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가족 가장, 사육사 이길용, 엄기용, 한효동턱없이 부족한 인원, 고된 일상이지만 '자식사랑'의 마음으로 버텨

사육사를 만나다 "꼭 자식키우는 심정이죠~"
동물가족 가장, 사육사 이길용, 엄기용, 한효동
턱없이 부족한 인원, 고된 일상이지만 '자식사랑'의 마음으로 버텨


“포장을 벗기고 먹는지 아니면 그냥 먹는지, 원숭이가 진짜로 영리한지 알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봉지째 과자를 넣어 줍니다. 또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을 때 동전 던져 넣기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면 자녀가 시험에서 합격을 한대나 뭐래나.”

말을 하면서도 가슴 아파하는 동물원 사육사들. 동물들을 친자식 이상으로 여기고 보살피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면서 우리의 관람문화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동물원에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단다. 정성들여 보살핀 동물들을 선보이고, 관람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도 보람을 찾는 그들이지만, 요즘처럼 날씨가 따뜻해 찾는 이가 많아지면 사육사들은 걱정부터 앞선다고 한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40년을 보낸 이길용(62ㆍ영장류 담당)씨, 20년차의 엄기용(52ㆍ맹수류 담당)씨, 20년 경력의 한효동(49ㆍ 인공포육장)씨들로부터 사육사들의 애환을 들어 보았다.

◈ 함께 뒹굴며 뒤치닥거리

- 요즘 꽤 인기 있는 직종으로 떠올랐는데….

한효동:대학에 축산학과, 수의학과에 이어 동물자원학과까지 생기고, 사육사 공채에서도 70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걸 보면 인기를 조금씩 느끼게 된다.

엄기용:그 인기는 좀 부풀려진 것 같다. 서울 시청을 통해 봉사활동을 들어오는 학생들이 더러 있는데, 직접 와서 보고는 대부분 고개를 흔든다. 귀엽고 깜찍한 새끼 동물들을 껴안고 뒹구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게 다가 아니다. 사육사들이 동물의 똥을 치우고 뒤치닥거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TV가 사육사를 미화시킨 부분이 적지 않다.

이길용: 우리가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동물들은 굶어야 하니까 쉬는 날이 거의 없다. 한 달에 한 번, 주 중에 쉰다. 휴일이면 가족끼리, 연인들끼리 동물원을 꽉 채우는데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가족들한테 미안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잊고 산지 오래다. 남들처럼 어디 놀러 간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현재 서울대공원에는 국제협약에 따라 세계적으로 보호받는 멸종위기 동물들과 우리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천연기념물 등 360여종 3,3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이를 돌보는 사육사는 고작 70여 명. 동물의 특성과 체구에 따라 그 수는 달라지겠지만, 사육사 한 사람이 50마리에 가까운 동물을 돌봐야 한다는 계산이다. IMF 이후 서울시가 공무원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공원의 인력을 342명에서 231명으로 대폭 줄였는데, 당시 많은 수의 사육사들이 감축됐기 때문이다.

◈ 지독한 동물사랑에 가족들 질투

- 동물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이 많을 것 같다.

엄:초식 동물 사육사라면 모를까, 맹수들을 맡고 있는 나 같은 경우는 에피소드라고 하면 사람이 물리거나 다치는 사고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야기 거리들을 안 만들려고 노력중이다(웃음).

한: 육식동물 사육사들은 지독한 노이로제에 걸려 산다. 호랑이나 사자가 우리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을 해봐라. ‘끝장 난다’. 그래서 우리는 잠금 장치를 확인하고 집에 가다 차를 되돌려 돌아와서 또 한번 살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집에 가서도, 꿈에서도 온통 자물쇠 생각뿐이다. 그런데도 지난 1월엔 늑대들이 도망갔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 사육사를 택한 것을 후회 한 적도 많았겠다.

엄:아이들 학교에서 ‘너 아버지 안계시냐’는 소리를 학년이 바뀔 때마다 들었다. 학부모들 학교에 오라고 하는데 한번도 참석을 할 수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럴 때 진짜 후회스러웠다. 동물들을 너무 사랑한 죄지만…. 그래도 아무 탈없이 자라 준 자식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 새끼 원숭이를 살리느라 8달 동안 집에 안 들어간 적이 있는데, 집사람은 ‘가정이 중요하냐, 동물이 중요하냐’며 이혼하자고 했다. 자식들은 다들 출가해서 잘 살고 있지만, 미안한 마음은 끝이 없다. 아마, 모든 사육사들이 다 그럴 것이다. 그래도 사경을 헤매는 새끼 동물을 온갖 정성으로 살려내는 날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직접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난 다시 태어나도 사육사로 살 거다.

한: 평생을 말없는 동물들과 교감하면서 생활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는 데 힘든 점이 있는 것 같다. 동물들에게 해가 될까 봐 술 담배까지 끊었는데, 퇴직 후 남는 건 외로움 뿐이라고 퇴직한 선배들이 얘기한다. 이런 얘기 들을 때 좀 후회가 되는 건 사실이다.

- 후회하지 않으려면 역시 동물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야 할 것 같은데.

엄: 집사람이랑 애들이 들으면 서운해 하겠지만, 사실 이 녀석들이 아플 때 더 마음이 아프다. 사람 아픈 것이야, 어디어디가 아프다 말하면 약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지만, 이 녀석들은 퀭한 눈으로 말도 없고 조용히 구석에 박혀 있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때가 많다.

한: 인공 포육장에 있는 새끼 동물들은 대부분이 어미가 키우지 않고 유기된 경우다. 내가 키우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릴 불쌍한 녀석들이다. 생사를 오락가락 하는 것들을 잠까지 설쳐가며 살려 놓은 놈들인데, 자식이나 다름 없다.

이: 난 원숭이, 오랑우탄 새끼들이 골골거릴 때 8달 동안 집에 안 들어간 경우도 있다. 머리도 벗겨지고 생김새가 오랑우탄을 닮아서 그런지 아예 날 자기 어미로 안다.(하하)

- 사육사 일을 시작한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지.

이: 이 일을 시작할 때쯤엔 다 먹고 살기 힘들 때였다. 동물 애호가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동물애호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시절이었다. 난 먹고 살기 위해 들어왔지만, 정이 들면서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가 손을 놓아 버리면 나만큼 이 놈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40년이란 시간이 흘러 버렸다.

◈ 배설물 치우기는 기본, 건강살피기에 초긴장

- 사육사들는 어떤 일들을 하는가?

엄: 배설물을 치우는 일이 기본 업무다. 70여 사육사들이 하루 8톤에 이르는 변을 치운다. 4톤 트럭 그득히 2대분이다. 코끼리 같은 경우는 한 마리가 200Kg를 싼다. 코끼리 변만 1톤에 이른다.

한: 치우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일일이 똥의 상태를 확인하고 기록해야 한다. 적자생존의 동물세계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야생 동물들은 자신의 병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바로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변을 통해 몸의 이상 유무를 파악한다. 변이 적당히 말랑말랑하고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면 컨디션이 좋다는 뜻이고, 우리도 그날 하루는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몸 피곤한건 둘째고, 애가 타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몇 년을 키운 녀석들인데, 자식이 아픈 것 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 변에 이상이 있으면 치료팀에 보고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에 진료를 받게끔 하고 있다.

이: 그 외에도 시간에 맞춰 먹이를 주고, 몸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고… 동물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 자식 같은 동물들에게 해코지 하는 관람객들 감시하는 일도 한다.

- 어떤 ‘해코지’ 사례가 있었나?

이: 해코지라고 했지만, 내가 볼 땐 ‘폭력’에 가깝다. 아무리 말 못하는 동물이라지만, 실수로라도 삼키면 치명적이라는 걸 알면서 위험한 물건을 넣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한: 소화불량으로 죽어 나가는 동물들이 부지기순데, 해부를 하면 열에 아홉은 동전, 패트병 등 온갖 이물질이 나온다. 2001년 말에 잔점박이 물범이 죽어나간 적이 있는데 열어보니 동전이 124개나 나왔다고 하더라. 18년 동안 관객들을 얼마나 즐겁게 하던 놈인데. 관객들이 죽인 거나 다름없다.

-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할말이 많겠다.

엄: 동물원에 개나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안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원래 야생에서 자라던 호랑이나 사자한테는 먹이나 다름없다. 흥분시키고 스트레스 주는 행위다. 그리고 ‘호랑이 사육사’라고 해서 호랑이처럼 무서운 아저씨는 아니다.

이: 아무리 원숭이가 영리하다고 해도 사람보다는 떨어지니, 먹는 거 가지고 장난 안쳤으면 좋겠다. 무심코 던진 돌이지만, 동물들에겐 치명적이다.

한: 동물들에 대한 환상을 좀 깼으면 좋겠다. 사람과 동물들이 어울리는 장면들을 어디서 보고 와서는 흉내 내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맹수가 사람과 뒹구는 모습은 다 연출된 것이다. 이빨과 발톱을 빼야 가능한, 동물학대에 다름 아닌 장면을 본 것이다. 작년 식목일에는 한 초등학생이 물소 떼의 공격을 받았는데, 무서운 사실이다. 또 야생에서 자라던 놈들이 사람과 친해지면 그들끼리 어울리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가 정을 줄지언정 동물이 우리에게 정을 안 붙이도록 한다.

◈ 체계적 동물연구 절실

- 우리 나라 동물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한: 국내에는 동물보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67년도에 나온 동물보감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일제 때 한반도 생태 조사차 만들어 놓은 일본서를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체계적인 동물 자원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동물원들이 국립으로 운영돼 토종 동물들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도 시급하다.

이: 서울시에서 회의하면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으면 돈이 얼만데…’하고, 적자 흑자 운영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동물원이 상업적으로 나가면 그건 동물 학대에 다름 아니다.

정민승 인턴기자


입력시간 : 2004-03-18 14:32


정민승 인턴기자 prufrock@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