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왕국의 뒷골목에서는 돌 향기조차 그윽하다. 치앙마이 등 태국 북부 지역은 란나 타이 왕국의 수도로 수백년간 번성했던 땅이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단상은 소수민족의 삶까지 뒤엉켜 화려함과 소박함을 함께 투영한다.
성곽문 쁘라뚜.
치앙마이의 구시가지는 걸어서 둘러볼 수 있는 소담스런 규모다. 밀집된 사원과 골목 사이로 돌길이 이어지는 구도심은 성곽과 해자가 둘러싸고 있다. 성곽과 물길 방어벽인 해자는 구시가지의 역사이자 치앙마이의 세월이기도 하다. 13세기말 타이족의 멩라이 왕은 몽족의 거점을 공략해 삥 강변 분지에 새 왕국을 건설했다. 이것이 북방문화를 피어낸 란나타이 왕국의 수도 치앙마이의 시작이다.

치앙마이는 해발 300m의 고산지대여서 동남아의 다른 지역보다 연중 서늘한 날씨를 이어간다. 쾌적한 기후 속에 만나는 유산들의 면면이 더욱 차분하게 드러나는 땅이다.

치앙마이 도심 풍경.
성곽과 사원의 도시, 치앙마이

치앙마이 여행은 성채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시작된다. ‘쁘라뚜’로 불리는 성채의 문들은 북방의 장미와 조우하는 시간여행의 관문이다. 성곽 안팎 구시가에는 수백개의 크고 작은 사원들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 다양한 외관의 사원들은 옛 란나타이 왕조의 영화를 강한 흔적으로 보여준다.

왓 치앙만 사원은 멩라이 왕이 궁전 안에 세웠다고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코끼리 반신상으로 에워싸인 란나왕국 초기의 황금색 불탑이 인상적이다.

성곽 안에서는 굳이 지도를 펼쳐들지 않더라도 길목에 접어들며 옛 문화의 잔상들과 만난다. 치앙마이에서 조우하는 사원들은 온전한 것과 무너진 것들이 격하게 조화를 이룬다. 부처들 역시 생채기 난 모습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 구시가 서쪽 왓 프라씽 사원의 섬세한 조각들은 란나 타이 왕국의 최고의 걸작으로 여겨진다.

치앙마이 동쪽의 매남 삥 주변에는 유명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람푼 로드의 리버사이드는 이방인들이 즐겨찾는 바들이 즐비해 구도심과는 다른 반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태국 북부 고산족.
고산족들의 순박한 삶과 축제

태국 북부는 미얀마, 라오스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치앙마이에서 치앙라이, 매홍쏜으로 연결되는 루트는 목이 긴 카렌족, 파다웅족, 샨족 등 고산지대의 소수민족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 일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소박한 얼굴에 소수민족의 방언을 섞어 쓴다. 골목에 들어서면 주민들은 모두 해맑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길가의 물소들은 한가롭게 개천에서 자맥질을 한다. 고산족마을까지의 방문이 어렵다면 이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녹아든 삶터인 도이 뿌이를 방문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도이 뿌이 인근에는 황금빛 찬란한 도이 쑤텝 사원도 들어서 있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 치앙라이 일대는 태국의 전통 물축제인 송크란 축제의 원조격인 도시이기도 하다. 매년 봄 이 지역에서 열리는 송크란은 과격한 물싸움 대신 향기로운 정화수를 대접에 떠서 정중히 어깨에 뿌리는 옛 모습에 정감이 간다. 은그릇에 담긴 물을 불상에 살포시 붓는 고산족 여인네들의 얼굴에는 단정한 표정이 깃들어 있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교통=치앙마이 시내에서의 이동은 툭툭이라는 모터사이클 택시가 일반적이다. 원거리 이동때는 트럭용 승합차인 쏭테우가 버스처럼 운행된다. 구시가지 외곽은 사각형의 성곽을 중심에 두고 일방통행길이 이어져 있다.

▲음식=치앙마이에서는 한번쯤 이곳 전통 저녁식사인 깐톡 만찬을 즐겨본다. 깐톡은 결혼식 등의 축하잔치에 나오는 둥근 상에 올려진 음식으로 북부 지방의 음식과 함께 전통 군무가 곁들여진다.

▲기타정보=치앙마이의 물가는 방콕보다 싼 편이다. 우산, 티크 등의 수공예품이 등이 살만하다. 선선한 기후, 아름다운 풍광 덕에 골프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다.



서진 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