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경음악 작곡한 음대생

스물 세 살 음악도 이지수의 '화려한 영상 나들이'
영화 <실미도> <올드보이> 배경음악 작곡한 음대생

"쿵쿵~ 영상과 어우러진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악이 심금을 울린다."

천만 관객 돌파로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운 영화 '실미도'. 이 영화의 성공 뒤에는 감독과 배우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요소들이 있었을 터. 그리고 또 하나, 영화의 감동을 더해 준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실미도의 배경 음악을 만든 이는 놀랍게도 23살의 음대 재학생. 예상치 못한, 영화의 성공과 더불어 그의 음악적 재능은 세상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실미도의 배경 음악이 탄생한 작업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막연한 호기심으로 찾은 서울 상도동의 그의 집. 작업실이라고 들어간 곳은 그 또래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은, 그저 작고 평범한 방이었다. 침대 옆으로 피아노 한 대, 창가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모니터, 스피커가 전부다. 색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너무도 소박한 모습이다.

- 창조를 지는 평범한 대학생

"달리 뭐 특별한 거 없어요, 보시다시피 여기 있는 컴퓨터와 피아노가 전부예요. 그 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선 보인 모든 곡이 이곳에서 만들어졌어요." 처음 자신이 만든 곡이 방송에서 흘러 나왔을 때, "마냥 신기했다"고 짧게 소감을 밝힌 이지수 군은 현재 서울대 음대 작곡과 4학년에 재학 중. 아직 사춘기 소년 같은 수줍은 미소를 가진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듯이, 저는 음악으로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은 대중 음악이라 철저한 계산 아래, 타협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부분도 있죠. 그렇지만 곡을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어요."

원래 순수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드라마와 영화 음악을 만들면서 일찌감치 음악적 성취감을 맛 본 그는 주변의 관심 어린 시선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흥행몰이 한 '실미도'와 '올드 보이'에 나오는 대부분의 배경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 23살의 음대생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넉달 동안 이들 영화의 음악 작업에 꼬박 매달리다 보니, 지난 해 휴학한 그는 가을 내내 영화 음악 만드는 데만 꼬박 매달렸다.

"그 때는 밤낮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주로 새벽에 작업하고 낮에는 잠자는, 올빼미 생활이었죠. 먼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편집본으로 들어온 촬영분을 반복해 보면서 배우들의 캐릭터, 연기, 영상 하나 하나를 꼼꼼히 분석하고 각 장면에 맞는 배경 음악을 입히는 거죠. 먼저 ‘실미도’는 사건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시나리오는 물론, 매번 전달되는 촬영 테이프를 보면서 시대적인 아픔과 상황을 이해하는 거죠. 여기에 맞는 음악을 만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영화 속에 완전히 몰입 되더라고요."

- 음악적 천재성 발휘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인 1970년대 초반에 일어난 실미도 사건을 알 리도 만무하고, 음울하고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 '올드보이'의 배경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았을 터.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나이와 맞지 않은 우울한 주제와 어두운 색채를 띤 작품들에 참여했고 여기에 음악적 영감과 생명을 불어 넣음으로써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솔직히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약간은 우울하고 칙칙한 음악을 만든 셈이죠. 아직 경험은 미천하지만 순수 음악이든, 대중 음악이든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곡을 솔직하게 보일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음악을 계속 만들어 가야죠."

손가는 대로 만든 곡이, 인기 드라마의 주옥같은 테마 음악이었다. 자신의 곡이 처음 방송을 탄 것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KBS 드라마 '겨울 연가'를 통해서였다. 극중에서 피아노를 치는 배용준의 손동작 대역을 맡은 것이 인연이었다. "드라마에서 피아노를 치는 남자 대역이 필요하다고 섭외가 들어 와서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촬영장에서 보니, 주인공이 연주하는 피아노 주제곡을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제가 예전에 작곡해 두었던 곡 하나를 그 자리에서 쳐보았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결국 그 곡이 주인공이 피아노로 연주한, 드라마의 테마곡이 된 거죠"

학교의 작은 강당, 어두운 조명 아래서 배용준이 최지우에게 들려주던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곡이 바로 그가 작곡한 '처음'이다.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이 곡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어 그는 드라마 '여름향기'의 음악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영화음악 감독인 조영욱 씨가 "영화 음악을 한번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 이때부터 그는 영화의 영상과 음악적 감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음악적인 천재성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 ‘23살의 거장’ 유명세 치러

얼마 전에는 '23살의 거장'이라는 타이틀로 텔레비전 뉴스에까지 소개되어, 연락 끊긴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오고, 유명세를 톡톡히 치뤘다는 그는 '거장'이라는 말에 다소 황당했다며 웃었다. "이제 고작 20대 초반인데, 세상을 살면 얼마나 살았고, 경험했겠느냐"면서 "그런 표현은 당치도 않고,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라며 겸손해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중,고등학교를 지나 현재까지 줄곧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이지수군. 그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다른 데 한 눈 안 파고, 줄곧 음악 한 분야에만 집중하며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라고 말했다.

이번 학기에 4학년으로 복학한 그는 "이제야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 왔다"며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봄날, 캠퍼스의 낭만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학업과 음악 작업, 진로 등으로 더 바쁠 것 같다"고 한다. 졸업 후엔 부모님께 의지 하지 않고, 영화음악 작곡 등을 통해 스스로 벌어 들인 수입으로 클래식 작곡 유학을 갈 생각이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정도를 생각중이다.

스트레스 해소법을 묻자,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스트레스가 저절로 해소된다"고 수줍게 얘기하는 이지수 군. 앞으로 또 어떤 분야에서 어떤 음악으로 대중들에게 감동을 전해 줄 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글·사진 / 허주희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4-04-06 22:14


글·사진 / 허주희 (자유기고가) cutyhoe@hanmail.net