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철도 공사 윤재형, 이일환, 채민호씨-지하철 기관사의 땅속 24時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 불규직한 근무시간으로 생체리듬 최악신문지나 비닐봉지에 용변해결 "상상해 보셨어요?" 반문

"매일 독방에 갇혀 죄수아닌 죄수로 살아요"
도시철도 공사 윤재형, 이일환, 채민호씨-지하철 기관사의 땅속 24時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 불규직한 근무시간으로 생체리듬 최악
신문지나 비닐봉지에 용변해결 "상상해 보셨어요?" 반문


“전동차를 몰고 역으로 진입하는데 갑자기 전동차를 향해 몸을 던지거나 선로 한복판에 가부좌를 틀고 사람이 앉아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순간적으로 심장이 터질 정도의 충격을 받아요. 특히 자살하려고 선로에 뛰어드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경우 그 충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 기관사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지하철 자살자’ 때문에 벌벌 떨고 있다. 자살 사고를 직접 경험한 기관사는 물론, 그렇지 않은 기관사들조차 엄청난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일부 기관사는 이미 그 공포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기관사들도 속출하고 있다. 기관사들의 정신건강 문제는 큰 지하철 사고로 이어질 우려도 있어 ‘시민의 발은 진짜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만성적인 수면부족과 이에 따른 수면장애, 불규칙한 근무형태, 열악한 근무환경 등도 지하철 기관사의 정신적ㆍ육체적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2월12일 지하철 5호선 개화산 역의 승무관리사무소에서 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인, 10년 경력의 윤재형(39)ㆍ이일환(39)씨와 7년 경력의 채민호(35)씨 등 3명을 만나 지하철 기관사의 애환을 들어보았다.

■ 엄청난 지각스트레스, 1분도 용납 안돼
-전반적인 근무여건은 어떤가.

채 기관사= 불규칙한 출ㆍ퇴근 시간으로 따지면 아마 세계 최고일 것이다. 출ㆍ퇴근 시간은 물론, 전동차 탑승시간이 같은 날은 거의 없다. 완전히 ‘로또식’이다. 출근시간만 보자. 오늘은 오전 8시38분, 내일은 오후 7시1분, 모레는 오전 6시56분 등으로 매일 오전 오후를 넘나들며 분 단위로 쪼개져 있다. 지각에 대한 스트레스는 정말 대단하다. 전동차는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단 1분의 지각도 용납되지 않는다. 전동차가 기관사의 사정을 봐줄 리 있는가.(웃음) 1분 지각하면 그날 일은 끝이다. 출근하지 않은 것과 같다.

이 기관사= 교대시간을 놓치는 ‘결승(缺乘)’사고는 징계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동료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준다. 만약 1분이라도 지각하면 3시간 정도 운전대를 잡았던 동료가 쉬지도 못한 채 3시간을 연이어 운전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윤 기관사= 지각하지 않으려고 알람 시계를 2, 3개씩 맞춰 놓는다. 불규칙한 노동시간으로 신체리듬이 파괴되어 위장질환을 앓는 동료들이 많다.

-운행 중 생리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채 기관사= 우리는 용변도 마음대로 못 본다. 참다 참다 바지에 대변을 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바지에 대변을 보면 어떻게 되는 지 아는가. 1시간만 있어보면 석가모니가 해탈하듯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소변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나는 비상시에 대비해 항상 검은 비닐봉지를 갖고 다닌다.

윤 기관사= 급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신문지를 깔고 운전실 안에서 용변을 볼 수밖에. 나도 그런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용변을 보더라도 2분(역간 운행시간) 내에 끝내야 하니, 그것마저도 고통이다.(웃음)

이 기관사= 설사병에 걸리면 이만저만 고통이 아니다. 졸음이 오더라도 배탈 걱정 때문에 커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승객들에게 ‘차량 고장’ 등의 안내방송을 한 뒤 선로에 내려와 ‘번개 용변’을 보는 기관사도 가끔 있는 것으로 안다. 생리적인 문제야 아무래도 여성 기관사가 훨씬 더 심하겠지.(서울도시철도공사에는 8명의 여성 기관사가 근무 중이다)

■ 기관사 80%이상이 수면장애
-불규칙한 근무시간에 따른 수면장애도 심각할 텐데.

윤 기관사= 잠자리에 들면 보통 30분 이상 뒤척인다. 2,3년 전부터는 아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깼다가 자고, 깼다가 자고…. 잠을 자기 위해 술이나 수면제에 의존하는 동료들도 적지 않다.

이 기관사= 아마 기관사 10명 중 8명 이상이 불면증, 주간 졸림 등 수면장애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운행 중 졸음을 쫓기 위해 항상 사탕과 물을 휴대한다.(그는 이날 3시간 운행동안 8개의 사탕을 먹었다고 했다) 일부 기관사는 전동차 탑승 전에 잠을 쫓기 위해 세수를 하고도 모자라 온 몸에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채 기관사= 야간에는 모둔 차량이 기지에 들어가지 않고 노선의 중간지점이나 역 등에 전동차를 세워놓고 새벽 첫차를 운행하기 위해 주박(駐泊) 근무형태로 이뤄지는데, 주박지의 잠자리 환경은 최악이다. 주박 근무시 새벽 1시에 막차 운행을 끝내고 차량을 정리한 뒤 씻고 잠자리에 드는 시각은 새벽 2~3시. 잠시 눈을 붙일 만하면 새벽 4시30분께 당직 근무자의 모닝 콜을 받는다. 그 때부터 운행 준비를 시작해 5시30분부터 첫 운행을 하게 된다.

-지하터널과 전동차 운전실 환경은.

채 기관사= 1평 남짓한 운전실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추우면 얼음이 얼 정도다. 여름에는 추워서 미칠 지경이다. 승객들이 덥다고 하면 냉방을 가동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미세먼지와 소음 등으로 인한 고통도 심각하다. 공기청정기 하나만이라도 달아놓으면 좋을 텐데. 나는 항상 코가 막혀 있다. 귀도 망가졌다. 집에서 TV를 볼 때 볼륨을 높이는데, 옆 사람이 시끄럽다고 한다. 난 안 시끄러운데. 옆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잘 안 들린다. ‘뭐라구요?’ 버릇이 생길 정도다. 무엇인지 몰랐던 만성피로가 몸으로 느껴진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두통, 이제는 편두통까지 생겼다. 위장장애는 당연한 것쯤으로 받아들여진다. 신물이 넘어올 때도 있다.

윤 기관사= 독방에 갇힌 죄수의 느낌이다.

이 기관사= 전동차가 어두컴컴한 형광등 불빛 속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다 보면 눈물이 나며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낀다. 장시간 운전을 하면 한동안 멍해지기도 한다. 찰나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내 자신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 인명사고 땐 손에 피묻은채 운전
-각종 사상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채 기관사= 눈 앞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그 사람을 뻔히 보면서 치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사상사고가 나면 전동차를 세우고 선로에 기어들어가 치인 사람을 찾아 선로 밖으로 꺼내야 한다. 더욱이 시신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라면 대충 맞춰놓은 뒤 사령실에 보고하고, 손에 묻은 피가 마르기도 전에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기관사들은 사상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맨손으로 시신을 만지도록 규정돼 있다.

윤 기관사= 사상사고를 경험했든 안 했든 간에 사상사고에 대한 공포는 엄청나다. 승강장에 진입할 때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를 정도의 초 긴장 상태를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한다. 종종 승객들 중에 선로로 뛰어들 것처럼 장난을 치거나, 승강장에서 어린 아이들이 뛰어 놀거나, 취객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일 때는 정말로 머리카락이 쭈뼛해지고 가슴이 철렁해진다. 대다수 기관사들이 악몽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나만 하더라도 잠을 자다가 고함을 지르며 깨어난 적이 많다.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상사고와 관련된 악몽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 기관사= 손목이나 몸통이 끼면 표시등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나마 문을 열었다 닫을 수 있다. 그러나 승객의 옷자락이나 가방 끈, 소지품 등이 끼면 표시가 나지 않는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냥 출발하기 때문에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사상사고가 나면 보통 기관사에게 3일간의 특별휴가를 주는데, 이런 조치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도시철도공사와 서울지하철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수도권의 지하철에서 119건의 추락사고가 발생, 67명이 사망했다. 평균 5일에 한명 꼴이다. 2001년과 2002년에 비해 각각 55.8%, 52.3% 증가했다. 경찰조사 결과 사망자 67명 중 54명?자살자로 드러났다. 그것도 전동차를 향해 무작정 뛰어드는 자살사건이 대부분이다.

도시철도 노조에 따르면, 기관사의 16.4%가 사상사고를 겪었으며, 13.5%의 기관사들은 거의 매일 크고 작은 출입문 사고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 1인승무제가 사고의 원인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은.

채 기관사= 기관사 1명이 전동차를 운전하는 ‘1인 승무제’는 대형사고를 유발하거나 사고 대처에 큰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2인 승무 체제로 개선돼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2인 승무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참고로 서울의 1~4호선을 제외한 서울(5~9호선), 대구, 부산, 인천의 전 지하철 노선은 ‘1인 승무제’를 고수하고 있다)

이 기관사= 출ㆍ퇴근 러시아워 때 수천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른다. 복잡한 승강장 내 인원들까지 고려하면 기관사 1명이 책임져야 하는 승객 수로는 절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사상사고라도 나면 기관사 한명이 감당하기가 힘들다.

윤 기관사= 1년에 한차례 실시되는 정기 건강검진도 내실화해야 한다. 지금은 ‘어떤 부위가 안 좋은 것 같으니 병원을 가보라’는 식으로 형식적인 검진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동료 기관사 A(33)씨가 공황장애로 최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것이다. 그는 지난해 9월 지하철 6호선 운전 중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고 구토증세를 느끼며 전동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껴 병원에 갔다고 한다.(공황장애란 실제적인 위험상황이 없는데도 항상 불안과 공포감을 느끼는 정신발작 증세다. 국가가 지하철 기관사의 공황장애를 직업병으로 공식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도시철도공사 노조는 의료기관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또 다른 기관사 6명과,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명의 기관사에 대해서도 공황장애로 인한 사망으로 보고 산재를 신청할 방침이다.)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채 기관사= 제발 지하철에서 자살하지 말라.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듯이,기관사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기관사들에게 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 기관사= 승강장에서 장난을 안 쳤으면 좋겠다. 실제로 장난치다 죽은 학생도 있다. 어떤 물건을 던지기도 하는데,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 기관사= 우리 국민들은 너무 급하다. 좁아지는 문틈으로 발을 끼우는 등 육탄공세를 퍼붓지 않아도, 운전실에 붙어 문 열어 달라고 기관사를 향해 욕하고 떼쓰지 않아도 2분30초만 지나면 전동차가 온다.

김성호 기자


입력시간 : 2004-02-17 16:29


김성호 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