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향기로 가득찬 마법의 '상큼공주'연기자를 꿈꾸던 아나운서, 시청자와 눈높이 맞추는 편안한 진행

[감성 25시] 강수정
'얼짱' 향기로 가득찬 마법의 '상큼공주'
연기자를 꿈꾸던 아나운서, 시청자와 눈높이 맞추는 편안한 진행


강수정 아나운서가 얼짱이라구? ‘얼짱’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갑자기 등장한 강수정 아나운서. 도대체 그녀가 누군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팬 카페의 회원 수는 2만이 훨씬 넘지만, 얼짱이라는 말이 아직도 생경한 사람에게 그녀는 여전히 낯설 수밖에 없다.

강수정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오락 프로그램에서이다. ‘여름향기’를 패러디한 ‘여름 냄새’에서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손예진 역과 ‘노팅힐’의 줄리아 로버츠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내면서, 연기자처럼 청순한 외모와 깔끔한 인상이 출연진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어릴 적 꿈이 연기자였거든요. 학교 다닐 때 연극무대에 설 기회가 생기면 곧잘 해내서 사람들이 놀라곤 했어요.”

평소 얌전하던 그녀는 축제 때면 무대에 올라가 자신의 숨은 끼를 과감히 보여주었다 한다. 하지만 연기자의 꿈을 단칼에 베어버린 사람은 바로 어머니다. “엄마는, 항상 제 편이고, 제가 무얼 하든 믿어주는 든든한 후원자예요.” 방송에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은근히 자랑한 그녀다. 하지만 그녀의 꿈을 꺾었다니….

“황신혜처럼 또렷한 미인만이 안방극장을 차지하는 법이지. 밋밋한 얼굴로는 조연밖에 못할 거야.”

- 감수성 풍부했던 조숙한 아이

후원자이자 팬인 어머니는 선택의 길 앞에서는 언제나 냉정했다. 강수정은 일찍이 연기자의 꿈을 포기했지만 마음 속에서 타오르는 열정을 잠재울 순 없었다 말한다. "12살 모든 걸 다 알아 버린 기분이었어요."

강수정, 그녀는 참으로 조숙한 아이였다.

그녀의 사춘기는 초등학교 5학년, 바로 12살이었다. 남다른 발육으로 또래 집단에서 단연코 눈에 띄었던 그녀는 함께 있으면 항상 언니 같은 성숙한 이미지를 풍겼다.

“수학여행 때, 차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장기 자랑하는 시간에 저는 유치환님의 ‘행복’이란 시를 암송했죠.”

상상해 보라. 비가 오면 창밖에 흐르는 빗물을 감상하며 인생의 허무함을 시로 노래하는 12살짜리 소녀를. 하루에도 열두번씩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문학소녀 빨간 머리 앤처럼, 그녀는 금세 센티멘탈해지고 반항도 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이런 딸을 보며 그녀의 부모님은 “저 아이는 감수성이 풍부해. 작가가 되려나 보다” 라며 그녀의 행동에 늘 그 이상의 의미 부여를 해주었다. 나이가 어려서 못 보는 영화도 살짝 데려가 주셨다던 개방적인 부모님 덕에 그녀는 사춘기를 무리 없이 넘겼고, 그녀의 방황은 어린 나이에 막을 내린다.

“중 고등학교 때 공부 문제로 엄마랑 싸우는 친구들 많잖아요? 저는요? 냉장고에 초코 우유가 없어서 싸웠어요.” 넉살좋게 웃는 그녀는 눈앞에 먹을 것만 있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단순하고 낙천적인 O형이다.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을 고3 시절에도 삼각형 모양의 초코 우유와 칠리 소스가 뿌려진 감자 튀김만 있으면 기분 좋게 공부했다는 그녀는 연세대 생활과학부에 당당하게 입학한다.

“솔직히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공부 한 건 아니구요. 제가 칭찬 받는 걸 워낙 좋아했어요.”

그녀는 칭찬에 약하다. 천상, 스타다. 그녀에게 잠재된 스타 기질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든든한 가족이라는 팬으로 인해 꽃피기 시작했다. 그녀를 지지하고, 좋아하는 팬이 있기에, 얼짱 아나운서의 영광을 누리며 신나게 일하는 그녀에게도 실패의 쓴맛을 깊게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저처럼 아나운서 시험 많이 본 사람 있을까요? 면접 볼 때 심판대 위에 올라와 있는 기분, 면접 후 다리에 힘이 쫙 풀리는 심정, 합격자 발?기간까지 두어 달 동안의 초조한 기다림, 그때 기분은 경험한 사람만 알아요.”

월드컵이 열리던 해 KBS에 입사하고 이듬해 부산에서 1년 동안의 방송생활을 마친 그녀는 지금 우리 앞에 얼짱으로 다가왔다. “부산 앞 바다가 그리워요. 그 시절은 완벽한 홀로서기의 순간이었어요.”

그녀는 부산에서 근무할 때 처음 차를 몰았다. 속상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면 해안도로를 달리며 전망 좋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고, 훗날 이런 곳에 카페를 차려야지, 그리고 가끔 바닷가를 산책하며 바다를 닮은 사람이 되어야지, 다소 감상적인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고. 그러면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는 그녀. “나이가 들면 소박하게 비디오 대여점이나,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싶어요. 거기서 책도 보고, 만화나 영화도 보구 말이죠.”

대학 시절 늘 붙어 다니던 다섯 명의 멤버와 축제 때면 카페테리아를 차려 수입도 엄청 올렸다는 그녀는 “저 장사에도 소질 있어요”라며 자랑한다. 여고 시절 단짝 친구 같고, 옆집 누나 같고, 놀려 먹어도 부담 없는 후배나 여동생 같은, 때론 딸 같이 보이는 그녀가 “딸기 쥬스 드세요…”라면 누가 마다할까.

“아나운서요? 학부 4학년 때, 유럽에 배낭 여행간 적이 있어요. 유럽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니까, 시야가 확 트이는 거예요. 가슴 속에 무언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분…. 아! 이 넓은 세상에서 나란 존재는 무얼까? 궁극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였죠. 스스로를 증명 받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언가 도움 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야지, 다짐했어요.”

- 핑크빛 열정으로 방송진행

그녀는 평범한 이웃집 주민 같다. 방송에서 그녀가 실수라도 하면 게스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놀리기 일쑤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서 그녀의 매력을 느끼니…. 그녀의 인기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안한 사람. 그녀는 이제 얼짱 아나운서가 아닌 시청자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속 깊고, 편안한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말한다.

“근데… 저 아직 핑크 구두 못 샀어요. 봄이 되면 그거 신고 산책하고 싶었는데.” 난데없이 핑크 구두라니…. 강수정 아나운서 혹시 공주병 아냐? 생각할지 모른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는 영원히 춤춰야 하는 마법에 걸리죠. 하지만 소녀는 빨간 구두를 선택했어요. 너무도 이뻤기 때문이죠. 제 맘속에서 핑크 구두는 그런 거예요. 타오르는 열정 같은 거요.”

그래, 저마다의 가슴속엔 빨간 구두를 신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녀는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그것을 한잎 한잎 꽃피워 낸다고 한다. 봄날, 핑크 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자를 주목하라. 그녀는 숨겨진 열정을 꽃피운 사람일테니….

유혜성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3-17 20:52


유혜성 자유기고가 cometyo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