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안이든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그 집안의 공기 자체가 달라지고 생활 패턴이 기존과는 180도 달라진다. 대학입시에 대한 뉴스가 뜨면 혹여 자신의 아이들이 해는 입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뭇 부모들의 공통된 마음이리라. 필자도 올해 고1, 고3에 올라가는 아이들이 있어 아침에 시간 분배를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다. 고3짜리 아이가 처음 고등학교를 들어갔을 때 스쿨버스가 도착하는 곳 까지 차로 태워 줘야 해서 새벽 6시에 일어나는 바람에 황금 같은 새벽잠을 포기해야했다. 한의원 출근시간까지 2시간 남짓 남는 시간을 처음에는 잠이 보약이라고 집에 오자마자 잠을 청했는데 그것도 잠시 후 중학생이었던 막내가 학교에 가려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깨곤 했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몸이 망가질 것 같아 인근 학교 운동장을 무작정 40분 동안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잠잘 수 없으니 가벼운 운동을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이도 못할 짓이었다. 그래서 태극권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필자는 당산기공에서 최고 단계인 태극권까지 수련했다가 동양의학이 궁금해서 한의대를 다시 다녔다. 물론 한의대 안에서도 비공식 기공 동아리도 운영하면서 수련은 이어졌다. 하지만 오히려 한의원을 개원하고 부터는 태극권으로부터 멀어져서 전체를 기억해 내지 못하고 그 단편의 편린들만 몸이 기억해서 태극권 자체를 수련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태극권을 아직도 수련하고 있던 친한 도반을 우연히 만나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이어붙일 수 있었다. 필자가 수련하고 있는 태극권은 흔히 얘기하는 양가(楊家) 태극권이고 그 중에서도 ‘정종 양식 태극권’이다. ‘태극권(太極拳)’이라는 영화에서 이연걸이 보여준 화려한 진가 태극권과는 달리 무척 엄격하고 딱딱하며 총 128수로 구성되어 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터라 처음에는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회전하거나 발차기를 하는 등 관절에 무리가 오는 태극권 동작을 정석대로 했다. 그 결과 3개월을 못 견디고 왼쪽 무릎이 못 걸을 정도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무릎을 굽히지 않고 회전동작도 대충하는 자칭 ‘대충 태극권’ ‘얼렁뚱땅 태극권’을 하고 있는 입장이다. 실은 태극권은 준비운동을 해서 사전에 몸을 부드럽게 해 주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뛰어드는 것이 문제인 셈이다. 사람을 사귀거나 업무를 위해 만나더라고 단도직입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고 사전 정지작업을 해서 매끄럽게 기름칠을 한 후에 본래의 일에 이르게 된다. 이런 예비적인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들여야 비로소 잘 돌아가는 관계가 된다. 친구가 되면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 업무상 갑과 을의 구분 또한 엷게 해서 서로 평등하게 해 준다. 온 세상이 나와 너의 구별이 없고 사방팔방으로 모두 균질하고 평등한 상태가 엔트로피가 극대화되어있는 상태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쪽으로 우주의 모든 사건들이 진행된다고 대못을 박았다.

당나라 조주 선사는 ‘차나 한잔 하시게’라는 화두로 유명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오랫동안 시중 든 상좌스님에게도 차나 한잔하란다. 처음 본 놈이나 오랫동안 내 곁에 있는 놈이나 구별이 없다는 것을 이런 표현방법으로 나타낸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법칙은 평등과 차별 없음을 나타내는데 항상 조주 스님의 화두가 생각나곤 한다. 엔트로피를 명쾌하고 명료하게 통계학적으로 정의한 인물이 볼츠만이다. 볼츠만이 생각한 엔트로피가 어떤 것인지 한번 알아보자.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레고 블록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면 레고 조각이 흩어져 있는 상태가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이고, 흩어져 있는 레고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 정돈된 형태로 조립해서 로봇이나 자동차, 사람 혹은 전함 같은 만들었다면 이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이다.

집에서도 정리가 되어 책들이 자기자리에 가지런하게 있는 것이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이고 여기 저기 널 부러져 있는 상태가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해야 하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조립된 레고는 분해되어 여기 저기 방안을 뒹굴고 있을 것이다. 누가 수고롭게 정리하는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말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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