는 진정한 보양식

왜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을까? 보양은 흔히 ‘補陽(보양)’ ‘保養(보양)’으로 표기한다. 오늘날 우리는 ‘양’을 더하자는 것인지, 보호하고 잘 보살펴준다는 뜻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섞어버렸다. 비슷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앞의 ‘보양(補陽)’은 지향점이 ‘평(平)’, 즉 균형이다. 양의 계절에 음을 더해주고, 음의 계절에 양을 더해주는 것이다. 음양의 조화로움을 통해 끊임없이 ‘평’을 향한다.

팥죽은 양의 기운을 더해주는 진정한 보양식

여름은 양의 계절이다. 음을 더해주어야 한다. 여름에 얼음을 찾는 이유다. <세종실록>에서도 “얼음은 음양의 부조화를 고르게 하는 데도 관계가 있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양의 여름’과 ‘음의 얼음’이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아무리 더워도 얼음이나 차가운 것을 많이 섭취하면 탈이 난다. 음이 양의 성질을 넘어선 것이다.

‘보양(保養)’은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쉬게 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소화가 잘 되는 고단백질, 고열량의 식품은 지치고 허기진 몸을 ‘보양’한다. 오늘날의 보양식은 이 두 가지를 뒤섞은 것이다. 여름철에 먹는 민어, 장어, 삼계탕, 개고기, 자라 등은 모두 두 가지 보양을 뒤섞은 음식들이다. 더운 양의 계절에 또 양을 더한 것이다.

양의 음식은 무엇이며 언제 먹는 것일까? 양의 음식은 음이 강할 때 먹어야 한다. 음이 극대화된 동짓날에 양의 음식인 팥죽을 먹는 이유다.

동짓날은 왜 ‘음’일까? 동지(冬至)는 양력 12월 22, 23일 경이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길고 상대적으로 낮이 가장 짧을 때다.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다. 동지는 ‘겨울이 한창일 때’라는 뜻이다. 겨울은 ‘음’이다. 추위도 ‘음’이다. 밤도 ‘음’이고 당연히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동지는 음이 극대화된 시기다. 겨울, 추위, 밤이 모두 음이니 양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기생 황진이의 시조에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내어”라는 부분이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은 긴 부분의 한 허리를 베어내어도 될 정도로 길고 길다.

팥은 양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양의 성질을 지닌 팥으로 음이 극대화된 동지를 지낸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이유다.

우리 선조들은 팥을 ‘소두(小豆)’라고 불렀다. ‘작은 콩’이라는 뜻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하늘에서 우박이 내렸는데 그 모양이나 크기가 마치 소두 같았다”는 표현이 군데군데 나온다. 팥은 색깔이 붉다고 해서 우리 선조들은 ‘적소두(赤小豆)’라고 불렀다.

중국인들은 팥죽을 ‘홍더우저우(紅豆粥, 홍두죽)’이라고 부른다. 붉은 콩, 즉 팥으로 끓인 죽이니 같은 팥죽이다. 홍이나 적 모두 붉은 색이다.

우리 선조들은 ‘보양(補陽) 음식’인 붉은 팥죽마저도 절제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46년(1770년) 10월 8일의 기사다. “(전략) 또 동짓날의 팥죽은 비록 양기의 회생을 위하는 뜻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문에다 뿌린다는 공공씨(共工氏)의 설(說)도 너무 정도(正道)에 어긋나기 때문에 역시 그만두라고 명하였는데, 이제 듣자니 내섬시(內贍寺)에서 아직도 진배를 한다고 하니, 이 뒤로는 문에 팥죽 뿌리는 일을 제거하여,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으려는 나의 뜻을 보이도록 하라.”

‘공공 씨의 이야기’는 중국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공공 씨는 전설 속의 인물이지만 형초세시기는 6세기경에 집필된 책으로 초나라의 풍습을 적었다.

공공 씨에게는 재주 없는 아들이 있었다. 이 아들이 동짓날에 역질로 죽었다. 그 아들이 팥을 몹시 두려워하여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역질 귀신을 쫓는다. 전설적인 내용이다. 사실대로 믿기는 어렵다.

영조는 팥죽이 양기의 회생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팥죽을 문에 뿌리는 일은 반대한다. 중국의 공공 씨는 팥죽을 문이나 집안 곳곳에 뿌렸으나 영조는 이런 행동이 ‘정도에 어긋나며’ ‘잘못된 풍속’이라고 명백하게 지적한다. 지금도 “팥은 벽사(?邪)의 의미가 있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피를 대문이나 벽에 바르는 행위’와 같다는 이야기도 틀렸다. 모두 250년 전의 영조가 ‘틀렸다’고 밝힌 부분이다.

우리 선조는 팥죽을 쑤어서 집안 장독대, 곳간, 부엌 등 군데군데에 두었다. 팥죽이 식으면 그걸 가져다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먹었다. 음식을 집안 곳곳에 뿌리는 얄궂은 풍습은 없었다.

붉은 색은 양의 색깔이다. 양 중에서도 가장 강한 양이다. 팥은 곡물 중에서도 양의 성격이 강한 것이다. 붉은 색의 팥은 강한 양의 식재료다.

음이 강한 계절인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은 음과 양을 상쇄하여 ‘평’의 상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음이 강한 계절에 양의 기운을 우리 몸에 넣어서 음을 이겨내고 빨리 평의 상태를 얻으라는 뜻이다. 음의 기운이 극에 달했으니 이쯤이면 양을 보충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양의 기운을 더해주는’ 진정한 보양식(補陽食)은 팥죽이었다.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서 나이를 먹는다?

흔히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서 먹는다. 동짓날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서 먹어야 건강하다, 혹은 팥죽에 새알심을 넣어서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른바 ‘동지첨치(冬至添齒)’의 풍속이다. 예전에는 치아(齒牙)가 나이를 의미했다. 동짓날 새알심이 들어간 팥죽을 먹어야 치아가 더해진다. 즉, 나이를 더 먹는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은 고려시대까지도 당나라의 역법을 사용했다. 주나라 무렵부터 시작된 역법에 의하면 1년의 시작은 동지였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바꿔서 말하자면 이날부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밤은 음이고 낮은 양이다. 동짓날을 기점으로 음이 짧아지고 양이 길어진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상은 바로 양의 세상이다. 양이 길어지는 시점이 바로 새해다. 또 다른 원단(元旦)이다. 동지의 또 다른 이름이 새해, 설을 뜻하는 ‘아세(亞歲)’인 이유다.

이날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달력을 만들어 바치고 한편으로 신하들에게 새로운 새해의 달력을 나눠 주었다. 이른바 ‘하선동력(夏扇冬曆)’ 즉, 단오(여름)에는 부채를 하사하고 동지(겨울)에는 달력을 주었다는 뜻이다.

동짓날 팥죽에 새알심을 나이 수대로 넣었던 것은 간단한 이유다. 새알심의 숫자는 새해의 나이 수대로 넣었다. 이제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을 음식을 통하여 재확인시켰던 의식이었다.

양이 시작되는 좋은 날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양의 기운을 북돋워줄 음식을 먹어야 한다. 바로 팥죽이다. 서양식으로 표현하자면 동지는 ‘양이 부활하는 날’이다. 이날을 기념하여 궁중에서는 중국에 매년 동지사(冬至使)를 보냈다. 중국도 동지를 축복으로 여기니 ‘동지를 축하하러 중국에 갔던 사신’이 바로 동지사다.

단팥죽과 단팥빵 그리고 팥칼국수

19세기 초반에 적은 <규합총서> 등에는 팥죽 끓이는 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팥을 씻어서 깨진 것을 가려낸다. 물을 붓고 한차례 끓인다. 이때 처음 끓인 팥물은 버린다. 다시 새 물을 부어서 팥이 얼마쯤 터질 때까지 삶는다. 삶은 팥을 으깨서 곱게 거른다.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새알 모양으로 만든다. 새알심이다. 곱게 거른 팥물을 두 차례에 걸쳐 끓인다. 맑은 부분을 끓인 후, 아래의 고운 가루가 있는 부분을 뒤에 넣어서 다시 끓인다. 팥물이 끓을 때 새알심을 넣고 다시 끓인다. 새알심이 끓는 팥물에서 떠오르면 팥죽이 완성된 것이다.

예전에는 동짓날에는 어느 곳에서나 팥죽을 쑤었고 또 나눠먹었다. 사찰에서도 마찬가지.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여서 이날 사찰을 찾는 신도들과 나눠 먹었다. 어느 큰절의 스님이 자기 사찰이 크다고 자랑을 했다.

“우리 절의 신도가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에 배를 띄우고 나가서 노 젓듯이 동짓날 팥죽을 쑨다”라고 했다. 상대편 스님이 대꾸했다. “우리 절도 가마솥에 배를 타고 나가서 팥죽을 쑤는데, 지난해 팥죽 쑤느라 배 타고 나간 스님들이 풍랑을 만나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팥죽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맛이 점차 달게 변한다. 단팥빵, 단팥죽 등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것이다. 중국, 일본, 한국이 모두 팥을 즐겨 먹었지만 일본식 팥 음식은 맛이 달다. 1955년 이후 한반도에 밀가루가 흔해졌다. ‘미공법(PL)480조’ 덕분에 한반도에는 미국산 밀이 무한정 들어왔다. 수제비도 흔해졌고 집집마다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도 흔해졌다. 오히려 번거로운 새알심 대신에 팥칼국수가 흔해진 이유다.

[팥 음식 맛집 4곳]

바지락최고집손칼국수

골목 안에 있는 소박하고 자그마한 칼국수 전문점이다. 바지락칼국수와 더불어 새알심을 넣은 팥죽도 단골들이 좋아하는 메뉴. 맛이 달지 않고 전통적인 팥죽이다.

문호리팥죽집

양수리 북한강 부근의 팥음식 전문점이다. 경치도 아주 좋다. 국산 팥만 사용하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다.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이 이집 팥죽을 먹는 팁.

봉순이팥죽

장성의 팥 음식 전문점이다. 노포. 팥 칼국수 등을 주문하면 굉장히 큰 그릇에 팥국물을 하나 가득 내놓는. 시장통 입구다. 주변에도 팥죽, 칼국수 전문점이 있다.

진양횟집

팥이 있는 옥수수 범벅
속초에 있는 노포 생선 전문점이다. 밑반찬으로 옥수수범벅을 내놓는다. 탈피한 옥수수에 팥 등을 넣어서 내놓는다. 팥 등 잡곡이 들어간 옥수수범벅은 강원도 산골 음식.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