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르하
스페인 남부의 낯선 공간을 동경한다면 로스로마네스와 안테케라로 향한다. 햇살 내려쬐는 안달루시아 말라가 지역의 마을들은 언덕과 호수,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광으로 은밀한 휴식을 선사한다.

말라가는 피카소가 태어난 스페인 남부 대표도시다. 이슬람과 기독교세력의 흥망성쇠가 담긴 말라가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내달리면 생경하고 평화로운 동네 풍경들이 차곡차곡 담긴다. 말라가 동북쪽의 로스로마네스는 언덕 위 호숫가 마을이다. 비뉴엘라 호수를 삶터 아래에 두고, 아기자기한 골목따라 마을이 형성돼 있다.

올리브
가 자라는 비뉴엘라 호숫가 마을

현지인들에게 로스로마네스는 재배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농가 주변으로 밭이 펼쳐져 있고, 마을 안에 들어선 유일하게 높은 건물은 를 가공하는 곳이다. 해질녘이면 그날 수확한 를 짜내기 위해 공장 앞 길에 트럭 줄이 늘어선다. 차례가 올 때까지 촌부들이 노을을 배경 삼아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로스로마네스 마을 풍경
로스로마네스 마을 꼭대기에는 아담한 호텔과 두평 남짓한 노천바가 있다. 정열, 태양의 안달루시아를 꿈꿨다면 이 마을만큼은 예외다. 빨래가 휘날리고, 해가 저물면 삼삼오오 주민들이 바에 모여든다. 이곳으로 이주한 영국인들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스페인 할아버지는 묵묵히 공간을 공유하며 저녁시간을 보낸다. 여름에도 선선한 로스로마네스는 영국인들이 은퇴후 정착하는 휴양지로 입소문이 난 곳이다.

노천바에서는 마을 단위 맥주를 판매한다. 맥주 이름은 ‘로마네스’다. 비뉴엘라 호수를 바라보며 바에서 기울이는 로마네스 맥주는 취기와 목넘김이 다르다. 마을 골목에 들어선 베이커리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빵을 직접 구워 내놓는다. 공존하지만 방해받지 않을 자유가 외딴 마을에서는 현실이 된다.

안테케라 전경.
석회암과 중세골목의 소도시, 안테케라

로스로마네스에서 내륙 깊숙이 들어서면 중세풍의 성채마을 안테케라와 조우한다. 남부 내륙 교역의 중심이었던 안테케라는 중세 모습이 확연하다. 도심 옥상에 오르면 봉긋봉긋 솟은 건물이 죄다 교회 탑들이다. 스페인식 바로크 교회만 30여개다. 번잡한 해변가 도시와는 다른 낯선 모습도 보인다. 동네 식당에 들어서면 할아버지 한 무리가 담소를 나누며 맥주 한잔에 오후 두시의 단출한 간식인 ‘보까디요’(샌드위치)를 주문한다. 고요한 중세도시는 성곽과 진흙빛 돌담으로 골목이 채워진다.

엘 또르깔 석회암 지형.
중세의 담벽보다 더 오래된 돌덩이들은 안테케라 외곽에 들어서 있다. ‘엘 또르깔’로 불리는 기암괴석 석회암 지형은 1억6천만년의 세월을 간직했다. 쥐라기 시대 바다 속이었던 곳이 융기해 석회암 기암괴석을 만들어냈다. 석회암은 바람과 빗물에 녹아 다양한 모습으로 장관을 이룬다. 석회암지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돌산 트레킹이 엘 또르깔에서는 인기 높다. 돌산 정상에 오르면 도시 안떼케라가 소박하게 내려다 보인다. 1억년 세월의 기암괴석 지형은 여느 중세도시 인근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매력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행메모

교통: 말라가 공항이 관문이다. 차를 빌려 렌트카로 이동한다. 북쪽으로 향하면 안테케라로 이어지고, 해안도로를 따라 동북쪽으로 이동하면 로스로마네스와 만난다. 숙소: 로스로마네스에서는 비뉴엘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오르키디아스’호텔이 묵을 만한다. 언덕위에 위치한 호텔은 호젓한 분위기에 노을과 조망이 탁월하며 아담한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마을 민박들은 숙박사이트를 통해 사전예약이 가능하다. 기타: 로스로마네스는 말라가의 영역이지만 바닷가 도시 와도 가깝다. 는 ‘유럽의 발코니’를 품은 지중해도시로 칼라온다 비치를 간직하고 있다.



글 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