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가을이면 순천만에 간다. 갈대숲 일렁이는 순천만 일대는 문향이 깃든 공간이다. 새벽녘 혹은 해질 무렵이면 안개와 노을은 밀물처럼 스며든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빚어낸 순천만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모습을 바꾸며 마음을 뒤흔든다. 김승옥은 소설 <무진기행>에서 순천만의 새벽 물안개를 소재로 신기루 같은 상상의 공간을 써 내려갔다

해룡면 용산에 오르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순천만이 어깨를 들썩인다. 새벽녘 고깃배가 흰 연기를 올리며 순천만을 가로지르고, 물안개가 나지막히 밀려든다. 제멋대로 쭈삣쭈삣 솟아 있던 갈대군락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안개 속에 동그란 형상을 띠고 있다. 순천만 갈대는 서리가 내릴 때쯤이면 머리를 풀어헤치며 솜털뭉치처럼 모습을 바꾼다. 예전에는 만 깊숙이 동천 일대에만 갈대밭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장산까지 누렇게 퍼졌다.

순천만의 감동은 뱃전에서 갈대숲 속에서 용산 전망대에서 호흡을 달리하며 다가선다. 순천만 일대는 세계 5대 연안습지에 등재돼 있다.


노을 깃드는 마을과 해변

순천만에서는 한옥에서 하룻밤 묵으며 창호 너머로도 노을과 여명에 취할 수 있다. 계절이 깊어지면 단풍보다, 갯벌 칠면초보다 더 붉게 타는 게 순천만의 노을이다. 물길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별량면 첨산 사이로 시뻘건 노을이 찾아든다. 붉은 기운은 뱃길 따라 고흥반도 팔령산, 장도 일대까지 아득하게 이어진다.

자연생태공원과 마주한 대대마을 외에도 와온마을, 에코촌 등 한옥에서의 하룻밤은 호젓함으로 채워진다. ‘순천관광 10경’으로 선정된 별량면 와온해변에서는 외딴 어촌 한옥마을에 홀로 앉아 순천만 화포 사이로 하늘이 붉게 물드는 광경에 젖어든다. 벌교 앞바다와 마주선 이곳 갯벌은 알이 굵은 꼬막 산지로 유명하며, 남도 300리 길 걷기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때 이 일대 사람들은 염전으로 생계를 꾸려가거나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갔지만 요즘은 갯벌이 삶의 밑천이 됐다.

향수 간직한 선암사, 낙안읍성

순천만에서의 감동은 파문처럼 연결돼 선암사로 이어진다. 시인 정호승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고 한 바로 그 선암사다. 문화재로 지정된 가장 오래된 해우소 외에도 절 입구 무지개다리, 승선교와 강선루, 수령 600년 된 매화나무 등이 볼거리다. 선암사의 품 안에 들어선 한옥 야생차체험관의 다도체험도 번잡한 마음을 보듬어준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이어지는 6.7km 굴목이재 오솔길은 호젓한 가을 산행에 좋다. 조계산은 산 하나에 천년고찰 2개를 품은 호남의 명산이어서 그 사잇길 또한 넉넉하고 든든하다. 호남 민속마을의 한가로운 가을정취를 느끼려면 순천만과 조계산 사이에 위치한 낙안읍성에 들러도 좋다.

여행 메모
가는 길 고속도로 순천IC가 가깝다. 벌교방향 2번 국도로 접어든 뒤 대대포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순천 시내에서 순천만 방향 으로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된다.
음식 옛날부터 ‘동 순천 서 강진’이라고 할 정도로 순천은 맛의 고장이다. 순천만 갯벌에서 나는 꼬막 외에 짱뚱어가 명성 높다. 꼬막은 고춧가루에 참기름을 살짝 얹어 고소한 맛을 낸다. 짱뚱어탕은 짱뚱어를 삶은 국물에 된장, 우거지 등을 넣어 추어탕처럼 걸쭉하게 끓여 낸다. 순천만습지 입구에 짱뚱어탕, 꼬막정식집 10여곳이 늘어서 있다.
기타 ‘대한민국 1호 정원’인 순천만 국가정원은 순천만 자연생태공원과 맞닿아 있다. 순천만의 훼손을 막기 위해 조성된 국가정원은 호수공원, 꿈의 다리, 네덜란드 정원 등 볼거리가 다채롭다.

글·사진=서진 여행칼럼니스트



서진 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