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킴이로 나선 네티즌, 사이버 공격으로 '왜곡'에 준엄한 심판

인터넷의 힘이 역사를 지킨다
역사 지킴이로 나선 네티즌, 사이버 공격으로 '왜곡'에 준엄한 심판

무릎을 꿇리는 데 딱 나흘이 걸렸다. 이 참에 ‘일본군 위안부’의 명예와 인권을 위한 전당까지 건립할 움직임이다. 이 뿐 아니다. 엉거주춤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를 대신해 13억 인구의 중국 정부에 준엄하게 항의, 고구려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거푸 망발을 내뱉는 일본 총리, 극우 정치인에게는 육두문자를 써가며 힐난, 국민들 속을 후련하게 만들기도 했다.

‘역사 지킴이’를 자처하는 우리 네티즌의 모습이다.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1,100만.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로 뭉친 이들은 우리 역사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 일에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미국 최대 교과서 출판사인 ‘맥그로 힐(McGraw Hill)’이 다음 역사 교과서 발간 때는 한국사와 관련한 오류를 고치겠다고 했다. 각국의 지도 제작사는 일본해(Sea of Japan)를 동해(East Sea)로의 단독 표기 및 병기를 결정했다. 세계 유수의 언론인 ‘워싱턴 포스트’도 인터넷을 통한 그들의 활약상을 지면화했다. “인터넷이 우리 역사를 지킨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탤런트 이승연의 일본군 위안부 누드영상 파문과 관련, 누드영상 시사회가 있었던 12일에는 이를 규탄하고 성토하는 인터넷 카페가 만들어졌다. 즉각적인 반응도 놀랍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 카페에는 누드 영상 제작 및 배포에 대한 항의와 반대서명이 16,000여건을 기록할 정도로 그 움직임이 활발하다. 줄잡아도 하루 2,500건. 결국 기획사 대표는 삭발까지 하며, 프로젝트를 접어야 했고, 이씨는 위안부 할머니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했다.

- 독도 망언ㆍ고구려 역사 왜곡에 ‘총 궐기’

툭하면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에 대한 네티즌들의 대응은 한결 거칠고,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식민지의 암울한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까닭이다. 동해의 ‘일본해’ 표기와 독도망언이 잇따르자 분노한 네티즌들은 일본 정부의 특정 서버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다.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은 인터넷 사이트 ‘K국의 방식’ 개설에 대해 ‘J국의 방식’이라는 사이트를 개설, 이른바 ‘사이버 갑신왜란’으로 불린 맞불작전을 펴기도 했다. “당장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약소하지만, 그때그때 우리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 잡는 길이라 믿는다”는 게 사이버 전쟁에 ‘참전’한 정희종(27ㆍ대학원생)씨의 참전 동기다.

일본 독도망언의 파문이 잦아들 즈음, 중국의 동북 3성, 즉 만주 지방의 사회과학원과 대학 및 연구기관을 총동원,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실제로는 2002년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이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민간역사문화교육 단체인 국학원(kookhakwon.org)이 최근 벌인 동북공정 반대 서명 운동과, 인터넷 카페 ‘고구려 역사 지킴이’(cafe.daum.net/Goguryeoguard)가 세계 각국의 언론, 역사학자,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위원들에게 ‘동북공정’의 부당함을 알린 ‘을지문덕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민적 관심을 촉발시켰다. 결국 이들은 이코모스 파리회의 직전에 한 회원으로부터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제대로 알고 참석할 수 있게 됐다. 고맙다”는 한 위원의 답변과 함께 ‘중국과 나란히 북한이 심사 대상국으로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무 부처 장관은 “정부차원의 대응은 바람직 하지 않다”며 일찌감치 뒤로 물러선 터였다.

작년 11월, “(덕수궁터에) 미 대사관 신축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고건 총리의 보고에 “(총리가) 잘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화답한 노무현 대통령. 하지만, 이도 ‘덕수궁터 미 대사관, 아파트 신축 반대 시민모임’, 인터넷 카페 ‘궁궐산책(cafe.daum.net/5royalpalace)’등의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의 드센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2월18일, 덕수궁터에 주한 미대사관 건립에 대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내년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작년 11월에 이은 두 번째 ‘불발’로, 인터넷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사태의 심각성을 공유하고 ‘감시 눈초리’ 양성에 힘쓰던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의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미국의 최대 교과서 출판사 ‘맥그로 힐(McGraw Hill)’이 차기 발간 때 한국사와 관련한 오류를 고치게 한 반크(VANK,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prkorea.com)의 활약도 눈에 띤다. “항의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게 반크 기획단장 박기태(30)씨와 1만3천여 사이버 외교 사절단의 생각. 그래서 그들이 내건 슬로건도 ‘전 세계 모든 이들과 꿈과 우정을 나누는 나라 대한민국’이다. ‘미래의’ 대통령과 교수, 학자, 기자들을 상대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 오류 확산 부작용 등 비판도

네티즌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영향력 집단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매스 미디어를 통해 얻은 정보들은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화제거리로 삼고 말뿐, 공론화 시키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이 즉각적이고 무한정한 토론과 의견 교환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그러한 결정화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넷의 힘’에 대한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이상길 교수의 분석이다. 실제 ‘우리 역사 지키기’와 관련해서도, 한국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를 찾아내고, 그 정보들을 공유하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일 등은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선 불가능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인터넷의 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없는 건 아니다. ‘성급한 감정적 배설’, ‘대중 영합적’ 등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의 속성상 심사숙고 없는 즉각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경향이 짙고, 주요 참여층도 아직은 지적으로 미숙한 중고생들이 많다보니 빚어지는 부작용들이다. 이에 대해 이상길 교수는 “여론을 형성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서의 인터넷이 더 많은 사람들의 동참과 호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그 사용자들이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성숙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또 반크 기획단장 박기태씨는 “인터넷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데 이용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오류를 더 빠른 속도로 확산시키는 기능도 한다”면서 “네티즌들도 좀 더 사려깊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민승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02-25 14:27


정민승 인턴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