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위 넘은 청소년 성매매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싹' 원조교제 급속 확산가족해체·무분별한 성문화가 부른 예고된 '우리 모두의 아픔'
'돈 맛'에 어린 영혼이 썩는다 위험수위 넘은 청소년 성매매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싹' 원조교제 급속 확산 가족해체·무분별한 성문화가 부른 예고된 '우리 모두의 아픔'
-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돈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건축 일을 하는 50대 남자와 첫 관계를 맺었어요.” 성인들과의 잦은 성관계로 경찰의 단속에 걸려 쉼터에 넘겨진 박민희양(15ㆍ가명). 그녀가 성매매의 늪에 빠지게 된 과정은 우리 사회가 경제난이라는 덫에 걸려 아이들의 보호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성 매매의 벼랑에 내몰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빚 도피, 전학, 가출, 남녀 혼숙, 성매매’. 그녀가 쉼터에 오기까지 겪은 어두운 기억들이다. 민희는 중학교 2학년 때 남동생(14)과 함께 큰 아버지 집에 ‘얹혀’ 살게 됐다.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던 민희의 아버지가 부도를 내고 빚으로 도망자의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이미 수년 전 이혼하고 집을 나가버린 뒤였다. 큰 아버지 식구들은 민희와 동생이 눌러 살게 된 뒤 귀찮다는 눈초리를 노골적으로 보냈다. 예민한 사춘기라 민희는 곧 반항아로 변했다. 낯선 환경에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 하고 친척들의 구박을 견디는 사이 그녀의 방황은 시작됐다. 외로운 마음에 불량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생활은 흐트러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여학교에 다니다가 남녀 공학으로 전학 와서 처음엔 좋았는데, 얼마 안가 두려워졌어요. 한 방에 모여서 술 마시고 자고….” C중학교 3년이던 2002년 12월. 좌절에 빠져 있던 순간, 검은 유혹이 찾아왔다. 민희는 하굣길에 통학 버스를 놓치고 낯선 50대 아저씨의 차를 탔다가 처음 성매매를 경험했다. “너 돈 좋아하니?”라는 물음에 머리를 끄덕인 것이다. 일주일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났다. 보통 한 번 만남에 20~30만원. “한 번 돈 맛을 들이고 나니 계속 만나게 됐어요.” 20여 일간의 만남 끝에 그 아저씨가 사준 휴대폰이 교사에게 발각되어 경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민희가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처음 성매매를 했다는 점을 감안해 곧 훈방했다. 그러나 큰 아버지네 식구들은 이미 ‘노는 아이’가 된 민희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거리의 아이'가 된 민희는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성 매매의 늪에 깊이 휩쓸려 들어갔다. 춥고 배고픈 아이는 닥치는 대로 어른들과 만나 몸을 판 것이다. 인터넷만 잘 뒤지면 돈을 주겠다는 어른은 질리도록 만날 수 있었다. 몸과 마음에는 점점 상처가 쌓여갔다. 민희는 지난해 9월 산부인과에서 병명도 모른 채 자궁 수술을 받았다. 그 상처로 마음은 더욱 얼어 붙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생각은 없어요. 남자는 '물주'일 뿐이에요. 확실히 뜯어 먹고 버려야 할 존재 말이에요!" 요즈음 민희는 쉼터에 지내면서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민희는 “부모님과 살면서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다”며 “성매매는 잠깐 눈만 감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른 친구들이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 '성은 매매할 수 있는 상품' 의식이 문제 이처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성을 자본화 하는 풍조는 민희 같은 ‘특수 그룹’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성에 관한 한, 모범생과 문제아의 구별이 크게 愎? 자유분방하고 거칠 것 없는 신세대의 사고방식과 사회에 만연한 소비 지향적인 문화가 만나면서, 성을 목적에 따라 사고 팔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의식이 보편화하고 있는 때문이다. 최근 ‘씨네서울’(www.cineseoul.com)이 영화 ‘사마리아’ 개봉을 앞두고 네티즌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집이 너무 가난해서 큰 돈이 필요한데 벌 방법이 없다면 원조교제를 할 수 있다”는 응답자가 절반(50.2%)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예인으로 데뷔시켜준다면 원조교제를 할 수 있다”는 응답자도 118명(11.8%)에 이르렀다. 가출ㆍ성매매 10대 여성 전문지원기관인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 최자은 사회복지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을 자본으로 생각할 정도로 지금 우리 사회의 성 가치관 혼란은 심각하다”고 말했다.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인 나자렛쉼자리 송애순 사무국장도 “소비 지향적인 문화는 아이들을 쉽게 성매매의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정 해체 현상도 성매매가 판을 치는 가혹한 거리로 청소년들을 내몰고 있다. 가정 안에서 행복을 느끼고 못하고 또래들과 늦은 밤거리를 배회하며 탈출구를 찾는 청소년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길거리에서 희생당할 가능성이 크다.
“처음 만난 남자하고 자는 일은 흔해요. 그렇게 안 하면 싫어하니까요. 우선은 재워 주는 게 어디예요. 집 나갔을 때….” “자취방에서 재워준다고 해 나갔더니 여관방이었어요. 황당했죠.”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와 서울 YMCA청소년쉼터가 2001년부터 여의도 한강둔치와 동대문 쇼핑타운에서 밤늦게 배회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 최근 펴낸 ‘2003 심야거리 상담사업 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의 경우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46.8%)들은 비가출 청소년(18.8%)들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성매매 충동을 느낀 경우도 가출 청소년들은 18.6%, 비가출 청소년들은 7.6%로 큰 차이를 보였다. YMCA청소년쉼터 최숙향 청소년 지도사는 “가출 청소년일수록 의식주 해결을 위해 성폭력이나 성매매 등 위험 환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적다”며 “가정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이 집을 떠났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인 지원체계의 확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청소년 성 교육, 현실적 접근 절실 실효성 없는 학교 성교육도 청소년들을 성매매 위험에 방치하는 요인이다. 한국성서대학교 김성경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의 성교육은 일방적으로 어른들만의 규범을 강조할 뿐 청소년들의 성 욕구나 관심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모른 채 교육을 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성교육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판에 박힌 내용의 학교 성교육은 아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충족시켜주지 못해 외면 당하고, 인터넷과 음란비디오 등이 유포하는 거짓 성 관념을 부추기는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아이들에게서 음란한 환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내적 충동과 외적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현실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입력시간 : 2004-03-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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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